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광희 아고라 에너르기벤데 한국담당 선임연구원
"에너지이슈 너무 빨리 정치이념화 된 후폭풍 크다"

▲광희 아고라 에네르기벤데 한국담당 선임연구원
▲광희 아고라 에네르기벤데 한국담당 선임연구원

[이투뉴스] 아고라 에네르기벤데(Agora Energiewende)는 2012년 설립된 독일 민간 에너지정책 싱크탱크다. 연혁은 짧지만 100여명의 박사급 인력을 거느리고 있고, 다수 제안을 정책으로 관철시켜 명성이 높다.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접근으로 정치인들의 수용력을 높인 게 주효했다. 이 단체는 보폭을 아시아까지 넓히고 있다. 올초 베이징과 방콕에도 사무실을 냈다. 연구원의 3분의 1은 비(非)독일어권 출신이다. 

작년 10월부터 이 단체 소속이 된 염광희 박사<사진>의 직책은 ‘한국담당 선임연구원(Senior Associate South Korea)’이다. 원자력을 전공한 그는 환경단체 활동가로 활약하다 2008년 독일 유학길에 올라 ‘재생가능에너지 입지갈등’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를린자유대 환경정책연구소에서 독일의 탈원전‧재생에너지 정책 변천사를 지켜봤다. 문재인 정부 출범 때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실 행정관으로 합류해 작년까지 일했다. 에네르기벤데 선임연구원 신분으로 업무차 이달 13일 입국한 그를 만났다.

- 1년여 사이 한국은 큰 변화가 있었다.

“격세지감이다. 작년 10월 대통령이 넷제로(Net Zero) 선언을 했고, 이번에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40% 상향까지 나왔는데 개인적으론 생각보다 (수준이) 높다는 생각을 했다.”

- 독일의 정치지형과 정책동향 변화는

“9월말 선거가 끝났고 최근 연정 합의문이 채택됐다. 중도좌파인 사민당, 기후보호에 앞장서는 진보성향 녹색당, 시장주의를 옹호하는 자유민주당이 집권한다. 보수이자 기업 친화적인 자유민주당이 함께 하면서 기후정책에 제동이 걸릴 것이란 우려와 달리, 당초 2038년이었던 석탄발전 폐쇄시기를 2030년으로 앞당겼고,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목표를 80%로 높이는 등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의 보고서 내용이 많이 반영되었다. 지난 4월 독일 헌법재판소 판결의 영향은 지대하다. 선거 직전의 기민당·사민당 정부는 기후중립 시기를 2045년으로 앞당겼고,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줄이기로 했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65%로 강화했다. 이번 새 정부의 연정 합의문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대책의 성격이다."

독일은 2019년 기후보호법을 제정하면서 2050 탄소중립을 위한 2030년까지의 세부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듬해 청소년들이 ‘2030년 이후의 자유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냈고, 독일 헌법재판소는 4월 29일 위헌 판결을 통해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2030년 이후에도 살아갈 청소년들의 자유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뜻이다. 독일 정부는 내년말까지 새 기후보호법을 제정해야 한다.

- 헌재 판결 일주일 전 아고라 에네르기벤데는 탄소중립 시점을 2045년으로 앞당기고 2030 NDC를 65%로 높여야 한다고 보고서를 냈다는데, 반응은 어땠나.

“독일 환경단체들과 비교하면 우린 느슨한 편이다. 보고서를 내면서 두 가지를 전제했는데, 하나는 독일경제가 연간 1.4% 성장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일각의 탈성장 담론과는 결이 다르다. 또 하나는 개인의 행위변화는 최소화 한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으로 시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고 소위 ‘비즈니스 애즈 유주얼(Business as usual)’로 가자는 거다. 우린 의사결정권을 가진 정치인들과 산업계가 수용가능한 결과를 내놔야 실질적인 정책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다.”

- 한국에선 여전히 탈원전 등 퇴행적인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어떻게 보나

“에너지이슈가 너무 빨리 정치이념화 된 후폭풍이다. 야당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가장 약한 고리로 보고, 그걸 집중 부각해 불필요하게 정치이념화했다. 그런데 백번 양보해 원전을 계속 건설한다 치자. 과연 국내서 새로운 부지를 구할 수 있나. 최근에는 SMR(소형모듈원전)을 대단한 신기술인냥 얘기하고 있는데, 크기를 줄인 원전일 뿐이다. 크기를 줄인다고 사고발생 가능성이 낮아지나. 만약 개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국내에 설치가 가능할까. 연료전지 발전소도 반대하는 상황에서 SMR 신규설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 현지 재생에너지 시장 동향과 주요 이슈는 무엇인가

“지난해 독일 전체 전력생산량의 46%를 재생에너지가 감당했다. 하지만 우리 싱크탱크는 훨씬 더 많은 재정이 재생에너지에 투입돼야 하고, 독일의 지원제도에도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지역수용성을 강화해야 한다. 독일 역시 육상풍력 이격거리 규제가 있는데 넷제로 달성을 위해서는 이 규제를 풀어야 하는 숙제가 있다. 태양광은 신축 건물에 의무화 해야 하고, 대규모 해상풍력도 확대해 재생에너지 보급을 더 가속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민수용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가 관건인데, 우리처럼 보상액만 높이는 접근은 발전원가만 높이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 독일은 일찍 시작했지만, 한국은 미적이다가 한번에 비중을 높여야 하는 처지다. 게다가 국민의 인식차도 큰데

