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림 변호사(법무법인 태림)

▲하정림 변호사(법무법인 태림)
하정림 변호사
(법무법인 태림)

[이투뉴스 칼럼 / 하정림] 최근 RE100이 장안의 화제였다. 알던 사람도, 모르던 사람도 있지만 어쨌거나 흥미로운 현상이다. 수출국가인 한국에서 에너지 전환은 이념이 아닌 실용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수백 개의 글로벌 기업들이 RE100을 실천하고 있다. 국내 유수 대기업들도 속속 RE100을 선언하고 있다. 

RE100은 비현실적 개념이 아니다. 아직도 판매사업자로부터의 발전원별 전기거래는 어렵지만, 작년 전기사업법 개정을 통해 발전원을 특정한 직접 PPA(Power Purchase Agreement)가 가능하게 되었다. 규정상 상당히 불완전한 제도라고 생각되지만, 한전을 경유한 제3자 PPA도 가능은 하다. 즉 현행법상 재생에너지 거래가 자유롭게 가능하도록 법에 명시되었다. 실무적으로도 불가능하지 않다. 재생에너지 공급량은 매년 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재생에너지가 남아서 불합리한 급전지시까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직접 거래’ 차원에서는, 아직까지는 재생에너지를 손쉽게 직거래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전력시장이 오히려 법과 원칙을 잘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노지에서 배추를 파는 농부는 판매를 제3자에게 위탁할 수도 있고, 본인이 배추를 트럭에 실어 도로를 타고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해서 팔 수 있다. 늘 대량의 배추가 필요한 소비자에게는, 후자의 방식으로 장기간 고정가격으로 계약하는 것이 경제적일 수 있다. 그러려면 판매자가 트럭에 물품을 싣고 갈 수 있는 도로가 있어야 한다. 

전기도 소비자까지 가는 길인 ‘선로’가 필요하다. 현재 송·배전망은 현행법상 송·배전사업자(한전)가 독점하고 있다. 전선은 국가의 기간 인프라이니 합리적인 조치다. 국가나 지자체에서 대부분의 도로를 관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서로 다르게 적용된다. 전기선로는 (도로처럼)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제공되지 않는다. 일단 해당 선로를 깐 회사의 전력판매에 우선 이용된다. 계통연계를 신청해도 단기간 내 연계가 잘 되지 않는다(즉 아예 배송 자체가 막힌다). 심지어 연계가 되어도 관리자의 기준(must-run)으로 공급이 남으면 ‘계통에 부담을 주니 끄라’고 지시(curtailment)한다. 기준은 알 수 없지만 도로가 혼잡하니 일단 나오지 말고, 손해를 감수하면서 배추밭을 갈아엎으라는 것이다. 그럼 차라리 소비자와 직거래(PPA)를 하겠다고 하니, 직접 선로를 깔아서 하라거나, (원래는 받지 않던) 사용료를 내라고 한다. 아직 사용료의 액수는 논의 중이니 알려줄 수가 없다고도 한다. 법과 제도에 맞지 않는 운용이다.

이러한 와중 한전을 거쳐서 수수료를 내고 판매하라는 제3자 PPA도 도입됐다. 그러나 제3자 PPA야말로 상위법과 맞지 않는 제도다. 계통 문제가 생기면(즉 도로가 혼잡해지면) 한전이 판매를 거절할 수도 있고, 판매정산금 중 손해배상금을 먼저 공제할 수 있다. 반면 거래수수료를 받을 한전이 구체적으로 어떤 책임을 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상법상 위탁판매인지, 중개거래인지 자체가 불명확하다(둘의 법적 책임은 현저히 다르다). 판매자의 입장과 유통하는 자의 입장이 혼재되어 있는 잘못된 제도라고 보인다. 전기사업자별로 사업을 분리하도록 하고, 평등하게 망 이용을 제공하도록 하는 상위법 및 제도의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요컨대 법과 제도에 맞지 않게 운용되고 있는 전력시장 실태 그 자체가 RE100과 PPA를 비현실적으로 만들고 있다. 법은 오히려 누구든지 전기를 생산하고, 스스로 소비하고, 또한 이를 팔 수 있도록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법과 원칙에 맞게 운용하면 RE100은 비현실적이지 않다. 국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공정과 상식’은 현행 전력시장에서야말로 지극히 요구되는 가치라고 생각된다. 향후 에너지 전환 정책에 있어서 법과 원칙에 맞는 건설적이고 공정한 실무 활성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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