지정학적 리스크에 개발환경도 악화…취약한 석유안보 강화해야
MB정부 무리한 개발로 자본잠식, 위기 타개해야 본래 역할 기대

▲석유공사의 동해가스전 석유생산플랫폼.
▲석유공사의 동해가스전 생산플랫폼.

[이투뉴스]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은 석유자원개발을 위한 투자규모를 늘리는데 우리나라는 10년 전과 비교해 91.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안정적인 국내 석유공급을 전담하는 한국석유공사에 힘을 실어 국내외 자원개발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우리나라는 석유소비량의 거의 100%를 해외수입에 의존해 석유안보가 매우 취약한 대표적인 국가로 꼽힌다. 석유소비는 세계 8위, 수입은 4위 규모로 고유가에도 소비를 줄이기 쉽지 않다. 또 중동 위주의 석유수입선과 더불어 호르무즈, 말라카해협 등 수송로 집중도가 높아 지·정학적 리스크도 상존한다.

최근 발견된 대규모 유전 수가 감소하는 등 석유개발환경이 악화되면서 석유안보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주요 매장지역인 중동, 북아프리카의 정정불안 심화와 소비국의 석유자원 확보경쟁이 심화되는 점도 위협요인 중 하나다.

◆석유 자주개발률 40% 목표로 달리는 일본
하지만 이같은 상황에서도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 등의 자원개발 투자에 훨씬 못 미치는 등 투자 흉내만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중국은 석유자원 확보를 위해 일대일로 정책과 자원외교를 연계하는 것은 물론 재정지원 역시 강화하고 있다. 2016년 국가 에너지발전 기본원칙으로 ‘일대일로 대상국가와 협력을 통한 석유 공급안보 증대’를 제시한 중국은 산유국에서의 안정되고 독점적인 사업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야말 LNG 지분 9.9%를 11억달러(1조2644억원)에 인수하거나 카자흐스탄 유전 생산설비에 20억달러(2조2990억원)를 출자한 것이 그 예다. 또 중국 국가개발은행(CDB)은 자원 부국에 대규모 차관을 제공하고 자원으로 상환받는 ‘Loan for Oil and Gas 프로그램’을 운영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저유가를 활용해 역대 최대인 2억2000만배럴의 원유 비축물량을 확보했으며, 2023년까지 3단계 전략비축 사업을 통해 현재 3억6000만배럴에서 4억5000만배럴로 비축능력을 향상시킬 계획이다.

일본 역시 신재생에너지 증가에 따른 석유수요 감소와는 상관없이 자원개발을 위한 정부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목표 아래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2018년 5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29.4%인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을 2030년까지 40%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 해외 저가자산 인수 등 중장기 자원안보를 위해 기존에는 탐사사업만 출자하던 일본 석유가스광물자원기구(JOGMEC)의 해외 자원개발 예산 및 지원범위도 확대했다.

▲석유공사 연도별 사업 투자액.
▲석유공사 연도별 사업 투자액.

◆왜소한 투자에 산유국 지위 ‘흔들’
이처럼 주변국들이 석유 자원개발을 늘리는 한편 우리나라의 규모는 왜소하다. 석유공사 자원개발 투자액은 2007년에 33억달러(3조7933억원), 2009년 35억3800만달러(4조662억원), 2011년 45억6400만달러(5조2444억원)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하지만 이후 자원개발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커지며 2013년은 7억3400만달러(8435억원), 2015년 6억달러(6895억원), 2017년 2억800만달러(2390억원)로 급전직하했다.

2019년은 3억300만달러(3482억원), 지난해는 3억7300만달러(4286억원)으로 일부 회복했으나 2011년과 비교하면 91.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원개발 전문인력 부족도 문제로 거론된다. 석유공사의 2011년 채용인원 82명 중 자원개발 전문인력은 39명으로 전체의 48%에 달했으나 지난해는 22명 중 4명으로 18%까지 떨어졌다. 올해는 아예 채용이 없었다.

저조한 투자로 인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석유공사를 지원해 에너지 자립경제 구축을 위해 국내 대륙붕 및 해외 유전개발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원개발 성공확률이 통상 10% 내외인 점을 고려해 민간부문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하기 보다는 국가 에너지안보 확립 차원에서 석유공사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석유공사는 캐나다 하비스트 유전 인수, 이라크 쿠르드 유전 사업 등 이명박 정부 시절 무리하게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벌여 차입금 이자 4000억원을 매년 지불하는데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보유한 유전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지난해 자본잠식에 빠졌다.

석유공사의 영업실적은 연 7000억원 수준으로 공기업 중 중상위권 수준인 점을 감안한다면 차입금 부담이 경감되면 본연의 자원안보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민간 자원개발의 한계도 문제로 지적된다. 자원개발에는 많은 자본과 시간이 소요되는데 시장자율에 맡길 경우 경쟁 열위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비축 및 석유수급 안정 등 공공의 목적에 부응할 수 없기 때문.

일각에서는 석유공사의 자본잠식이 무리한 자원개발 투자로 생긴 '자업자득'이라는 평도 나오지만, 관련자에 대한 처분은 정치권에 맡기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최근의 화두는 산유국 지위다. 우리나라는 2004년 동해가스전 생산을 시작하면서 95번째 산유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년 동해가스전 생산이 종료될 경우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 중 유일하게 산유국에서 비산유국으로 전락한다. 비산유국 전환은 우리나라의 외교적 입지 및 위신을 축소시키고, 비산유국을 유전개발사업에서 제외시키는 중동에서의 입찰에 제한될 수 있다. 이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최근 동해 대륙붕 방어구조 시추에 들어갔으나 이번에도 더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 지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철규 해외자원개발협회 상무는 “유가 등 국제시장에서의 자원 가격은 지속적으로 오를 것으로 보이는데 정부는 자원공기업 지원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며 “모두 자원개발의 필요성은 통감하고 있지만 민간을 이끌어줘야 할 석유공사는 자본잠식으로 손발이 묶여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진오 기자 kj123@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