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기본법 제정, NDC 상향…전세계에 추진의지 천명
이행속도 등 둘러싸고 ‘환경·시민단체 vs 산업계’ 힘겨루기

[이투뉴스]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해 탄소중립을 법으로 규정한 열네 번째 나라가 되었습니다. 조만간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확정할 예정이며, 11월 열리는 COP26에서 추가 상향한 ‘2030 NDC’를 발표하기 위해 막바지 준비에 힘쓰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바이든 대통령 초청으로 참석한 에너지 및 기후에 관한 주요 경제국 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2050 탄소중립 선언에 이어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구체적인 실천목표인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까지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인 셈이다.

에너지 및 환경 분야 최상위법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약칭 탄소중립기본법)’은 2050 탄소중립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환경단체 등 일부에선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은 같이 갈 수 없다는 반대의견이 있었음에도 정부여당은 야당의견을 수용,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을 합쳤다. 특히 상임위에서는 반대도 많았지만 본회의에서는 야당의원 상당수가 찬성표를 던지는 등 필요성 자체에 대해선 공감대가 확산되는 모양새다.

탄소중립기본법 제정과 함께 2050년 탄소중립을 실질적으로 지향하는 중간단계 목표를 설정,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기존(2018년 대비 26.3%)보다 9%p 상향한 35% 논의를 시작하도록 명시한 것도 주목해야 한다. 탄소중립기본법이 단순한 선언적 목표가 아닌 실천방안을 만드는 법적기반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이후 정부는 탄소중립위원회에 제출한 NDC 초안을 35%(국내 32.8%, 국외 2.2%) 감축으로 설정했다.

출발이 매끄럽다고 해서 2050 탄소중립 역시 순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정부가 탄소중립 속도전에 나설 것임을 공식화하자 산업계를 필두로 우려를 표시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정부의 감축목표가 자체적인 탄소감축 여력을 넘어 산업 전반에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며 단계적 상향을 주문하고 있다. 또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치와 구체적인 지원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비용도 문제다. 자칫 과도한 탄소중립 추구가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기후영향평가 도입, 정의로운 전환도 천명
9월 24일 공포된 탄소중립기본법은 2050년 탄소중립을 국가 비전으로 명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전략,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 기본계획 수립 및 이행점검 등의 법적 절차를 체계화했다. 더불어 미래세대, 노동자, 지역주민 등이 참여하는 협치를 법제화한 것은 물론 탄소중립 과정에 취약지역·계층을 보호하는 정의로운 전환도 구체화했다.

구체적으로 기존 석탄기반 산업, 내연기관 산업 등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과정에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역과 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지구 지정과 함께 지원센터도 설립하도록 했다. 탄소중립기본법 제정에 따라 지난 5월 발족해 운영 중인 2050 탄소중립위원회를 법률에 따른 위원회로 재정립했다.
탄소중립을 이행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수단도 마련했다. 환경영향평가처럼 국가 주요 계획과 개발사업 추진 시 기후변화 영향을 평가하는 기후변화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또 국가 예산계획 수립 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점검하는 온실가스감축인지예산 제도와 함께 산업구조 전환과 산업공정 개선 등을 지원하기 위한 기후대응기금도 신설했다.

중앙정부 일변도의 대응체계를 중앙과 지역이 협력하는 체계로 전환했다. 각 지방별 기본계획 마련과 지방 탄소중립위원회 등 지역 이행체계를 마련하고, 중앙과 공유하는 협력체계를 마련했다. 더불어 지역 온실가스 통계 지원, 탄소중립지원센터 등 지원기반을 확충하고 탄소중립 지방정부 실천연대 등을 통한 지역 간 협력체계도 유지했다.

▲환경부의 탄소중립 홍보 이미지.
▲환경부의 탄소중립 홍보 이미지.

