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양이에게 생선의 행방을 묻다
[칼럼] 고양이에게 생선의 행방을 묻다
  • 한세경
  • 승인 2022.01.01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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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경 경북대학교 전기공학과 부교수 (공학박사)
▲한세경 경북대학교 전기공학과 부교수 (공학박사)
한세경
경북대학교
전기공학과 부교수
(공학박사)

[이투뉴스 칼럼 / 한세경] 우리는 매일같이 선택의 연속선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오늘 점심 메뉴를 정하거나 내키지 않는 저녁 회식에 참석할지 여부에서부터,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가고, 어떤 직장에 취업할지, 사귀던 연인과 결혼을 해야 할지 말지 등 크고 작은 다양한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러한 선택지 앞에서 우리는 최대한의 정보를 모으고 주변의 조언도 구하며 고민을 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최선을 선택하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가 이성에 따라 주체적으로 하고 있다고 믿는 이러한 선택이 많은 경우 합리적이지 못하며 오히려 본능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비합리적 결과라는 것이 이미 뇌 과학이나 진화생물학 쪽에서는 정설로 굳은지 오래다.

필자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이를 좀 더 공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우선 합리적 선택을 위해서는 결과를 미리 모의해볼 수 있는 모델이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인공위성을 제어하거나 로봇 팔을 제어하는 것 같은 물리적 문제에서는 모터의 입력 값에 대한 결과를 미리 모의하기 위한 수학적 모델이 필수적이다. 우리가 행하는 수많은 선택에도 결국 그에 따른 결과를 미리 고민하기 위한 모델이라는 것이 필요하고 주어진 모델에서 최적의 결과를 내기 위한 선택의 방법론 또한 필요하다. 일반적인 기계장치에서는 동일한 특성의 제품을 미리 실험해가며 데이터를 도출하여 물리적 모델을 만들면 된다. 가령 충전조건에 따른 배터리 전압변화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특성을 지니는 여러 배터리에 전류크기, 온도, 압력 등의 입력 값을 다변화하여 실험을 수행하고 그에 따른 전압 변화를 계량화하여 모델을 만든다. 

그런데 실제 사회에서는 이러한 모델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객관적이고 검증된 방법을 추구하기보다는 가까운 지인의 조언에 의존하여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졸업에 맞춰 진로 고민을 하는 학생들을 관찰해 보면, 많은 경우 보다 전문성이 있거나 객관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전문가보다는 결국엔 본인과 가까운 사람, 즉 부모의 의견에 따라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관계가 친밀하다는 것이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학생의 전공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경우가 대다수이다. 특히 석사나 박사 진학 후의 삶에 대해서는 심지어 특이 사례를 기반으로 잘못된 일반화를 하고 있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진로 선택을 할 때는 이들 부모의 조언이 절대적이다 보니 결국 많은 경우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된다.

이는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중대한 선택에 있어서도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판단이 이루어지기보다는 소수 권력자들의 개인적 득실에 따라 밀실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전부터 있어왔던 문고리 몇 인방이니 요즘 나오는 핵심 관계자니 하는 단어들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프로파간다적인 대중적 선동을 통해 민주주의라는 그럴듯한 포장까지 입히는 사례 또한 요즘 우리 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ESS나 전기차 화재사고를 다뤄온 그 동안의 정부 자세 역시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힘을 지닌 소수의 이해관계 당사자들에게 직접 해결책을 모색하고 사태의 본질까지 정의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현재의 ESS 사태를 보면, 문제에 대한 대응을 정부가 제조사에 직접 맡기고 있다. 제조사가 현장을 통제하고 제품을 회수함으로써, 객관성과 전문성을 지닌 제3자는 아예 개입할 여지조차 없다. 그리고 문제 발생에 대한 책임은 정부나 제조사가 지는 게 아닌, 이들을 신뢰하고 사업을 진행했던 민간 사업자들이 오롯이 떠안는 모양새다. 비싸게 도입한 ESS는 안전이라는 대의적 명분 아래 운전 중단 또는 감축을 겪고 있고, 빈번한 화재에 따른 전기차의 시세 하락이나 주차 거부 문제도 오롯이 개인이 그 부담을 모두 짊어지고 가는 상황이다. 의료 분쟁에 대해서 환자나 다른 전문가의 개입은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사고를 일으킨 병원에 원인 조사와 대책을 세우게 하는 꼴이다. 

