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실패 경영자 배임 책임문제로 귀착"
글. 박진표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

 

④ ESG 자본주의 – 시대혁명인가, ESG 워싱인가
⑤ ESG 자본주의 – ESG의 덫 탈출하기
⑥ ESG 자본주의 – 탄소중립과 에너지기업의 미래

[이투뉴스/박진표 변호사] ESG 자본주의와 경영자 자본주의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는 별칭을 공유하고 있지만, ESG 자본주의는 경영자 자본주의가 아니라 주주자본주의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리고 ESG의 이러한 양면적 속성은 기업 경영자들을 수시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뜨릴 것이다. ESG 시대의 경영자는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면서도 사회적 가치 실현을 게을리해서는 안되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다는 명분 하에 주주의 이익을 부당하게 희생시켜서도 안된다. ESG는 경영자에 대해 두 마리 혹은 세 마리 이상의 토끼를 동시에 잡으라는 요구다.

경영자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현재까지 ESG가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히 정의된 바 없다는 점이다. ESG가 요구하는 다양한 사회적 가치들 가운데 어떠한 사회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하는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결국 ESG는 경영자에게 (경영자의 능력 밖에 있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판단을 내릴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사회적 가치들 가운데에는 젠더 이슈와 같은 사회적 또는 정치적으로 매우 예민한 사항도 있다. 그리하여, 몇몇 첨예한 갈등의 대상인 사회적 가치에 대한 경영자의 오판은 기업을 사회적 갈등의 한가운데로 말려들게 함으로써 자칫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무시하는 때만큼이나) 기업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 

그리고, 기업의 ESG 실행에 관한 기준과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로 인해 경영자는 ESG 실행에 어느 정도의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지, 그리고 ESG 투자에 얼마만큼의 리스크를 부담해도 되는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기업이 지역사회, 소비자, 환경을 비롯한 사회적 가치를 위한 지출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수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탄소중립을 위한 청정기술이나 청정사업은 아직 경제성이나 성공가능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그 결과 ESG 실행을 위한 대규모 지출이나 투자는 사후에 경영자의 자기과시용 낭비 또는 무모한 투자결정으로 공격받게 될 수도 있다. 

ESG 실패는 자연스럽게 경영자의 배임 책임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ESG를 한답시고 경영에 실패해 주가를 크게 떨어뜨린 경영자를 주주들이 고운 눈으로 바라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경영자는 ESG 실패에서 초래되는 법적 위험에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ESG 실패에 대해 경영자가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에 의해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불확실하다. 투자결정에 ESG 요소를 고려하는 것이 수탁자 의무에 위반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몇몇 해외 보고서(2005년 프레시필즈 보고서 등)가 나와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결론이 모든 ESG 실행에 그대로 적용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현실에서의 법적 판단은 언제나 개별 사안에 따라(즉 case-by-case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ESG는 기업 경영자가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큰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경영자로 하여금 ESG 실행에 수반하는 새로운 리스크 요소들을 검토하느라 옴짝달싹 못하도록 하는 덫이 될 수도 있다. ESG의 덫에 걸려든 이상 당황해 발버둥 치는 것은 몸에 더 큰 상처만 남긴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은 조용한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업이 ESG의 덫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기업의 ESG 요소별 취약점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첨예한 갈등요인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경영자가 소비자, 근로자, 지역사회, 안전, 환경, 젠더, 소수자 등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대응조직을 갖추고 외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

이때 유의해야 할 점은 ESG가 단일기업 차원에서 실행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수의 ESG 서적에서 소개되는 나이키, 유니레버, 네슬레 등의 사례를 보면, ESG는 자신의 공급망(supply chain)을 구성하는 기업에 대해서도 실행할 것이 요구된다. 또한 기업의 ESG 전략이 ESG 워싱이나 단순한 기업홍보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ESG 공시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ESG 공시는 그저 ESG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우리 기업이 이것저것 많이 하고 있다고 나열만 할 것이 아니라, ESG로 인한 기업의 장단기 리스크, 취약요소, 목표 및 그 달성방안 등에 대한 소상한 분석을 투자자와 여러 이해관계자들에게 공개하고 기업의 ESG 실행을 약속하는 것이어야 한다. 

ESG 공시가 투자자와 사회에 대한 약속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 사회적 제재가 따르게 됨도 유의해야 한다. 사회적 제재에는 기업의 평판 하락,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근로자들의 노동쟁의, 지역주민들이나 환경운동가들의 시위, 투자자의 투자 기피 등 다양한 형태가 있을 것이다. 최근 도이체방크의 자산운용부문인 DWS 그룹에 대해 ESG 투자자산 인정기준 문제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ESG 투자를 과대포장한 것이 법적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ESG 경영에 관한 공시나 홍보가 비교적 자유롭게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업 경영자가 주가를 부양하고자 또는 소비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ESG와 관련하여 근거 없는 자랑을 일삼거나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하는 경우, 이는 분명히 머지않은 미래에 투자자들의 주가조작소송 또는 소비자들의 사기소송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ESG 실행에는 대체로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 따라서 ESG 실행은 지금 당장의 현실의 제약요건, 특히 예산상 한계와 기업의 수익성을 충분히 고려해 추진되어야 한다. 투자자들은 기업 경영자가 선한 기업이라는 이상을 마음껏 좇도록 허락할 만큼 관대하지 않다. 충실의무 위반에 따른 경영자의 배임 리스크를 저감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특정 ESG 과제를 실행해야 할 정당성과 그것이 ESG 리스크 회피 혹은 수익성 제고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투자자를 납득시킬 수 있을 정도로 면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ESG 실행과 관련한 최고의 난제는 기업이 탄소중립을 위해 사업목적을 변경해야 하는 경우다. 사업목적의 전환은 해당 기업에 막대한 비용과 리스크를 부과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보다 심층적인 논의를 위해 다음 호에서 다루기로 한다.

박진표 chinpyo.park@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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