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나무와에너지 대표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산림혁신특별위원)

▲이승재 나무와에너지 대표
▲이승재 나무와에너지 대표

[이투뉴스/이승재] 지난 3월 울진과 삼척 등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규모면에서 역대급이다. 특히 금강송군락이 있는 울진군의 피해가 컸고, 피해면적은 1만4140ha에 달했다. 산림청은 강원도 삼척과 동해 강릉 등에서 난 산불까지 합쳐 전체 피해면적이 2만523ha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이를 축구장 면적으로 환산하면 무려 2만8744개나 된다. 산불피해 규모면에서 1986년 이후 두번째로 큰 산불이었다.

3월 4일 오전에 발생한 울진 산불은 같은달 13일 저녁이 되어서야 꺼졌다. 산림청과 소방당국이 연인원 3만6000여명을 투입하고 소방장비 2700대, 헬기 679대를 투입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3월 11일부터 내린 비가 ‘소나무숲 화마’를 잠재웠다. 피해지역은 우리나라 대표 산림밀집지역이다. 사방 100m 공간의 숲에 나무가 무려 평균 200㎥이상 자라는 곳이다.

살려낼 수 있는 나무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뜨거운 화염이 몰고 지나간 자리에 살아남은 나무는 살려두어도 성장이 더디거나 목재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2만ha가 넘는 지역의 피해목 규모는 우리나라에서 목재를 공급하기 위해 작년 한 해 동안 벌채한 양의 70~80%에 이를 것이다. 단 9일만에 수 십 년에 걸쳐 키운 나무 수백만 그루가 불탔고, 이재민도 568명이나 발생했다.

다시 본래의 숲으로 돌려 놓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도 천문학적이지만 심고 가꾸어 제 기능을 하게 만드는 데에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수많은 생명체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숲으로 돌아가는 데에 필요한 시간과 다시 그 숲을 사람이 찾고 임업이 희망을 찾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지난 겨울의 지독했던 가뭄과 봄철 동해안의 거센 바람이 너무 원망스럽다.

산불은 살아있는 나무에 불이 붙어 번지는 연소 현상이다. 살아있는 나무는 그 자체로는 불을 붙이기가 매우 어렵다. 무게 대비 수분이 55% 이상이므로 불이 붙어도 자체 수분을 건조시키는데 많은 열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가연물이 되는 나무가 많은 숲에 봄철 거센 바람이 충분한 산소를 제공하면서 작은 불씨도 순간적으로 큰 불로 만들어 낸다.

게다가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최근 10년간 겨울철 가뭄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특히 동해안의 작년 겨울철 강수량은 13.3mm에 그쳐 지난 39년간 평균인 89mm에 크게 못 미쳤다. 최근의 이상기후는 기후변화가 원인이므로 대형산불은 앞으로도 매년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것만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점점 대형화되고 잦아지는 산불로 발생되는 ‘불탄나무’는 어떻게 처리될까? 2019년에도 동해안 고성, 속초, 인제, 강릉 등지에서 대형산불이 발생했다. 총 2871ha에 피해를 입힌 2019년 산불때는 피해면적 중 약 545ha에서 긴급히 피해목을 벌채했다. 여기까지는 여느 해 산불과 처리 과정이 다르지 않다.

그런데 산림청이 2018년에 만든 ‘미이용산림바이오매스 제도’에 2019년 산불피해목이 포함되었다. 미이용산림바이오매스 증명제도란 그간 산에 버려졌던 벌채부산물과 재해 피해목 등을 연료로 사용해 전기를 생산할 경우 재생에너지 생산자에게 가산인증을 주는 제도다. 2019년 국내 산불피해목으로는 처음으로 미이용산림바이오매스 증명을 받은 산불 피해목이 대량 유통된 것이다.

그동안 버려졌던 나무가 에너지로 쓰였으니 관련당국도 산불로 인한 피해의 위로로 삼았고, 잘키운 나무가 불에 타는 것을 지켜본 산주들도 피해목이 쓰임새가 있다는 데에 고무되었다. 이렇게 대형 재난 끝에 나온 훈훈한 스토리로 끝날 것으로 모두가 기대했지만 ‘나무의 고난’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고성과 인제, 강릉에서 발생한 피해목은 현장에서 목재칩으로 파쇄된 후 25톤 운반 차량으로 대형 펠릿공장이 있는 충북 진천까지 이동했다. 어림잡아 200km를 이동시켜 원목과 섞어 목재펠릿으로 만들어진 후 이번엔 다시 차량에 실려 산불피해지 인근 동해의 화력발전소로 보내졌다. 왕복거리가 최소 450km에 이르고 왕복 운반차량 횟수가 수천회에 이른다.

가격으로 치면 약 100만원 쯤 되는 산불피해목 25톤을 싣고 동해안에서 진천까지 왕복했다는 것도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목재펠릿으로 만들어지면서 투입되는 에너지도 막대하다. 국립 산림과학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목재펠릿 생산비 중 설비운영비용의 58%가 연료를 건조하거나 압축하기 위한 가스비용이거나 전기요금이었다.

