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원전 연계 4개 송전선로 중 단 1개 유지
발전량 동시탈락 시 UFR 3단계 동작 대정전

▲지난달 4일 울진 산불로 한울원전 주변 송전선로가 동시에 끊기면서 전국적인 대정전이 발생할 뻔 했다. 한울원전 주변 송전선로는 모두 51곳(회)에서 정지와 강제 재가동을 반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4일 시작된 울진산불로 한울원전과 연결된 주요 765·345kV 송전선로가 기능을 상실해 하마터면 2011년 9.15 순환정전의 3배 규모에 달하는 전국적인 대정전(블랙아웃)이 발생할 뻔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한울원전 주변 송전선로는 모두 51회에 걸쳐 정지와 강제 재가동(강행송전)을 반복하며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다. 한울원전 주변 계통도(왼쪽)와 송전선로 두절개소(번개모양) 및 한울원전 <배경사진-에너지전환포럼·울산환경운동연합 제공> 그래픽-박미경 기자 pmk@e2news.com

[이투뉴스]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에서 지난달 4일 산불이 확산될 당시 한울원자력발전소와 연결된 4개 송전선로(8회선) 가운데 단 1개 선로만이 정상기능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만약 이 선로마저 기능을 상실했다면 전력계통 주파수 하락과 그에 따른 태양광설비 추가정지로 2011년 9.15 순환정전의 3배에 달하는 전국 단위 블랙아웃(대정전)이 발생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전력 대동맥에 해당하는 765·345·154kV 송전선로 가운데 3월 4일부터 10일까지 산불로 기능을 일시 상실했다가 재가동 된 선로는 모두 51곳(회)에 이르며, 상황이 가장 긴박했던 4일 한울원전 ‘최후의 보루’였던 345kV 1개 라인(2회선) 역시 시차는 있지만 이후 세 차례나 정지·재가동을 반복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4일은 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 날이었다.

27일 <이투뉴스>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당시 설비용량 5.6GW(기가와트)급 한울원전과 연결된 3개 송전선로 6회선이 대형산불에 에워싸여 모두 두절된 가운데 그나마 한울2원전~신영주 345kV선로가 다른망(網) 복구 시까지 버텨준 것은 국가적으로 천만다행이다.<그래픽 참조> 산불로 고립된 대형전원의 유일한 숨통역할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대정전이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본지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한국전력거래소와 한국수력원자력 자료를 보면, 한울원전은 2발전소~신태백변전소간 345kV 2회선과 2발전소~신영주변전소간 345kV 2회선, 1발전소~삼척화력간 345kV 2회선, 3발전소~신한울원전으로 연결된 765kV 2회선 등 모두 4개 라인 8개 회선으로 연결된 동해권 최대 발전단지다. 

평소 원전 1기당 1000MW이상을 대량 생산해 수도권으로 보내고 있다.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던 4일 오후 2시에도 정비중이던 한울6호기를 제외한 1~5호기를 전출력으로 가동해 5204MW를 송전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 전국 전력수요(67GW)의 약 12%에 해당하는 양이다. 하지만 이번 산불과 같은 재난 때 이런 중앙집중식 시스템은 미처 대응할 틈도 주지 않고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취약점을 드러냈다.

전력당국이 제시한 송전선로 정지 세부내역을 보면, 당일 오후 1시 54분 765kV 신태백~신한울 2회선이 동시 정지한 것을 시작으로 345kV 한울~신태백 2회선과 한울~삼척 345kV 2회선 등 3개 주변선로가 송전불능 상태에 빠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0여분이다. 

원전이 심장이라면, 이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혈액을 주요장기로 보내는 대동맥 4개 중 3개가 막힌 셈이다. 초유의 사태에 전력당국은 분초를 다퉜다. 제때 대응하지 않으면 전국 전력망이 위태로워질 수 있어서다. 당시 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가 원전 긴급감발과 과전압 및 저전압 해소, 송전선로 강행송전 등을 위해 한전 지역본부 및 한수원에 내린 긴급지시는 3시간 사이 30여 차례에 달한다.

