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표의 ESG자본주의 해부 ④] 시대혁명인가, ESG워싱인가
[박진표의 ESG자본주의 해부 ④] 시대혁명인가, ESG워싱인가
  • 박진표 변호사
  • 승인 2021.11.15 0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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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내면서 사회적가치 동시 고려 난망"
글. 박진표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

③ ESG 자본주의 – '기업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④ ESG 자본주의 – 시대혁명인가, ESG 워싱인가
⑤ ESG 자본주의 – ESG의 덫 탈출하기

[이투뉴스/박진표 변호사] ESG의 확산은 기업의 목적을 ‘주주 이익 극대화’에서 ‘사회적 가치 실현’으로 바꾸고 자본주의의 성격을 주주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전환시켜 나가고 있다. 이윤추구를 넘어서는 사회적 책무 수행을 제한하는 족쇄가 풀린 기업들은 ESG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앞다퉈 ESG 경영전략을 선포하고 성과지표를 개발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소소하게는 일회용 컵을 리유저블컵으로 대체하고 친환경 캠페인을 전개하는 정도에 불과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크게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와 수소산업 등 수익이 불확실한 미래 청정산업에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감행하는 경우도 있다.

20세기 세계 석유산업을 이끌어 왔던 '석유공룡' BP와 로열더치셸은 돌연 식성을 바꾸어 탄소 식단을 거부하고 재생에너지 발전소 재배를 시작했다. 국내외 주요 투자자들은 기후악당이라는 오명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더 이상 석탄발전소에 자금을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고 외쳤던 공산주의조차 달성하지 못했던 전지구적 연대의식이 세계 시민, 기업과 국가 사이에 공유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ESG는 가히 시대혁명이라고 부를 만하다.

자, 그럼 이제 기업들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가 되었으니 이러한 기업들의 선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빈곤, 불평등, 산업재해, 기후위기와 같은 세계적 과제들이 해결되어 ESG가 추구하는 선한 모습으로 세상이 바뀌리라 낙관해도 될까? 이런 유토피아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상상속 세상일 뿐이다. 기업은 여전히 기업일 뿐이고, 투자자는 여전히 투자자다. ESG 선언문의 그 어디에도 기업과 투자자에 대해 물신주의 우상을 파괴하고 배금주의와 탐욕에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제 아무리 멋진 ESG 경영전략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기업의 제1 목적이 많은 이윤을 창출해 배당을 통해서든 주가 상승을 통해서든 주주들을 기쁘게 하는 것임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다. 주주들이 돈을 주고 기업의 주식을 산 이유는 그렇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만약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제1의 목적으로 삼고자 한다면, 돈을 주식 투자에 쓰지 말고 그 사회적 가치를 실현시켜 줄 비영리단체에 출연하면 된다.

이 지점에서 종래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현대의 ESG 자본주의를 보다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ESG의 핵심 구성요소인 G(지배구조)는 투자자인 주주가 경영자의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주주-대리인 이론에 입각한 주주자본주의적 요소이다. 어떤 측면에서 ESG 자본주의는 종래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부활한 것이기보다는 주주자본주의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주주자본주의는 주주 외의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무시해도 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소비자, 근로자, 지역사회, 환경에 대한 사회적 책무는 소비자보호법, 노동법, 환경법 등을 통해 정부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라는 것이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이었다. 물론, 현실에서는 주주자본주의에 지나친 배금주의적 요소가 침투하면서, (주로 영미계) 투자자들이 경영자들에 대해 주가나 단기이익 같은 단기 재무성과를 달성하도록 압박하였고, 경영자들은 이에 대응해 비용절감 명목의 구조조정 등을 통해 단기실적을 높임으로써 단기 재무성과에 연동된 막대한 규모의 인센티브를 챙겼다.

그런데, 단기 성과를 중시하는 주주자본주의는 (비록 기업의 반짝 성과는 높였을지도 모르지만) 기업의 장기적 역량을 훼손하는 한편, 소비자, 근로자, 지역사회, 안전, 환경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외면함으로써 여러 사회적 부작용(이른바 부의 외부효과; negative externality)을 초래하였고 기업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실추시켰다. 

이에 극단적 형태의 주주자본주의가 지닌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E(환경)와 S(사회)라는 다른 사회적 가치를 일정 부분 수용함으로써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자성(自省)의 결과물이 ESG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애당초 기관투자자들이 주도해온 ESG가 주주자본주의를 전면적으로 부정할 이유가 없다. 엄밀하게 말하면 ESG 자본주의는 주주자본주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점을 보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적절한 평가일 것이다.

더욱이, ESG 투자는 순수한 윤리적 접근법과는 차이가 있다. ESG는 (ESG 요소들의 도덕적 가치보다는)투자자와 경영자에 대해 장기적 시간지평 위에서 ESG의 비재무적 리스크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무적으로 중요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는 환경과 안전에 대한 소홀한 인식과 인색한 투자가 종종 환경오염과 산업재해를 야기하여 기업에 큰 재무적 손실을 입히고 평판을 손상시키는 경우를 보아 왔다. 그리고 석탄발전소가 급작스럽게 기후변화의 규제 리스크에 직면하게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아울러, ESG 선교사들 중 유니버설 오너(universal owner)라고 불리는 초대형 기관투자자들은 기후변화와 같은 전지구적 위험 요인이 자신의 포트폴리오 내 다른 투자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또한 중시한다. 결국, ESG는 적어도 투자수익 측면에서는 냉철한 자본주의적 접근법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ESG 자본주의의 시대가 도래하여 투자자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수용하였으니 경영자들이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서라면 원하는 대로 기업을 경영해도 되는 것으로 ESG의 요구사항을 해석했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오독으로 판명될 것이다. 근로자와 지역사회를 위한 후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기업의 재무성과에 연계되지 않는다면 기업 경영진은 주주로부터 사임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일례로, ESG를 열렬히 추구해온 프랑스 식품기업 다논의 CEO 에마뉘엘 파베르는 성과부진에 대한 주주행동주의 펀드의 압박이 심해지자 올해 3월 이사회에 의해 해임되었다. 제아무리 미래 청정산업에 대한 투자일지라도, 그것이 무모하게 이루어진다면 기업 경영진은 투자 실패에 대하여 충실의무 위반의 법적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물론, ESG 요소를 고려한 경영상 의사결정의 적법성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과거보다 한층 더 복잡하고 어려워지겠지만 말이다.

최근 기업들의 ESG 실행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에 대해, 기업들이 단지 이미지 세탁을 위한 ESG 워싱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지적 가운데 타당한 내용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ESG로 인해 기업의 경영자가 처하는 이중, 삼중의 고뇌, 즉 주주의 이익을 위해 상당한 재무적 성과를 내야 하면서도 이해관계자를 비롯한 사회적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문제임을 생각한다면, ESG 워싱을 비난하기에 앞서 ESG가 기업 경영자에게 덫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박진표 chinpyo.park@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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