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침묵의 봄
[칼럼] 침묵의 봄
  • 최원형
  • 승인 2022.03.14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원형 생태환경작가
▲최원형 생태환경작가
최원형
생태환경작가

[이투뉴스 칼럼 / 최원형] 봄바람은 굉장했습니다. 창을 뒤흔드는 바람 소리는 단지 소리만 공포스러운 게 아니었어요. 태백산맥을 타고 번지는 산불에 휘발유를 들이붓듯 강풍은 기세 좋게 화마의 범위를 연일 확장시키고 있었습니다. 울진에 위치한 한울핵발전소 가까운 곳까지 불똥이 튀었고 삼척 LNG 생산기지에 바싹 다가간 불길로 나라 전체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한 채 조마조마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뉴스를 살피며 진화 여부를 확인했고요. 2년 전 호주 산불이 한창일 때 어서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던 그 마음처럼 간절했습니다. 시뻘건 화염에 휩싸여 불타는 숲을 보며 숯덩이가 된 코알라 사체가 떠올랐어요. 숲에서 속수무책으로 갇혀있을 수많은 생명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한 마리 크리킨디가 되어 불타는 숲에 물을 뿌리고 싶은 마음 간절했습니다. 그런데 산불은 간절함만으로는 끌 수가 없어요.

눈이 귀한 겨울이 계속되다 보니 야생의 목숨들은 겨우내 목이 말라요. 아파트 베란다 새 모이대에 놓아둔 물그릇에 하루에도 몇 번이나 물을 보충해줄 정도로 이번 겨울은 예년과 달리 더욱 가물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추운 날 물그릇에 물이 꽁꽁 얼자 이른 아침 모이대에 온 새들은 부리로 얼음을 긁으며 물을 구하려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추위와 굶주림에 목마름까지 시달리며 혹독한 겨울의 터널을 지나 이제 고통의 끝자락이 보이는 3월입니다. 숲을 가득 채운 물소리가 야생의 귀에 먼저 가 닿을 겁니다. 뿌리로부터 빨아올리는 물관을 흐르는 물소리 말입니다. 마른 나뭇가지마다 가닿는 수액으로 잎눈 꽃눈이 차례차례 펴질 테고요. 지난 2월 어느 날 아파트 정원에서 가지치기하느라 잘린 나뭇가지로 단풍나무 수액이 흐르는 곳에 박새, 오목눈이들이 모여들어 할짝거리는 모습을 보았어요. 가까이에 사람이 다가가도 정신없이 수액을 핥아먹던 새들을 보며 처음으로 수액이 생명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액으로 갈증을 해소한 새들은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나무에게 화답할 겁니다. 봄에 놓칠 수 없는 소리풍경으로 말이지요. 

해뜨기 전부터 깨어난 새들은 목청껏 노래를 시작하며 새벽을 엽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텃새들은 이즈음 짝을 찾느라 열심히 목청을 가다듬고 곡조를 뽑는 소리가 우리에게 또 하나의 풍경을 선물합니다. 짝을 찾고 둥지를 짓는 새들은 봄나무에 어린잎이 돋아나 자라길 기다릴 거예요. 따스한 봄볕에 온화한 바람과 촉촉한 봄비를 맞으며 마른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면 움츠렸던 잎눈이 활짝 펼쳐지면서 쑥쑥 자랍니다. 때를 맞추어 애벌레들도 무수히 깨어납니다. 알을 품어 새끼를 부화시킨 새들은 애벌레를 열심히 물어다 나르며 새끼를 기릅니다. 자연의 이치는 톱니바퀴 맞물리듯 정확히 맞추어져 있어요. 공진화의 흔적입니다. 텃새부터 여름 철새까지 순차적으로 짝을 찾다 보니 2월 말부터 5월에 이르도록 새소리가 숲을 가득 채웠다 잦아들기를 반복하며 다양한 소리 풍경이 펼쳐집니다. 소리 풍경은 울창한 숲을 만드는 근원의 에너지입니다. 힌두교 경전 베다에서는 모든 지성이 아침과 함께 깨어난다고 했는데요. 모든 지성과 함께 새들이 깨어나는 아침, 여명의 합창이라 불리는 이 풍경을 만나는 일이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이번 울진과 삼척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산불은 2000년 4월 7000만평을 집어삼킨 산불보다 큰 피해 면적을 남겼습니다. 대체 왜 이토록 대형산불이 일어나는 걸까요? 어릴 적 겨울이면 불조심 포스터를 그리던 기억이 있어요. 아직 시민의식이 높지 않던 때라 담뱃불로 인한 실화가 산불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지금보다 과학과 기술이 훨씬 뒤처졌던 그 시절에도 이토록 대형산불이 발생한 적은 없어요. 그 시절 겨울은 발목이 푹푹 빠질 만큼 눈이 내렸거든요. 삶은 풍요를 선택할 수 없었기에 단순하고 검박했습니다. 당연히 에너지 소비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었고요. 이제 풍요로운 삶은 곧 물질적인 풍요로 등치되었고 과도한 에너지 소비로 시스템이 정착되었어요. 에너지 과소비로 기후 시스템은 삐걱이며 겨울이어도 눈이 귀한 세상이 돼버렸고요. 어쩌면 다음 세대는 눈을 영상으로만 보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눈이 쌓이지 않은 숲 바닥은 바싹 마르고 거기다 낙엽활엽수며 키 작은 떨기나무들을 잡목이라는 이유로 베어버리고 소나무만 남겨진 숲을 가꾸기에 이릅니다. 자연스레 천이하는 숲은 소나무 숲에서 참나무같은 활엽수림대로 옮겨가지만 인간의 개입으로 자연스런 흐름을 거스르기 시작한 거지요. 이렇게 휑해진 숲 내부에서 바람이 빠르게 흐르는 구조를 만든 게 대형산불의 근본 원인이라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결국 인간의 과소비와 개입이 대형산불을 만들고 있다는 얘깁니다.

한울 원전도 삼척의 LNG기지도 모두 에너지를 생산하는 곳입니다. 과다한 에너지 소비로 인해 기상도가 시시때때로 바뀌면서 강우량, 강설량은 예전의 패턴을 무시한 채 갈수록 불규칙성을 띱니다. 그런 이유로 해마다 가물고 가뭄이 불러들인 산불이 다시 에너지 시설을 위협하는 이 아이러니를 어쩌면 좋을까요? 더 이상 새 소리도 새 둥지도 봄꽃도 새잎도 애벌레도 기대할 수 없는 숲을 맞이하는 봄입니다. 생기 가득한 생명들이 촘촘한 그물망으로 연결되던 숲은 이제 검게 그을린 채 침묵의 봄을 맞고 있어요. 우리 삶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침묵의 지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이는 봄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27길 36 809-2호(구로동, 이스페이스)
  • 대표전화 : 02-877-4114
  • 팩스 : 02-2038-374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욱
  • 편집국장 : 채덕종
  • 편집인 : 이재욱
  • 제호 :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 이투뉴스
  • 법인명 : (주)에너지환경일보
  • 등록번호 : 서울 다 07637 / 서울 아 00215
  • 등록일 : 2006-06-14
  • 발행일 : 2006-06-14
  • 발행인 : 이재욱
  •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 이투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 이투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e2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