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탄소중립 대전 최전선은 전력산업"

ⓛ - 탄소중립 대전의 서막이 올랐다
② - 탄소중립과 전원믹스

[이투뉴스/박진표 변호사] 탄소중립은 기후변화라는 세상의 종말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복음인가? 아니면 인류를 현대 물질문명을 붕괴시켜 인류의 행복을 앗아갈 교조적 이데올로기인가? 현시점에서 탄소중립에 대한 극단적인 견해 대립은 탄소중립기술의 타당성, 즉 실현가능성과 경제성에 대한 시각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다.

기후엘리트들이 묘사하는 탄소중립의 미래는 친환경 에너지의 지상낙원이다. 한계비용 제로(0)인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전기 수요의 대부분을 충족하게 되어 전기요금이 대폭 낮아진다. ESS 또는 그린수소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의 기상의존도와 간헐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설사 부득이하게 화석연료를 사용하더라도 CCUS(탄소포집이용저장)를 통해 탄소배출을 억제할 수 있다.

반면에 탄소중립 회의론자들은 기후엘리트들이 제시하는 청사진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들은 에너지의 안정적 수급과 경제체제 유지를 위해 상당 기간 전통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이렇듯 기후엘리트들은 탄소중립의 녹색 미래를 찬양하지만 회의론자들은 탄소중립의 '회색(또는 깜깜한) 미래'를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탄소중립기술의 타당성에 관한 다툼은 탄소중립 대전(大戰)의 전초전에 불과하다. 양측의 총력전은 탄소중립기술의 개발과 확산이 기술적·경제적 사유 또는 수용성 문제로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경우, 에너지수요가 크게 증가하여 기존 탄소중립정책의 예상치를 훨씬 넘어서는 탄소가 배출되는 경우 또는 (업스트림이든 다운스트림이든) 화석연료 자산들이 청정에너지 보급속도보다 너무 빨리 좌초해 버려 경제에 큰 악영향이 초래된 경우에 벌어질 것이다.

최근 국내외에서 돌아가는 사정을 감안할 때 결코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없는 이러한 상황에 직면해서도 전세계 혹은 각국이 계속해서 탄소중립을 실행할 것인가? 이것이 탄소중립 대전의 승패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이때, 만약 기후엘리트들이 완벽하게 승리하더라도, 그들이 믿었던 탄소중립기술이 실패하였으므로 그들에게는 에너지와 재화의 수요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 외에는 스스로 정한 시한 내에 탄소중립을 실행할 수 있는 수단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그리하여 그 미래는 영롱한 녹색 빛깔이 아니라 덕지덕지 회색 덧칠이 된 녹색일 것이다.

우선 탄소 기반 에너지와 재화에 높은 탄소세를 부과하는 것이 추진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급격한 그린플레이션으로 이어져 사회적 취약계층의 생존을 위협하고 중산층의 경제적 곤궁을 초래할 것이다. 반면에 부유층은 별다른 경제적 타격을 입지 않은 채 에너지와 재화를 자유로이 소비하며 여전히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할 것이다. 이는 경제적 불평등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탄소배출의 공정성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부자라는 이유로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해도 될 특권이 주어지는 것이 정의로운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모든 개인에게 동일한 탄소배출 할당량을 부여하고 개인별 탄소배출량을 모니터링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출퇴근이나 여행을 위해 휘발유 승용차나 제트 비행기로 이동하는 거리, 그리고 (탄소전원이 남아 있는 경우) 전기차 운행거리는 탄소배출량으로 환산된다. 육류 섭취량 역시 탄소배출량으로 환산된다.

장거리 해상운송이 필요한 커피 또한 운송거리를 바탕으로 탄소배출량을 계산한다. 어쩌면 막대한 탄소배출을 일으키는 장거리 해외여행은 허가제 또는 추첨제가 시행될지도 모른다. 할당량을 초과하여 탄소를 배출한 개인에게는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추가적인 탄소배출활동을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 탄소배출 할당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이동거리, 전기소비내역, 재화 구매내역과 취식기록 등을 저장하고 이를 탄소배출량으로 환산하여 관리하는 탄소중립시스템의 도입이 필수적이다. 개인별 탄소배출량 추적을 위해 (현재의 백신패스처럼) 모든 개인의 QR 코드 사용이 의무화된다. 최근 스웨덴에서는 신체에 이식하는 마이크로 칩 방식의 백신패스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하니, 장래에는 이러한 기술이 적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하는 강압적 대응수단에 대해 대다수 국민이 태연하게 감내해 줄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이렇듯 사회경제적 현실을 도외시한 탄소중립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나아가 자유민주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자칫 탄소중립 자체에 대해 커다란 역풍이 발생할 가능성마저 있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탄소중립 정책은 기술적·경제적 타당성이 인정되는 탄소중립기술을 바탕으로 최대한 현실적으로 수립되어야 하며 그와 더불어 그 실행방식의 자유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대 탄소물질문명의 사회문화적 요소를 차근차근 탈탄소화하는 작업이 함께 고민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예컨대, 원거리 직장에 출퇴근하거나 여행을 하기 위해 승용차 대신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대중교통에 대한 투자를 과감하게 늘리고, 되도록 원거리 출퇴근을 하지 않도록 거점 오피스를 활성화하는 것은 비교적 손쉬운 방안이다.

직장인이 도심지 인근에 거주하면서 다른 지역과 큰 차이 없는 자연환경과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수요를 줄이는 도시구조를 만드는 것도 장기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기 소비, 해외여행, 플라스틱 사용 등 탄소 소비에 대해 적정 수준의 탄소세를 단계적으로 부과한다면 탄소중립 실행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한편 탄소과소비 문화의 점진적 개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일반 시민과 기업의 세금 부담이 과도하지 않도록 다른 조세 부담을 경감하는 조치가 수반되어야 한다.

물론 현 시점에서 탄소중립 대전의 최종 승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기후엘리트들과 회의론자 간에 대타협이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탄소중립 대전의 최전선이자 최대 전쟁터는 전력산업 부문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탄소중립의 성패는 현대 탄소물질문명의 최첨단인 전력부문에서 판가름나게 될 것이다. 최근 유럽의 전투상황을 살펴보면 기후엘리트들이 일방적으로 승리하리라 단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탄소중립 대전의 장대한 서막이 열린 가운데, 전력부문 탄소중립의 성패는 기술적 진보와 더불어 지속가능하고 자유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좌초자산 처리를 비롯한 전원믹스 구성, 새로운 전력시장의 설계, 전기수요의 관리와 전기요금구조, 망 중립성, 미래 전력산업의 구조, 전력산업의 거버넌스, 에너지 안보와 같은 여러 현실적 난제들에 대한 치밀하고 합리적이며 다수의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키는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탄소중립의 미래는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이상의 문제들에 대해 법정책적 관점에서 문제의 본질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박진표 chinpyo.park@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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