당시 계통운영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산불이 휩쓸고 지나는대로 계통이 연쇄적으로 탈락했고, 관제원들이 현장과 수시로 통화하면서 강행송전을 거듭했음에도 일부 선로는 금세 다시 나가 떨어졌다”면서 “한울원전 쪽 역시 폐쇄된 구조의 제어실까지 연기가 흘러들어갈 정도여서 출력 감발지시 등이 빠르게 이행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울원전 주변 765kV·345kV 송전선로. (울산환경운동연합 제공)
▲한울원전 주변 765kV·345kV 송전선로. (울산환경운동연합 제공)

한울원전과 연결된 주요계통이 모두 두절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 됐다면, 이제껏 경험한 적 없었던 대정전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1기당 설비용량이 1000MW인 한울원전 1~5호기가 동시 정지할 경우 그 공백을 순간적으로 메울 수단이 없어서다. 이는 한창 핵분열을 일으키며 뜨겁게 달아오른 원자로를 비상 디젤발전기로 식히며 정지시켜야 하는 안전문제와는 별개다. 

본지가 일부 전력계통 전문가에 요청해 모의한 한울원전 탈락 시 주파수 변화 시뮬레이션 결과에 의하면, 한울 1~5호기 공급력이 일시에 계통에서 탈락하면 계통 주파수는 불과 1~2초 뒤 60Hz에서 59.3Hz까지 주저 앉는다. 이렇게 되면 약 10GW에 달하는 전국 태양광발전설비 인버터가 이를 보호신호로 받아들여 추가 정지하고, 이는 주파수 추가하락이란 도미노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4일 오후 전국 날씨는 쾌청한 가운데 센 바람이 불어 오후 2시 전후 태양광 이용률이 70%에 육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한울원전 동시정지는 주파수 하락과 태양광 연쇄정지를, 이는 또다시 주파수 추가하락을 초래해 결국엔 전국 변전소에 설치된 저주파계전기(UFR) 자동개입을 불러 전국적인 광역정전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UFR은 전국적인 동시정전을 막기 위해 주파수가 0.2Hz씩 낮아질 때마다 각각 59.0Hz, 58.8Hz, 58.6Hz마다 3단계로 일정량씩 부하(전력수요)를 차단하도록 설계돼 있다. 당시 태양광 추가정지를 가정한 UFR차단 추정량은 2011년 9.15 순환정전 당시의 약 3배(12GW)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최악의 순환정전 시 가정-상업시설-기업체 순으로 전력을 차단한다. 하마터면 대선을 앞두고 대정전이 발생해 큰 사회혼란이 야기될 뻔 했다는 얘기다.

익명을 원한 당국 한 관계자는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전력거래소와 발전사, 한전 관계자들이 국가적인 위기를 막았고 사태가 더 확산되지 않은 건 정말 다행"이라면서도 "하지만 '문제없이 넘어가서 다행이다'가 아니라 '앞으로 그런일이 또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에 대해 누군가는 진지하게 묻고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겨울가뭄과 강풍 등 기후재난의 강도가 갈수록 세지고 있지만 정부는 물론 이 분야 종사자들조차 그 때만 반짝 관심을 갖는다. 2020년 여름 태풍으로 고리·월성원전 6기가 정지했을 때와 그 사후처리가 대표적인 예"라면서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발전소내 스위치야드 조작주체 혼선과 태양광 저주파수값 보정 문제를 시급해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전은 냉각을 위해 외부와 연결된 송전선로가 끊기면 위험한데, 지진 해일 태풍 등에 취약한 원전이 산불에서도 위험하며, 대용량 원전이 한꺼번에 멈추면 블랙아웃 위험이 상존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이곳에 신한울 1,2호기까지 추가된다. 신한울 3,4호기까지 건설해 10기를 한곳에서 운영하겠다는 건 도박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명박정부처럼 원전 확대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재생에너지 비중이 8%가 된 지금도 대형원전은 안정적 계통운영에 위협적인 존재"라며 "원전산업계 이익을 위해 국민안전과 안정적 수급을 희생시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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