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표의 ESG 자본주의 해부 ①] 탄소제국 몰락의 서곡-엑손모빌 사건
[박진표의 ESG 자본주의 해부 ①] 탄소제국 몰락의 서곡-엑손모빌 사건
  • 박진표 변호사
  • 승인 2021.10.04 07: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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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진표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

[이투뉴스/박진표] ESG 자본주의 연재를 시작하며-

2010년대 끝자락, 지구 반대편 태평양을 건너온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물결이 최근 들어 거세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1990년대 이후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와 세계화(Globalism)에 기반해 골드만삭스와 같은 투자은행들이 주도해 왔던 신자유주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는 듯하다. 대신 신흥 금융권력인 블랙락(BlackRock)과 같은 자산운용사들이나 연기금이 고객에 대한 수탁자로서의 책임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주장하며 ESG라는 새로운 글로벌 스탠다드에 기반한 자본주의를 실험하려 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 위대한 실험이 성공을 거두어 정착할 것인지, 아니면 어느 순간 용도폐기되거나 수정될 운명인지 예측하기 어렵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ESG가 이미 앵글로색슨 자본주의 운영시스템에 깊이 침투해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고, 나아가 앞으로 상당기간 불가역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제계 역시 좋든 싫든 필연적으로 ESG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수출, 투자, 자본조달 등을 통해 세계 각국과 긴밀하게 얽혀 있는 경제 현실을 고려할 때 주요 수출국인 서구국가들의 은밀하면서도 은근한 요구를 거부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는 압축적 경제발전에 따라 대규모 국부 축적이 이루어져 왔고 1997년 IMF사태 이후 앵글로색슨 자본주의 요소가 우리 경제시스템에 적극 도입된 결과 금융자본에서 자산운용사와 연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이는 우리 경제시스템이 ESG를 수용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

ESG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무작정 거부하거나 도외시하는 것은 대체로 어리석은 일이다. IMF사태 당시 신자유주의 추종자들이 국제금융 헤게모니를 이용해 우리나라 경제를 점령했던 것과 유사하게, 새로운 국제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ESG 추종자들은 탄소국경세와 같은 일종의 무역제재뿐만 아니라 대출 등 신용공여 중단, 국가 신용도 하락, 국가 평판 하락 등 ESG의 적성국들을 요리조리 괴롭힐 수 있는 다양한 카드를 가지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우리 경제계가 ESG 자본주의를 수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우리 현실에 최대한 맞게끔 수용할 것인지, 보다 정확하게는 우리나라 경제시스템이 최대한 용이하게 적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수용할 것인지의 문제라 할 것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ESG 전장의 최전선에 배치되어 있는 부대는 바로 전력산업 나아가 에너지산업이다. ESG의 핵심요소 중 하나가 탄소중립(Net Zero)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너지업계의 한편에 있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산업과 수소산업이 폭발적 성장에 대한 열광적 기대에 휩싸여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석탄화력발전소가 좌초자산 논란에 휩싸여 있다. 좌초자산 논란은 -기후 행동주의자들이 보기에 탄소 배출 측면에서 오십보백보인- LNG 화력발전소로도 번져 나갈 조짐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이든 경제적이든 법적이든 제도적이든 여러 측면에서 탄소중립 사회의 실현가능성에 대하여 깊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그린플레이션’이라 불리는 급격한 탈탄소화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타나고 있다. 만약 탄소중립 사회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제시된 방안이 실현 불가능하거나 여러 제약으로 인해 실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명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미래를 보게 될까? 우리가 아름다운 비전에 도취해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광폭한 변동성에 대한 충분한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때때로 야기할지 모르는 파괴적 현상은 IMF 사태 당시보다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ESG 열풍이 야기한, 그리고 ESG 추종자들의 압도적 위력 앞에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카오스적 상황에서 대한민국 에너지산업, 특히 전력산업은 과연 어떻게 해야만 ESG 자본주의 시대에 연착륙 할 수 있을까? 이는 기껏해야 법률전문가일 뿐인 필자의 능력으로는 쉽게 답을 구하기 어려운 화두다. 그러나 누군가 필자의 오답을 바탕으로 더 훌륭한 답을 찾을 수 있다면, 문제 풀이가 공허한 시도는 아닐 것이다.


