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경 경북대학교 전기공학과 부교수 (공학박사)

▲한세경 경북대학교 전기공학과 부교수 (공학박사)
한세경
경북대학교
전기공학과 부교수
(공학박사)

[이투뉴스 칼럼] 지난 칼럼에서는 Battery-as-a-Service라는 온라인 BMS 플랫폼에 대해 다루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연락을 주셨다. 그래서 이번 기고에서도 지난 칼럼 주제와 연결하여, 왜 배터리 관리의 패러다임이 온라인으로 넘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필자가 인공지능이나 데이터 분석과 관련된 강의를 할 때 종종 학생들에게 하는 질문이 있다. “자, 지금부터 우리는 의자를 인식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합니다. 각자 의자를 인식하는 알고리즘을 기술해보세요”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잠깐 읽기를 멈추고 한번 머릿속에 그 방법을 그려보시길 바란다.

학생들도 물론 그렇거니와, 독자들 역시 십중팔구, 아니 백이면 백 다 이렇게 기술할 것이다. 
“다리가 네 개 달려 있고, 그 위에 평평한 바닥, 그리고 경우에 따라 등받이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고…”
그러면 다시 또 문제를 낸다.
“이번에는 고양이와 강아지의 얼굴을 구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봅시다. 어떤 알고리즘으로 만들면 될까요”

그전 문제보다 더 어려운 듯 한참 고민하지만 결국 대답은 비슷하다.
“눈이 좀 더 동그랗고, 눈동자가 위아래로 길쭉하면 고양이, 또 코가 까만 경우 강아지…”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막상 그런 알고리즘을 들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구현하라고 하면 거의 포기하거나 어찌어찌 구현해도 정확도가 매우 낮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 즉 인간의 언어가 사물과 현상을 이해하거나 기술하는데 부적절하고 어떤 경우 매우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자연을 가장 잘 기술하는 것은 바로 수학이라는 언어다.

우선 ‘의자’라는 단어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편향되고 추상적인 정의다. 의자라는 개념은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앉기 편한 (사실 앉는다는 표현도 추상적일 수밖에 없지만) 형태의 물체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을 통상 우리가 의자라 부르는데, 이를 정의하기 위해 ‘다리’, ‘등받이’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순간 결국 새로운 개념을 또 정의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곰곰이 따져보면 ‘다리’라는 건 결코 과학적으로 정의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다리인지도 명확하지 않고 심지어 기능적인 역할로도 정의하기가 힘들다. 공중에 매달린 의자가 있다면 그 다리를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따라서 당연히 ‘다리가 네 개’같은 표현 역시 엄밀한 정의라 할 수가 없다(편의점이나 막창집에서 보는 통 형태 의자는 다리가 한 개인가? 다리가 있긴 한가?).

우리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러한 언어의 프레임 속에 갇혀 살고 있으며, 사고 체계가 이러한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에 너무나 익숙하다. 일본인들이 ‘맥도널드’를 ‘마꾸도나루도’라고 하고 한국 사람들이 ‘fool’과 ‘pool’을 똑같이 ‘풀’이라 발음하는 것 역시 각자에게 익숙한 모국어의 프레임, 즉 글자로 표현하고 사용하는 발음의 범위가 언어별로 서로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인공지능이나 데이터마이닝같은 학문을 다루다 보면 이러한 프레임의 한계, 혹은 모델의 한계라는 개념을 좀 더 명확히 인식할 수 있게 된다. 2차원 평면에 표현된 삼각형의 세 꼭지점을 모두 지나는 직선 방정식은 결코 찾을 수 없다. 다만 이 세 점을 평균적으로 가장 가깝게 지나는 직선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모델을 직선이 아닌 (타)원으로 표현하면 세 점 모두를 지나는 방정식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찾을 ‘수’ 있다는 것이지 찾는 과정 역시 만만한 것은 아니다. 데이터과학이라는 학문이 다루는 것이 바로 이러한 모델과 파라미터를 찾는 방법들이다.
즉, 어떠한 데이터를 채집하고 이를 컴퓨터가 잘 이해할 수 있는 수학적 모델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를 가장 잘 기술할 수 있는 수학적 모델을 구성해야 하고, 이러한 모델로 주어진 데이터를 가장 잘 표현하는 파라미터(직선의 방정식에선 X, Y 절편값 등)를 찾아내어야 한다. 
또, 인간지성의 한계일 수도 있는데, 우리가 쉽게 인식하는 많은 문제들에서 적합한 수학적 모델을 찾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의자를 인식하거나 얼굴을 구분해내는, 인간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들이 바로 그렇다. 실제 많은 연구자들이 그간 이런 일들을 컴퓨터 관점에서 수학적으로 해결해보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대중적으로 실용화될 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다. 

인공지능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비약적으로 발전한 컴퓨터 성능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근간에는 신경망이라 불리는 인공지능의 기본 모델이 너무나도 유연한 형태였기 때문이다. 모델이 유연하면 할수록 그만큼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표현할 수 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마치 귀가 얇은(유연한) 사람이 미천한 경험(적은 데이터)으로 인해 편향된 사고를 가지게 될 수 있듯이 과적합(over fitting)이라는 문제가 있긴 하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수많은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소위 빅데이터에 해당하는 것이다. 경험이 비싸듯이 빅데이터 역시 비쌀 수밖에 없는데 이를 성공적으로 극복해내는 방법이 바로 개인이나 개개의 장치로부터 데이터를 모아 집대성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동안 배터리라는 물리적 장치를 우리 인간의 지성으로 수학적 모델로 표현해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실제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그 결과가 현재 대부분의 배터리들이 사용하는 로컬 BMS다. 이 BMS에는 간결한 형태의 수학적 모델이 들어 있으며, 이 모델의 파라미터는 주로 제작사에서 대상 배터리에 대한 몇 가지 실험을 통해 찾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배터리라는 장치가 전기화학이라는 메커니즘으로 동작하다보니 동작이 상대적으로 명확한 기계 장치와는 다르게 그 거동을 직관적 수식으로 모델링하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나마 성공적으로 이러한 수학적 모델을 찾았다 하더라도 대상 배터리 별로 파라미터를 정확히 추출해내는 것은 더 어렵거나 경제적 타당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결국 실험실 데이터와 직관적 수학모델로 이루어진 기존의 BMS는 배터리 셀의 미묘한 변화나 이상징후 등을 감지해내지 못하고 화재사고와 같은 뉴스를 최근 자주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꼭 화재사고 같은 극단적 상황이 아니더라도 배터리의 정교한 상태를 추정하지 못할 경우, 이를 보수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보니 배터리 본연의 성능이 크게 떨어지기도 한다. (ESS의 SOC 제약이 대표적 사례)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적인 사례를 보았듯이 이러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로컬 장치와 사전 시험 데이터를 중심으로 구성되던 전통적 BMS의 구성에서 빅데이터와 기계학습, 그리고 이를 실시간으로 구현하고 개별 배터리에 서비스하는 온라인 플랫폼 즉, Battery-as-a-Service라는 새로운 온라인 BMS 형태로 패러다임 전환을 하는 것이 전동화 시대를 본격적으로 맞이하고 있는 현재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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