배터리는 사람의 몸과 비슷하다. 혈압이 조금 높고 혈당이 조금 높다고 해서 사람이 당장 죽지는 않지만, 이러한 문제를 인지해서 잘 관리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 배터리도 마찬가지다. 배터리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계량화하고 당사자가 이를 인지하여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배터리 문제에 대해서 정작 피해 당사자는 이를 알 방법도 권리도 갖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제조사에 맡겨야 하는 것은 부당하다. 

얼마 전 핀란드의 한 남성이 본인의 전기차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킨 뉴스가 국내에까지 보도되었다. 원인도 모른 채 제조사가 무턱대고 수천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배터리를 교체하라고 하였다는 게 이유다. 필자도 동일 제조사의 전기차를 타고 있는데, 명색이 배터리 전문가라고 하면서도 본인 소유 차량의 배터리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다. 아니 알 수가 없다. 근본적으로 제조사에서 배터리 관련 데이터를 오픈하지 않아, 설령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관련 데이터를 취득하더라도 제조사의 클레임에 해볼 수 있는 게 없다. 
현재 전기차가 정기검사를 위해 교통안전공단에 가면 검사할 수 있는 항목이 전기적 절연 측정 외에는 별로 없다. OBD2를 통해 제조사가 제공하는 정보도 락이 걸려있거나 수시로 변경돼서 외부적 판단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오로지 제조사의 스캐너를 통해 제조사가 자체적으로 진단한 결과를 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차의 보증기간이나 안전과 관련된 정보를 이해관계 당사자인 차량 제조사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ESS 역시 현재는 제조사가 데이터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전문적 진단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제품에 접목조차 해볼 수가 없다. ESS의 셀 전압, 전류 데이터는 제3의 기관에 일절 공개되지 않으며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블랙박스 데이터 역시 현실적으로 소비자조차 접근할 수 없다. 오로지 제조사가 제공하는 정보에만 의존해야 하고 사고가 난 이후에도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배터리 셀의 전압, 전류 정보의 개방에 대해 제조사가 주체적으로 정할 수 있게 하는 권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제품은 소비자가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한 것이며, 이러한 정보는 코카콜라의 레시피처럼 제조사의 기술적 보안과 관련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소비자의 안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만큼,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다양한 3rd party 전문가들이 판단할 수 있게 해줘야 할 정보다. 

중국에서는 전기차의 공공 데이터화가 의무로 되어 있어, 일정한 자격만 있으면 누구나 해당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부가서비스나 전기차 관련 서비스들이 빠르고 다양하게 발전해 나아가며 산업계 전체가 선순환 되고 있다.
배터리 셀에 대한 제조기술만 확보한다고 해서 배터리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엔 비싼 인건비로 인해 오히려 제조공장까지 해외로 이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배터리는 복잡한 시스템이며 수많은 부가적 장치와 함께 엄밀한 관리가 필요하다. IT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안전과 관련된 이런 이슈조차도 보물처럼 꽁꽁 싸매고 있는데 어떻게 관련 산업이 발전할지 걱정이다. 

마침 이 글을 적고 있는 와중에 우연히 보게 된 영화가 있다. Don’t Look Up. 지구와의 행성 충돌을 예견한 전문가가 이를 대통령에게까지 보고하지만 이러한 전문성과 객관성을 묵살당한 채 정권의 실리와 해당 정권을 지원하는 거대자본 집단이 제안한 검증되지 않은 방법론이 독단적으로 채택되어 결국은 지구가 멸망하게 된다는 블랙코미디 영화다. 전문성보다는 소수집단의 이해득실에 따른 행동이 얼마나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요즘 같은 때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 영화다.

대답 없는 고양이에게 생선에 대해 묻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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