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화려한 이벤트 100개보다 확실한 개혁 1개가 필요한 에너지 정책
[칼럼] 화려한 이벤트 100개보다 확실한 개혁 1개가 필요한 에너지 정책
  • 조성봉
  • 승인 2022.04.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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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투뉴스 칼럼 / 조성봉] 몇 년 전 제주 구좌의 스마트그리드 홍보관이 흉물처럼 썰렁하게 남아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정부의 스마트그리드 사업도 최근 정부의 여러 에너지 로드맵처럼 출범은 나름 화려한 이벤트로 장식되었다. 정부는 2008년 스마트그리드 사업을 국가 8대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선정하고 2010년 스마트그리드 국가로드맵을 마련하여 2020년 광역단위 스마트그리드 완료, 2030년 국가단위 스마트그리드 구축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수립했다.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들도 참여했었다. 그러나 스마트그리드는 실패한 사업이 됐다. AMI는 설치 목표인 1만5000가구 중 6000가구에, EMS는 29개소 중 5개소 구축에 그쳤다. 2500억원이 투입된 실증사업에서 기업들은 하나둘씩 모두 철수했고 스마트그리드 홍보관은 흉물로 남았다. 결국 한전이 제주도에 기부채납해 신재생에너지 홍보관으로 탈바꿈했다. 몇 년 후 신재생에너지 홍보관도 스마트그리드 홍보관의 전철을 따르게 될까 걱정된다. 

최근 정부가 제시하는 에너지 정책 로드맵과 계획은 화려한 이벤트로 장식된다. 단계별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신기술과 신개념을 배경으로 한 새로운 용어를 펼친다. 그 내용을 잘 들어보지 못했다면 최근 에너지산업 트렌드를 모르는 뒤처진 아웃사이더로 취급받는다. 2020년 정부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한 데 이어 작년에 ‘분산에너지 활성화 전략’을 발표했다. 여기서도 단계별 목표가 제시되었고 우리 에너지산업을 바꿀 수 있을 듯한 새로운 용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력-비전력 섹터커플링, P2H, P2G, V2G, 플러스 DR 등이다. 이런 내용들이 제대로 실현된다면 분산화는 큰 어려움이 없이 진행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의 스마트그리드 사업처럼 분산에너지 특구를 지정해서 실증해보자며 이를 위해 필요한 요금제도와 산업구조의 개선 및 분산친화적 시장제도는 뒤로 미뤄 놓았다. 

우리 정부의 에너지 정책 입안에서 안타까운 것은 정작 가장 중요한 핵심 제도는 중장기적인 것으로 미뤄 놓는다는 점이다. 에너지 정책의 핵심은 가격 시그널과 경쟁체제다. 화려한 이벤트로 에너지 정책을 장식하는 것은 결국 지금까지 정부가 단단히 붙잡고 있는 가격규제와 진입규제의 틀을 바꾸지 않겠다는 것으로 읽혀진다. 

스마트그리드 사업은 가격 자유화와 판매 자유화와 병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하였다. 새로운 전력 판매사업자가 들어와서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가격체계와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AMI가 제대로 보급될 리 만무하다. 보다 근본적 문제는 해결하지 않으면서 실증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특구를 정해서 시험해 보는 것은 시간 끌기로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분산화의 가장 큰 장애는 지역적으로 동일한 전기요금이다. 전기 많이 쓰는 수도권은 당연히 전기요금을 올려야 하고, 자체소비보다 전기를 더 생산하는 충남지역은 전기요금을 대폭 깎아줘야 한다. 전기요금의 지역적 차등화는 지역별 전력생산과 수요에 큰 영향을 줄 것이고 전력설비의 입지문제와 분산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다. 미국 하와이주의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이유도 다른 주보다 전기요금이 월등히 비싸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전문가들이 20여년 전부터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개선안은 공무원들 서랍 속에 파묻혀 있었지만 결국 2016년 폭서로 불완전하지만 개선됐다. 실증사업도 필요 없었다. 독점적으로 유지돼 온 한전 판매부문의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화려한 것을 제시하기보다는 잘 안 풀리는 에너지 정책의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정부가 정작 노력할 일은 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인들과 독점 공기업을 설득해 올바른 에너지 정책으로 국민을 이끄는 일이다. 지금 정부는 거꾸로 정치인들과 독점 공기업에게 설득당해 10대 선진국에서는 보기 힘든 원시적 형태의 가격규제와 경쟁제한에 앞장서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 화려한 이벤트 100개보다 확실한 개혁 1개가 에너지 정책에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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