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수희 명장(연미석재 대표)
“석재의 기본은 디자인,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 추구해야”
전국기능대회서 석공예 폐지 위기…석재진흥법 역할 기대

▲불상을 깎는 이수희 명장.
▲불상을 깎는 이수희 명장.

[이투뉴스] “석조각을 이루는 구성요소는 여럿 있지만 결국 기본은 디자인이다.”

논산 연미석재를 이끄는 이수희 명장은 코로나19 영향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명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소비가 많이 위축됐다. 단순히 묘비석 하나를 납품하더라도 사회에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경제가 침체되니까 묘지도 단촐해지는 모양새”라며 “가뜩이나 국내 석재업계는 장기불황이 이어지는 상황인 만큼 새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석재업계가 살아나기 위한 방안으로 ‘석조각 디자인 특허’를 제시했다. 디자인보호법에 따르면 양산할 수 있고 거래의 대상이 되는 석조각의 경우 디자인권의 대상이 된다. 다만 창작성을 인정받지 못할 경우 저작권 행사가 어렵기 때문에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이 명장은 “연미석재에서 만든 작품은 우리만의 색이 드러난다”며 “작품은 눈으로 보고 감상하는 것인 만큼 당연히 자신만의 디자인을 추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연미석재는 핸드폰으로 치면 제일 앞에서 디자인을 선도하는 플래그십이라고 할 수 있다”며 “몇몇 업체들이 카피캣을 자처하며 우리 스타일을 따라오는 등 석재업계에선 우위에 서있지만 만약 새로운 스타일이 유행한다면 뒤쳐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방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수희 명장(연미석재 대표).
▲이수희 명장(연미석재 대표).

 

◆일본불교계 매료시킨 한국 석조각
이수희 명장은 1973년 17살 나이로 업계에 들어와 48년 동안 돌을 깎아온 베테랑이다. 그는 당시를 두고 “그때만 해도 기술 배우고 밥만 먹자는 생각에 입문했는데 어느새 직업이 돼 40년 넘게 돌만 만졌다”며 “우리나라 경제는 아직 어려웠고 오히려 일본이 한국전쟁 특수로 경제가 활성화됐다”고 회상했다. 또 “그 덕에 일본으로 수출하는 석조각이 많아 처음에는 소득이 매우 좋았다”며 “첫해 일당이 6000원이었는데 한 달 하숙비와 맞먹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1989년 이 명장은 대전에 가까운 논산에 터를 잡고 연미석재를 개업했다. 질 좋은 석재를 쉽게 수급하기 위해서 포천 등에 터를 잡는 석공들도 많이 있지만 교통·물류의 중심인 대전에 터를 잡는 쪽이 재료를 구하는데도, 일본 수출에도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연미석재를 개업한 뒤로 일본 수출을 위해 불교문화 조각을 전문적으로 취급하게 됐다. 그는 “딱히 불교도라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석공일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일본에서는 석조불상에 대한 수요가 없었는데 우리나라가 수출하면서 수요가 점차 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감성이 이미 30년 전부터 일본불교계를 매료시켰다고 볼 수 있다.

문화의 차이는 없느냐는 질문에 이 명장은 “일본불교라고 하면 한국과 많이 차이날 것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사실 백제미술의 변형에 불과하다. 오히려 중국이나 인도 불상과의 차이가 훨씬 크다”며 “불상의 종류나 명칭 등은 우리나라와 똑같고 일본인들은 날씬한 불상을 선호하는데 우리나라는 무게감을 중시한다는 점이 좀 다르다”고 강조했다.

◆석재진흥법은 업계에 귀한 선물
이수희 명장은 현재 한국석조각예술인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실제 업무는 지난해 6월부터 시작했고, 변변한 외부활동도 펼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사장을 맡은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하겠다는 것이 그의 심정이다.

이 명장은 석조각예술인협회의 영리단체화를 추진하고 있다. 임원·회원들의 회비만으로 협회를 운영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데 협회가 비영리단체로 등록돼 있어 관련 의뢰가 들어오더라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 되자 내린 결정이다. 영리단체로 전환하게 되면 사회적기업을 설립해 석재 관련한 자문을 통해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협회 운영비도 어느정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다.

그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뽑는 ‘대한민국명장’의 1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명장은 해당 산업현장에서 15년 이상 종사한 사람 중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매년 35명 이내만 선정하고, 1986년부터 우리나라 전체에 652명이 뽑혔으니 어딜 가도 내로라하는 국가대표 석공인 셈이다. 명장이 되기위해서는 단순히 실력만 보지 않는다. 봉사활동 이력, 공방 현장실사, 고용창출 현황에 더해 가진 기술을 어떻게 전수할 것인지까지 확인한다.

현재 가장 아쉬운 점은 정작 기술을 전수할 다음 세대가 없다는 점이다. 이 명장은 “우리나라의 석공이 부족해 조만간 전국기능대회에서 석공예 분야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며 “석공예 분야에 지원이 없다면 업계의 존폐가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토했다. 또 “우리나라 국보·보물의 30%는 석재로 만들어졌다”며 “석재로 만들어진 보물들의 보수가 필요할 때 우리 석공이 없으면 누가 보수할 수 있나”고 말했다.

이수희 명장은 “전국기능대회를 거친 석공과 거치지 않은 석공의 능력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올해부터 시행된 석재산업진흥법은 우리 석조인에게는 아주 귀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석진법을 통해 당면한 전국기능대회 석공예 분야 폐지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진오 기자 kj123@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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