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기세로 치솟던 국제유가가 수요감소에 힘입어 한풀 꺾이는 모양새다. 향후 100~120달러로 안정

될 것이란 민간경제연구소의 낙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야 석유 중독에 빠진 세계 경제가 정신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유가상승의 근본적 원인이 투기세력보다 공급능력 한계에 따른 것임을 감안하면 마음을 놓고 있을 처지가 못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곧 다가올 '유가 200달러 시대'에 대비해 에너지다소비 산업의 체질개선을 유도하고 고효율ㆍ저에너지

소비구조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신재생에너지를 확대ㆍ보급하고 관련 산업을 육

성해야 하는 일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이 이처럼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가운데 '에너지소비량 세계 9위, 석유소비 세계 6위'의 한국은 2030년까지의 에너지 정책 근간이 될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짜고 있다.

 

정부 출연 국책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뼈대를 세우고 정부가 동원한 각계 전문가들이 살을 보태는 식인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다. 진정 향후 20년을 내다보고 짠 것인지, 아니면 '급한불'에 물만 끼얹고 보자는 것인지 헛갈린다.

 

아무리 나랏돈으로 설립된 연구기관이라지만 "에너지산업의 여건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미래의 산업 변화에 대비하는 정책을 만들겠다(방기열 원장)"는 에경연에서 나온 것으로 믿기지 않을 정도다.

 

최근 윤곽이 드러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른 2030년 신재생에너지 보급목표는 9%다. 향후 20여년간 매년 0.21%씩 4%만 더 늘리겠다는 것이다. 매년 20% 이상 급성장하고 있는 관련 산업의 추이로 볼 때 이 정도는 정부 정책 지원없이 달성가능한 수준이다.

 

신재생에너지를 국가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실제로는 그럴 맘도, 계획도 없다는 얘기다. 이런 정부에게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나 에너지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보급과 산업 육성을 별개로 보는 시각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보급에 미온적인 정부 방침에 문제를 제기하니 "산업화가 더 중요하다"는 답변이 일관되게 돌아온다. 상식적으로 국내 테스트베드도 거치지 않고 내다 판 물건을 어느 나라가 사주겠는가.

 

더욱이 산업 육성은 민간경제연구소에 고가의 용역을 주고 단시일 내에 얻을 수 있는 답안이 아니다. 치열한 고민과 시행착오, 당국자의 소신이 뒷받침되더라도 오랜 기간을 거쳐야 얻어낼 수 있는 결과다. 

 

레스터 브라운 지구정책연구소 소장은 "지구 환경에 관한 지금은 전시 상황이나 다름없다. 지구환경이 이 지경이 된 원인은 시장 가격이 '진실'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석유 고갈시대의 진실에 걸맞는 고통을 달게 받을 마음의 준비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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