◆ 문 앞의 야만인들 – ESG 자본주의의 도래

서기 410년 8월 24일 한밤 알라리크 왕과 그의 서고트족 전사들이 드디어 로마의 성문 안으로 진입했다. 이후 3일 동안 그들은 갖은 약탈, 살인, 강간을 저지르며 도시를 파괴했다. 영원한 도시, 로마 제국의 위대한 상징은 무너져 버렸다. 성 예로니모는 이 순간을 “온 땅에서 가장 밝은 빛이 꺼졌을 때, 로마 제국이 그 머리를 빼앗겼을 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온 세상이 한 도시에서 멸망했을 때”라고 묘사했다. 그 무렵 로마 제국은 이미 쇠퇴기에 있었지만, 당시 로마 시민들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로마의 함락을 분수령으로 하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은 서양 역사의 페이지를 영원히 바꾸어 버렸다.

그로부터 1600년이 훌쩍 흐른 올해 5월 26일, 산업혁명 이후 수백 년 간 견고하게 유지되어 왔던 탄소 자본주의 제국에도 종말의 서곡이 울렸다. 이날 미국의 석유 패권의 심장부인 엑손모빌(ExxonMobil)의 주주총회에서 기후 행동주의 펀드 엔진넘버원(Engine No.1)이 추천한 2명이 이사 자리를 확보했다. 엔진넘버원은 엑손모빌 경영진에 대해 갈수록 수익률이 낮아지는 석유탐사사업에 대한 공격적 자본지출 축소를 통해 회사 이익을 높이고 주주에게 배당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ESG 경영을 위해 4명의 이사 자리를 자신이 추천한 자들로 채울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엑손모빌의 CEO 대런 우즈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40년까지 인구 증가, 특히 중산층 증가로 에너지 수요가 20% 증가할 것이며 이 수요는 석유와 가스에 의해 충족될 것"이라며 재생에너지 투자로 기업전략을 수정한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로열더치쉘 등 다른 석유메이저들과 달리 탄소산업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던 터였다. 존슨앤존슨, IBM, 메트라이프 등 에너지와 무관한 기업 임원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던 엑슨모빌 이사회는 엔진넘버원이 추천한 후보를 수용하지 말도록 주주들에게 요청하면서 기후위기 대응에 무관심한 경영전략을 고수할 것을 천명하는 한편, TV광고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위임장 쟁탈전(proxy contest)에 1억 달러를 지출했다.

엔진넘버원의 엑손모빌 지분은 0.02%에 불과했다. 하지만, 엑슨모빌 이사회의 노력이 헛되게도 엔진넘버원은 래리 핑크 블랙록 CEO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에게 협조 서한 요청을 보내고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과 뉴욕주 공동퇴직기금 등 주요 연기금을 설득하여 성과를 이루었다. 종국적으로는 엑손모빌 이사회는 엔진넘버원측 이사 3명과 엑슨모빌측 이사 9명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그간 번성해온 탄소제국의 변방에 있던 기후 야만인들은 세력을 모아 부지불식간에 탄소제국의 심장부를 향해 성큼성큼 진격해 왔고, 그 중 가장 견고하고 가장 상징적인 성채를 무너뜨렸다. 아니 어쩌면 성채 내에 있던 동족들이 성문을 열어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엑손모빌 사건은 기후변화 대응과 결합한 주주 행동주의의 파괴력을 에너지업계 종사자들에게 실감시켜 주었다. 이와 같이 기후 행동주의자들이 ESG 교리를 믿는(또는 믿는 척하는) 기관투자자와 연기금 등과의 협력을 통해 G(지배구조)라는 기업 통제 수단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이상, 아마도 기후 행동주의자들은 야만족처럼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탄소제국에 침입하여 찬란한 탄소 문명의 유산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그저 폐기물인 양 남기지 않고 제거하려 들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ESG가 제시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교리는 어떤 내용일까? 그리고, 도대체 무엇이 ESG를 이토록 특별하고 강력하게 만든 것일까? 그간 일상생활과 생산활동을 탄소문명의 이기에 의존해 왔던 탄소제국의 선량한 시민들과 기업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야만족과 같이 느껴지는 기후 행동주의자들을 방어할 수 있을까, 혹은 기후 행동주의자들과 타협할 수 있을까?

<박진표 변호사 chinpyo.park@BKL.co.kr / He is... > 미국 University of Houston Law Center (LL.M.) 제30기 사법연수원, 제40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대 사법학과 졸업,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개발전문위윈회 위원, 국민연금공단 대체투자위원회 위원,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前)  - * 박 변호사의 ESG 자본주의 해부는 격주로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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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 2021-10-05 14: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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