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차 송·변전比 30조원 늘린 78조원 선제 투자
배전감독원·계통감독원 설립논의도 검토키로

▲제주초전도센터에서 엔지니어들이 초전도케이블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정부와 전력당국은 2030년까지 78조원을 투입해 재생에너지 설비 100GW 시대를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E2 DB
▲제주초전도센터에서 엔지니어들이 초전도케이블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정부와 전력당국은 2030년까지 78조원을 투입해 재생에너지 설비 100GW 시대를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E2 DB

[이투뉴스] 정부와 전력당국은 현재 20GW 수준인 재생에너지가 오는 2030년 100GW까지 늘어나는 상황에 대응해 모두 78조원을 투자해 전력망을 선제적으로 확충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계통운영에 관한 거버넌스 정립을 위해 가칭 ‘계통감독원’ 설립을 검토하는 한편 계약전력 10MW이상 소비자를 상대로 전력계통 영향평가제를 시행해 소비지 분산을 유도키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 전력거래소가 29일 서울 양재동 한전 아트센터에서 만나 논의한 ‘2030 NDC 달성을 위한 전력계통 혁신방안’에 따르면, 당국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 NDC 상향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이 대폭 증가할 것으로 보고 이를 뒷받침할 안정적 전력망을 구축하기 위해 2025년까지 각 부문별 혁신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재생에너지 주도 탄소중립 계통망 구현’을 비전으로 하는 이번 방안은 전력망 적기 확충과 유연 운영, 전력망 기반 혁신 등을 3대 과제로 연도별 14개 세부과제를 담고 있다. 

우선 전력망 확충은 선제적 투자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 9월 수립한 9차 송‧변전계획에 2050 탄소중립과 2030 NDC 상향분을 추가 반영하는 형태로 보완 로드맵을 만들어 제10차 전력계획 수립 전인 내년 상반기까지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당국은 2030년까지 기존 9차 전력계획분보다 약 40GW의 재생에너지 설비가 추가돼야 NDC 감축목표 이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으로는 현재 6.6%를 4.5배(30.2%) 이상 높여야 한다. 이 비중을 토대로 환산한 재생에너지 필요설비 용량은 2030년 기준 100GW에 육박한다. 단순계산으로 내년부터 매년 8~9GW씩 태양광과 풍력을 증설해야 달성 가능한 수치다. 

2030년까지 필요한 전력망 보강비용은 78조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9차 송‧변전계획에 반영한 송‧변전투자액 23조원과 배전설비투자액(24조원)보다 약 30조원 증액된 규모다. 한전은 내년 상반기까지 지역별 최대수요와 재생에너지 용량을 예측해 구체적인 전력망 보강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발전계획(수급계획)보다 전력망 확충계획이 먼저 제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당국 관계자는 “기존처럼 발전설비 계획이 결정된 뒤 송‧변전계획을 세워 전력망을 후행적으로 보강할 경우, 건설기간 시차로 인한 발전제약이 대량 발생할 수 있다”며 “선(先) 전력망-후(後) 발전으로 전력망 구축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송‧변전주변지역보상에관한법률과 전원개발촉진법도 현실에 맞게 개선해 주민수용성을 높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정된 전력망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실시간 모니터링과 원격제어 통합관제시스템 구축, 배전망운영자(DSO, Distribution System Operator) 도입도 중‧단기 과제로 추진된다.

산업부는 전력거래소와 한전, 에너지공단이 제각각 관리하는 재생에너지 관제와 지역단위 감시‧제어, 저압 모니터링 등을 2025년까지 통합해 실시간 원격제어 시스템으로 엮기로 했다. 아울러 500kW이상 재생에너지 설비에 유효‧무효 출력제어가 가능한 단말기를 보급하고, 전압‧주파수 이상 시 계통연계 기준을 유지하는 스마트인버터 관련표준을 내년까지 정비할 계획이다.

배전망과 전력계통 운영에 관한 기준정비와 거버넌스 개편도 검토하고 있다. 당국은 재생에너지 출력제한(curtailment)에 관한 원칙과 대상, 보상방안 등을 마련해 분쟁을 예방하고, 신뢰도 유지에 관한 설비기준도 정립해 계통 안정성을 제고한다는 방침이다. 지금까지는 관련 규정이 갖춰져 있지 않거나 이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기관이 없었다.

전력계통 관련 거버넌스 개편 논의는 한전주도 DSO 도입주장과 별도의 상위 독립기구인 계통감독원 설립 주장 사이에서 아직 갈래가 정해지지 않은 모양새다. 정부는 DSO 도입과 이에 따른 배전감독원 설립을 추진하는 한편 전력 유관기관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전력계통 거버넌스 TF'를 꾸려 계통 전반을 관리감독하는 계통감독원 필요성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전력시장 측면의 혁신작업도 본격화 하기로 했다. 전력당국은 현행 전력시장체제로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예측 불확실성과 실시간 변동성을 반영한 계통 운영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우선 내년부터 실계통기반의 하루전 시장을 도입한 뒤 이듬해부터 재생에너지 발전량 입찰제를 도입해 예측 범위내 발전기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실시간시장 신설과 보조서비스시장 개설은 2025년으로 밀렸다. 

이와 함께 2023년부터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16개 시·도와 성장관리권역 중 에너지자립도가 일정 기준 미만인 지역에 들어서는 계약전력 10MW 이상전력소비시설을 대상으로 전력계통 영향평가제를 시행해 자급자족설비 설치를 유도하고, 데이터센터의 경우 비수도권으로 입지를 유도하되 수도권 입지가 불가피한 경우엔 자가설비를 갖춰 계통부담을 낮추도록 할 계획이다.

거리비례 요금을 부과하지 않아 유명무실해진 송·배전망 이용요금제의 경우 적절한 이용료 부과로 발전소 입지신호를 살리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영국의 경우 송전망 이용료를 27개 지역으로 구분해 발전설비가 집중된 북부지역엔 높은 이용료를 부과하고 있다. 

한편 계통 유관기관 주도로 수립된 이번 혁신방안은 여당 대선후보의 '에너지고속도로' 공약과 더불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제적 전력망 확충의지는 고무적이지만, 이 수준의 대응과 시장정비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전영환 홍익대 교수는 "현재 신재생발전량 비중 6.6% 가운데 태양광·풍력은 3.6%, 설비용량으론 20GW 수준"이라며 "태양광·풍력이 40GW만 되어도 원전과 합해 수요를 초과하는 경우가 생긴다. 어떻게 운영할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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