즉 톤당 25만원 정도에 공급되는 목재펠릿 1톤에는 화석연료비용이 5~7만원쯤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목재펠릿은 대형 화력발전소에서 석탄과 섞여 태워진다. 연소시 열로 증기를 만들고 증기의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전기만 생산하는 대형화력발전소의 발전효율은 35% 수준이다. 즉 나무가 가진 에너지의 대부분은 화력발전소에서 대기 중에 버려진다. 2019년 강원도 산불은 다시 임업과 에너지업계에 숙제를 남겼다.

▲독일의 산불 발생건수 및 피해면적 (출처 독일농림부, 2020년)
▲독일의 산불 발생건수 및 피해면적 (출처 독일농림부, 2020년)

최근의 산불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구체적 현상이자 피해 중 하나다. 임업선진국 독일도 지난 몇 년간 산불이 증가했다. 안정적으로 관리되던 독일의 산불이 2018년 이후 증가하고 있는데, 매년 약 2500ha 정도의 면적에 피해를 주고 있다. 특히 독일은 지난 몇 년간 침엽수림의 병충해 피해가 광범위하게 번졌다.

독일임업이 자랑해오던 가문비나무 숲이 파괴되었고 엄청난 양의 피해목이 벌채되어 목재가격이 2015년 대비 절반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대량으로 발생된 독일의 피해목도 역시 최종 사용처는 바이오매스에너지다. 그런데 독일의 재해피해목은 장거리 이동시킬 일도, 우리처럼 발전용 펠릿으로 만들 이유도 없다. 바이오매스발전소가 소규모로 만들어져 전국 어디든 분포해 있어서다.

이들 분산형 발전소는 임업과 목재산업의 부산물 등 나무를 단계적으로 사용한 후 최종 사용처 역할을 하고 따라서 지역과 임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기능도 한다. 태양광이나 풍력은 시간대와 지역에 따른 발전상 제약이 있는 간헐성이 단점인 반면 바이오매스는 연료의 공급이 원활하다면 24시간 어느 장소에서든 전기와 난방에너지까지 생산할 수 있다.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은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소규모 분산형 바이오매스발전소를 적극적으로 보급해 왔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발전차액을 보조하는 방법으로 소규모 발전일수록 더 많은 지원을 해 분산형 에너지공급을 유도했고, 에너지효율을 극대화 하는 방식으로 5MW 이상의 전기생산시설은 열과 전기를 모두 생산하는 열병합발전을 강제했다.

▲독일의 재생에너지법 지원 대상 바이오매스발전소현황
▲독일의 재생에너지법 지원 대상 바이오매스발전소현황

임업강국인 오스트리아가 전국적으로 2400여개 마을에 바이오매스로 중앙난방을 할 수 있는 이유도 바이오매스 분산형에너지를 적극 보급해 온 결과다. 대형산불은 예방할 순 있으나 발생하면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제압하기 어려운 ‘화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기후위기에 놓여있어 앞으로도 멀쩡한 숲이 산불로 타들어 가는 일을 겪게 될 것이다.

2018년 미이용산림바이오매스 증명제도가 도입된 이후 2020년에는 9만1000톤, 이듬해에는 10만 1000톤의 피해목이 목재펠릿으로 만들어져 대형화력발전소에서 태워졌다. 그리고 올해엔 이보다 훨씬 많은 산불피해목이 발생하게 되었다.

산림과학원은 울진과 삼척에서 발생한 산불로 9일간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양이 131만톤이라고 추정했다. 우리나라 숲 전체가 연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4560만톤)의 3%나 되는 양이다. 자동차 8800만대가 동시에 100km 달릴 때 배출하는 양이라고 한다. 이번 산불의 피해를 복구하고 피해목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더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말아야 한다. 

▲2021년 10만1000톤의 산불피해목이 발생했다. 전체 미이용산림바이오매스 중 약 12.2%를 차지한다. (출처 산림청)
▲2021년 10만1000톤의 산불피해목이 발생했다. 전체 미이용산림바이오매스 중 약 12.2%를 차지한다. (출처 산림청)

산불피해목이 발생한 지역 인근에 소규모 바이오매스발전소를 건립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불에 탄 나무들도 선별해서 목재로 사용하고 최종 피해목을 울진과 삼척의 피해지역에 만든 작은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도록 해야 한다. 이때 발생하는 열은 피해를 입은 이재민의 난방과 인근 지역 농업에 사용할 수 있다. 2MW급 소규모 열병합발전에서 생산하는 전기는 연간 4000여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고 2000여 가구에 난방 온수를 공급할 수 있다. 작지만 효과는 결코 작지 않다.

이는 산불피해 복구과정에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며, 피해지역에 부가가치를 돌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수단이다. 소규모 바이오매스발전을 이동식으로 만들어 5년 정도 피해목으로 경제성 높게 운영한 뒤 강원도와 경북의 마을에 시설을 분산해 보급하면 에너지자립마을을 100여개 쯤 육성할 수 있다.

태백산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국토의 등허리를 안타깝게도 국민들이 ‘산불로드’라는 자조섞인 이름으로 부른다. 지역과 임업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분산형에너지공급사업을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대형 산불지역도 ‘동해안 바이오에너지투어’가 가능한 탄소중립 중심지역이 될 수 있다.

이승재 나무와에너지 대표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산림혁신특별위원) hui7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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