“체르노빌 원전사고 때 독일은 방사능 낙진 피해로 직격탄을 맞았다. 장기간 다운증후근 출산자가 급증했고, 사고 후 30년이 지난 최근에도 뮌헨 야산에서 수확한 버섯이나 멧돼지에서 EU기준치의 30배가 넘는 세슘이 검출됐다. 그러다 기술선진국으로 생각했던 일본에서마저 후쿠시마 사고까지 발생하니 충격이 더 컸다. 메르켈 총리는 사고 6개월 전 독일 원전의 수명연장을 결정했었는데, 사고 이후 원전정책을 바로 뒤집었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 직후 베를린을 방문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와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원전정책 방향을 묻는 질문을 받고 ‘위기는 기회’라고 답했다.”

- 기후위기에 대한 현지 언론의 관심은 어떤가

“독일 언론은 우리로 치면 저녁 8시 메인뉴스에서 최소 하루 한 꼭지 이상의 기후변화 관련뉴스를 다룬다. 캘리포니아 산불, 밴쿠버의 혹한, 호주 산불, 인도의 홍수, 유럽연합 기후 정책 보도 등이 매번 등장한다. 그러다보니 국민들은 석탄발전이 기후변화 주범이고, 재생에너지가 현실적인 대안이란 생각을 기본전제처럼 갖고 있다. 우리(언론은)는 기후위기에 대한 고민은 없고, 정치인들의 원전 논란만 부추기는 듯 하다.”

- 최근 북해 풍력발전량 감소 등으로 에너지가격이 급등했는데, 반향은 크지 않았나

“연료비가 0원인 재생에너지가 40%이상 보급되면 첨두로 써야하는 천연가스 부하가 크게 줄어든다. 지난해 유럽내 전력 도매요금은 폴란드와 체코가 가장 비쌌고 독일이 가장 저렴했다. 심지어 원전으로 전력의 65% 이상을 생산하는 프랑스보다 낮았다. 반면 독일은 높은 재생에너지 부담금으로 유럽에서 가장 비싼 전기요금을 낸다. 하지만 지멘스나 벤츠, BMW 같은 기업들은 도매시장에서 직거래로 전력을 구매해 사용하므로 다른 나라보다 값싸게 전기를 쓰고 있다. 독일 국민들도 재생에너지 확대로 요금부담은 높지만 국가 경제 전체로는 이익이란 걸 잘 안다.”

▲2017년 6월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17년 6월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여‧야 대선 후보간 탄소중립에 관한 인식차도 커 보인다.

“탄소중립과 NDC 강화는 국제사회와의 약속이다. 당장 유럽서 탄소국경조정(CBAM) 등이 현실화 되면 우리는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위험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라도 다음 정부가 할 일은 정말 많을거다.”

- 한때 현 정부 일원으로 일했는데, 어떤 점이 가장 아쉬웠나

"결국 정치적 리더십이다. 돈줄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와 에너지 주무부처인 산업통상부 관료들에 포획돼 있었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아래로 잘 내려가지 않는 문제가 가장 컸다. 어찌 보면 단임 대통령제의 폐해다. 공무원들은 처음 2~3년이 지나면 움직이지 않는다. 최소 경제부처 장관은 선출직 경험이 있는 정치인들이 맡는 게 맞다. 이건 여의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경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장관으로 앉힐 정치인은 많지 않다. 장관이 된 관료들은 3년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임기말 국정관리'라는 명분으로 청와대 수석이나 실장자리까지 관료가 차지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시민단체나 교수 출신은 정당에 들어가 훈련을 받은 뒤 (장관을)맡는 게 낫다.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다른 부처와의 협업 또는 딜(주고받기)이 얼마나 잘 이뤄지느냐가 더 중요한데 단체나 교수출신은 그걸 전혀 못한다. 오히려 자기 부처만 닦달한다.”

- 관료들의 복지부동도 나름 핑계가 있다. 월성원전 사건의 경우 담당공무원이 구속됐다.

“물론 공무원들이 능동적으로 일할 분위기가 조성이 안돼 있다. 이걸 풀어주는 건 대통령도 아닌 국회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줘야 가능하다. 법이 없으면 공무원들은 일을 안한다. 일을 하지 않을 좋은핑계가 만들어진다. 누가 지시한거냐, 언제 지시했냐, 그걸 물어보면서 녹음하고 기록한다.”

- 갈 길은 먼데 기후위기로 발등에 불은 떨어졌다.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탈탄소 신기술이 들어와야 한다. 그러니 신기술을 육성할 좋은 계기가 마련된 것이고, 현 정부서 추진한 2025년까지의 그린뉴딜을 마중물로 2050년까지의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 자체 분석으로는 GDP(국내총생산)의 약 6%를 저탄소 기술에 투자하면 넷제로 달성이 가능하다. 사실 독일은 돌다리도 두드리면서 가는 성격이라 느리다. 반면 우린 뭐 하나에 꽂히면 매우 빠르다. 다음정부가 어떤 시그널을 주고 얼마나 예산과 사람을 배치하느냐에 따라 탈탄소 산업구조전환도 빠르게 이룰 수 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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