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환경과학원 제시안 5~10배 완화…"근거·원칙 없다" 비난
철저한 인증절차, 성능 보증기간 등 사후관리 강화방안 필요

[이투뉴스] 그동안 대기오염물질에 대한 배출기준이 없어 도마 위에 오른 가스히트펌프(GHP)에 대해 환경부가 지난 9월 뒤늦게 입법예고한 ‘GHP 배출허용기준(안)’이 과학적 근거와 원칙이 없는 엉터리 기준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당초 국립환경과학원이 제시한 강화된 안(案)으로 다시 검토가 이뤄져야 하고, 인증절차와 배출가스 성능 보증기간 등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국정감사에서 이 같은 문제점과 개선책이 요구되면서 환경부의 입법예고안이 확정되는 과정에 어떻게, 얼마나 작용할지 이목이 쏠린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환경부가 지난 9월 24일 입법예고한 GHP 대기오염물질 배출허용기준 신설과 적용시기가 담긴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고 개편을 촉구했다.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환경부는 GHP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의 관리를 위해 NOx(질소산화물), CO(일산화탄소), THC(탄화수소) 등의 배출허용기준을 2022년 6월 30일 이전 시설은 NOx 100ppm, CO 400ppm, HC 400ppm으로, 2022년 7월 1일 이후 시설은 50ppm, 300ppm, 300ppm으로 규정했다. 아울러 적용시기는 신규시설의 경우 2022년 7월부터, 기존시설은 2025년 1월 1일부터 적용키로 했다.

GHP 배출허용기준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자동차와 비슷한 엔진을 쓰면서도 자동차보다 수십, 수백 배 많은 유해물질을 쏟아내고 있지만, 그동안 아무런 환경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GHP 배출가스 문제에 대한 질책이 잇따르자 환경부장관이 별도의 인증기준을 도입하고 저감장치 설치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환경부는 1년이 지나서야 GHP의 배출허용기준을 마련했다.

더 큰 문제는 지난 9월 24일 환경부가 입법예고한 GHP 배출허용기준치가 전문가들조차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나치게 완화됐다는 것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이 환경부와 산업부에 제출한 ‘GHP 배출기준(안)’
▲국립환경과학원이 환경부와 산업부에 제출한 ‘GHP 배출기준(안)’

올해 2월 5일 국립환경과학원이 국가기술표준원에 제출한 KS 고시 개정 의견에선 1등급 기준이 NOx 10ppm, CO 60ppm, THC 60ppm 이하였다. 환경과학원에서 실제 가동 중인 국산제품을 시험한 결과 THC는 8.1, CO는 15.6ppm까지 저감이 가능했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근거로 환경부가 같은 달인 2월 25일 산업부에 GHP 대기오염물질 관리를 위한 배출기준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고, 여기서 환경과학원은 ‘GHP 배출기준(안)’을 발표했는데 역시 1등급 기준을 NOx 10ppm, CO 60ppm, THC 60ppm 이하로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환경과학원이 제시한 기준보다 항목별로 5배에서 10배까지 완화된 것이다.

작년 국감에서 GHP 배출가스 문제가 제기된 지 1년이나 지나서야 제시되고, 그것도 대폭 후퇴한 기준치를 들고 나온 건 환경부가 국민 건강과 안전을 우선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비난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윤준병 의원은 “환경부가 정하는 기준이 원칙과 논리가 없이 산업부와 업계에 밀려 터무니없는 기준을 만든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고, 과연 누구를 위한 환경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GHP 엔진은 자동차 엔진과 동일한 가스 사용 엔진이고 GHP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을 저감시키는 기술 역시 자동차와 동일한 저감시스템”이라며 “이번 환경부 입법예고에선 저감장치를 부착한 GHP는 배출시설에서 제외시키도록 했는데, 자동차의 경우 2000만대가 넘어도 배출가스 관리를 위해 정기검사와 정비를 문제없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GHP를 배출시설로 편입시켜 관리하지 못 할 이유가 없다”며 환경부의 안이한 정책을 질타했다.

이와 함께 인증 이후에 관리가 잘 안 돼 현장에선 방치되고 있어 유해 배출가스가 어떻게, 얼마나 나오는지 전혀 모르는 실정이라고 우려를 나타내며 사후관리가 필요한 GHP를 배출시설에서 제외시키면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될 게 자명하다고 경고했다.

또 일본에서는 GHP를 ‘바퀴 없는 자동차'라고 부르며 사후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데, 우리 역시 시설 설치 초기에는 엄격한 인증 절차(Certification system)를 거치게 하고 운영단계에서는 배출가스 성능 보증기간(Emission warranty period)을 도입하는 등 사후관리에 철저를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준병 의원은 “환경과학원에서 최적가용기법에 근거해서 실증 시험을 거친 과학적, 기술적 기준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부가 이런 엉성한 기준을 만든 것은 환경을 등한시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으며 “당초 환경과학원에서 제시한 엄격한 수치를 기준으로의 재조정은 물론 이번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한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채제용 기자 top27@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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