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장의 문제일까 아니면 정책의 문제일까
[칼럼] 시장의 문제일까 아니면 정책의 문제일까
  • 허은녕
  • 승인 2021.11.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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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 / 한국혁신학회 회장
▲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 / 한국혁신학회 회장
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
한국혁신학회 회장

[이투뉴스 칼럼 / 허은녕] 첫 장면은 영국의 주유소 대란이다. 영국 전역의 주유소에 차량들이 주유하려고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거나 아니면 기름이 떨어져서 주유소가 텅 비어 있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 9월 말에 갑자기 일어난 이 사태는 수 주간이나 지속됐다.  

이 현상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고유가? COVID-19? 세계적인 석유생산량부족? 언론에 따르면 영국의 주유소 대란은 BP 주유소에 기름을 나를 트럭 운전사가 부족하다는 보도가 나오자 소비자들이 사재기에 나선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그 근원을 보면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정책의 탓을 하고 있다. 

영국이 원래 트럭 운전사들이 부족했으며 이를 외국인들로 메워왔다. 그러다가 브렉시트 정책으로 영국이 외국인들의 영국 신규 취업을 봉쇄한 가운데 COVID-19로 외국인들이 대거 귀국하자 문제가 심각해진 것이다. 영국 존슨 총리는 그동안 트럭 운전사들의 임금을 올려서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라며 업계의 비자 발급 요구를 거부했다. 게다가 운전면허 관리기관의 파업으로 운전면허 시험도 대거 취소돼 영국 최대 석유회사인 BP조차 제품 운송을 위한 운전사를 고용하는데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영국 정부는 결국 트럭 운전사 5000여명 등에게 크리스마스까지 3개월 임시 비자를 주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정부가 브렉시트에 대비하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비판하면서 트럭 운전사 부족 규모만큼 10만 명에게 비자를 발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주유소 대란은 영국 석유제품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정책의 문제로 인한 부작용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장면은 중국의 석탄부족 사태다. 필요한 석탄이 부족해 전력생산에 문제가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국제석탄가격과 나아가 국제석유가격까지 상승시키고 있다. 전력생산부족은 또한 중국의 생산설비가동 중지로 이어져 이미 우리나라에도 요소수 등 각종 제품의 공급부족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럼 이 현상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고유가? COVID-19? 세계적인 석탄생산부족? 이 대란의 직접적 원인은 중국과 호주와의 분쟁이다. 중국이 자국의 막강한 구매력을 무기 삼아 호주에 고강도 경제 제재를 가했지만 그 피해는 오히려 중국으로 부메랑처럼 다가와 호주산 석탄을 사지 못해 심각한 석탄 대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중국이 호주를 길들이려다가 오히려 제 발등을 찍은 셈이 된 것이다.

중국은 그간 호주에서 가장 많은 석탄을 구매해왔다. 하지만 작년 10월부터 호주 석탄 수입을 중단하면서 그 대신 몽골 등 다른 수입처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했지만 충분한 양을 확보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지난여름 중국의 석탄수입량은 전년대비 약 7% 정도 감소했다.

중국의 석탄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자 국제석탄가격은 물론 대체제인 석유의 가격도 크게 폭등했다. 그뿐이 아니라 세계의 생산기지인 중국이 석탄과 전력 부족으로 생산량이 줄어들어 요소수를 비롯하여 중국이 세계로 수출하는 상품들이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사태가 1년 이상 갈 것으로 전방하고 있다. 중국의 석탄 대란은 세계 석탄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정책의 문제로 인한 부작용이었던 것이다. 

세 번째 장면은 바로 지난주 경제부총리가 주요 석유제품의 세금인하 시책을 발표한 것이다. 이번 정부에서 두 번째로 석유제품의 세금을 한시적으로 인하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고유가와 높아진 물가를 원인으로 들고 있지만 위 영국과 중국의 경우와 비슷하게 이 역시 정부 정책의 문제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국내 석유제품가격은 원래 1, 2차 석유위기를 지나면서 한동안 최고가격고시제도를 통해 정부가 가격을 통제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들어 국제유가가 안정되니까 1994년 원가연동제를 시작으로 1997년부터는 석유제품 가격의 결정을 완전히 정유업계에 맡기는 가격자율화 조치가 시작됐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휘발유-경유-LPG 간 가격조정이 수차례 있었지만 가격자율화 기조는 유지됐고 관련 세금은 그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계속 증가했다. 

이러한 정책기조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이명박 정부였다. ‘휘발유가격이 묘하다’면서 정유회사들로 하여금 원가를 수개월간 리터당 100원 정도 낮추어 팔도록 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충격의 완화가 주된 이유였지만 인하조치의 효과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두 번이나 석유제품의 가격인하 조치가 시행된다. 두 번 다 원가인하가 아니고 세금인하를 통한 가격인하다. 

이번 정책이 한시적으로 물가관리에 도움을 줄 것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부작용 역시 상당할 것으로 시장과 전문가들을 내다보고 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제 국민들이 국제유가가 조금만 올라가도 정부가 휘발유나 경유에 붙은 세금을 낮추어 줄 것을 기대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더욱 더 안타까운 것은 이번 인하조치가 정부가 탄소중립선언과 2030 NDC 상향조정을 발표한 지 채 일주일도 되기 전에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책으로 국민들은 기존의 휘발유나 경유로 가는 자동차를 더 몰고 다닐 것이다. 더 연비가 좋은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전기자동차나 수소자동차 등 친환경자동차로 바꾸지 않고 말이다. 이산화탄소를 줄이기는커녕 화석연료의 사용을 오히려 장려하는 시책이 발표된 것이다. 

또한 95%의 에너지를 수입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에너지정책기조인 에너지절약 및 이용합리화에 큰 생채기가 났다. 게다가 1990년대 이후 가격자율화를 시행한 이후 잘 지켜오던 국내석유제품이 시장가격 결정방식에 예외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무어, 전기요금도 가스요금도 원가연동제가 법이지만 정부가 지키지 않은지 오래이긴 하다.  

휘발유, 경유가격이나 전기요금 등 에너지제품의 가격을 시장의 균형가격, 즉 생산원가의 수준으로 현실화하고 원가에 연동하게하면 당장에 신재생에너지 공급이 더욱 활발해 질 것이며 전기자동차나 고효율의 자동차가 더 많이 팔릴 것이다. 그러면 정부는 재생에너지 보조금으로 나가는 예산을 아끼게 된다. 또한 에너지사용이 효율적이 되어 결국 발전소를 적게 지어도 된다. 그 아낀 예산으로 저소득층을 지원할 수도 있고 말이다. 물가는 금리를 올려 조절하는 것이 더욱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임은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당장 눈앞에 떨어진 불똥을 꺼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 정도 밖에 준비하지 않는다면 이번 사태로 인하여 나타날 다음의 변화와 기회에 준비하지 못하게 된다. 에너지 부문에도 시장의 순기능이 살아남아서 해야 할 일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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