2050 탄소중립이라는 목표와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탄소중립기본법이 제정됨에 따라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전방위 대응’이라는 정책기조는 바꿀 수 없게 됐다. 차기 정부가 들어선 이후 달성시기 등에 있어서는 조정시도가 등장할 수는 있지만, 이미 유엔에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까지 제출한 상황에서 국제적인 약속을 저버리기에는 부담이 크다.

특히 유럽연합이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는 등 글로벌 경제가 탄소중립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인식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EU는 화석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경제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며 수입제품의 탄소배출량이 자체에서 만든 제품보다 많다면 2026년부터 초과분에 대해 세금을 물리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응해 미국도 비슷한 세제를 도입하겠다고 나서고 있고, 선진 각국이 내연기관차 생산중단 목표를 제시하는 등 기후위기 대응은 시대의 조류가 됐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탄소중립기본법은 우리와 미래세대 그리고 지구의 미래를 위한 의지의 표현이자 새로운 기회를 향한 글로벌 경주의 리더로 발돋움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라며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어 “우리는 선진국과는 달리 2018년에야 온실가스 배출량의 정점을 찍었고, 상대적으로 제조업 비중이 높아 온실가스 감축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도약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후퇴는 사실상 불가, 속도조절론 이슈
최근 2050 탄소중립위원회에 민간위원으로 참여했던 종교위원 4인이 정부의 탄소중립 초안을 비판하며 전원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민참여분과 소속 김선명 교무, 백종연 신부, 법만 스님, 안홍택 목사가 정부가 제출한 NDC 초안이 산업계 이해만을 반영했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김선명 원불교 교무는 “정부가 탄소중립기본법이 정한 하한선 35%를 딱 맞춰서 초안을 냈다”며 정부의 탄소중립 의지를 비판했다.

산업계가 2050년 탄소중립 계획을 논의하는 자리에 시민단체가 뛰어 들어 행사가 취소되기도 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 10여명은 지난달 28일 산업계 간담회가 열리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을 찾아가 ‘기후악당, 출입금지’ ‘기업의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이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출입을 막았다. 이들은 “간담회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60%를 차지하는 만큼 이들이 기후위기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며 “대기업의 급격한 탄소감축 없이는 우리나라의 기후위기 대응은 불가능하다”며 참여를 촉구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탄소중립기본법 및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논의를 위한 산업계 간담회장을 찾아 기업들의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탄소중립기본법 및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논의를 위한 산업계 간담회장을 찾아 기업들의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반면 산업계는 탄소중립기본법 및 2030 NDC에 대해 현실을 반영한 탄소중립 목표치를 정해야 한다며 반대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기업들의 기술 수준이나 투자 여력, 산업 경쟁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목표치만 높여선 혼란만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탄소중립 드라이브만을 고집할 경우 제품가격 대폭 상승, 생산기지 해외이전 등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압박에 나서기도 한다.

철강부문의 수소환원제철 등 산업별 신기술 도입에 대해서도 R&D 및 투자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것은 물론 기술적 완결성에 대해서도 아직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가 많다. 여기에 탄소중립에 무방비 상태인 중소기업도 풀어야 할 숙제다. 최근 조사에서 보면 중소기업의 절반 이상이 “탄소중립을 준비할 계획이 없고, 여력도 없다”고 응답했다.

온실가스 감축의 관건으로 꼽히는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 사정도 별로 다르지 않다. 극히 일부에서만 상용화 단계를 논하고 있을 뿐 대부분 기초연구 수준에 머물러 상용화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정부는 CCUS를 대표적인 이행수단으로 꼽고, 기술개발 투자를 늘리고 있으나, 돈들인 만큼 제대로 된 역할을 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얘기다.

기후변화 연구 및 정책개발에 자주 참여한 한 교수는 “2050 탄소중립 선언 및 탄소중립기본법 제정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추진의 후퇴를 논하지 못하도록 대못을 박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의미를 분석했다. 이어 “탄소중립은 기존의 산업구조를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대전환인 만큼 속도와 함께 사회적 합의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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