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회의적 반응 속 되레 '시장 냉각' 우려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유망하다고요? 정말 그렇답니까?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정부 정책을 어떻게 믿습니까. 발전차액이 떨어지고 RPS가 도입되면 시장이 죽어나는 건 시간문젭니다." (A사 영업담당 임원)

 

"경제성장을 제 1의 가치로 치는 중국도 재생에너지 목표치를 30%로 잡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11%도 많다고 아우성입니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허울 좋은 '녹색가면'에 불과합니다." (H 시민단체 활동가)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이율배반적입니다. 원자력 확대를 얘기할 땐 기후변화 명분을 앞 세우고, 실제 대응에 있어선 감축목표 설정을 피하고 있습니다." (K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

 

청와대가 이달 중순 발표한 '저(低)탄소 녹색성장'의 단꿈에 젖어있는 사이 시장과 시민단체 측에선 이처럼 회의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

 

특히 업계 측에선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국내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란 '9월 괴담'이 빠르게 유포되고 있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책 발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장이 정부 '저탄소 녹색성장' 천명과는 상반된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 냉담한 시장 반응 = 외국계 신재생에너지 설비 공급업체인 T사는 올해말로 예정된 건물임대차 계약 갱신을 앞두고 재계약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최근 국내 시장동향을 보고받은 본사가 돌연 '철수를 검토하라'는 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회사 내국인 간부는 "(본사가) 불확실한 한국 시장을 붙잡고 있느니 미국과 유럽에서 영업력을 늘리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면서 "외국 자본을 차단한다는 정부 의도는 먹혔을 지 모르지만 한국이 매력없는 시장으로 비춰지는 건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이번 계획을 '공허한 선언'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않다.

 

한 공기업 신재생에너지 담당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정부가 온실가스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건 긍정적 신호다. 그렇지만 기존안에 그럴싸한 문구를 넣은 것 외에 달라진 게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온실가스 협약이 코 앞에 닥쳐있는 지금은 막연한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국내 신재생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태양광 산업계의 한 관계자도 "내달 말이면 발전차액이 폭락해 시장이 회복불능 상태에 처할 것"이라면서 "청와대가 이런 현실을 제대로 파악이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 호소력 잃은 '녹색성장론' = 청와대 관계자 및 과천 관가에 따르면 지난 15일 8ㆍ15 경축사를 통해 발표된 '저탄소 녹색성장론'은 국정기획수석 산하 미래비전비서관실과 대통령 자문기구인 미래기획위원회의 합작품이다.

 

미래비전비서관실이 큰 얼개를 짜고 홍보기획관실이 총리실, 지식경제부, 환경부 등의 일부 의견을 보태 본안을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이 과정에 이 대통령은 세 차례나 직접 독회에 참여해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G8 확대정상 회담에서 느끼고 돌아온 '녹색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궁극적인 정책방향 설정은 비교적 반론의 여지가 적다지만, 현장성이 떨어지는 정책 결정자들에 의해 초안이 만들어지다보니 국내 시장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고찰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건국 60주년을 기념해 지난 1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저탄소 녹색성장론은) 일본이 20년 전부터 노력해 오다 두 달 전 발표한 내용인데 제목까지 똑같아 상당히 놀랐다"며 일본의 '후쿠다 선언' 모방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내용 논란을 떠나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한 지적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김태호 에너지나눔과평화 사무처장은 "이번 내용은 아직 국가에너지위원회 본회의의 심의도 거치지 않은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을 미리 발표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는 기본계획의 주체인 국민들과의 합의는커녕 국민적 거버넌스 기구를 통해 기본법을 수립한다는 본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한 처사이자 위원장인 대통령 스스로 이를 파기한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이 대통령은 앞서 녹색성장론을 역설한 자리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06년 2.24%에서 2030년에 11%로 늘릴 것"이라고 밝혀, 심의 이전의 정부 기본계획안을 확정안처럼 간주했다는 인상을 줬다.  


◆ 내용은 문제 없나 = 녹색성장론의 골자는 '녹색기술'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한다는 것.

 

태양광과 풍력, 수소ㆍ연료전지 등 산업 파급효과와 시장 잠재력이 큰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정부가 지속적으로 지원해 수출산업화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향후 20년간의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2020년까지'그린홈(Green Home)' 100만호를 보급하고 LED, IGCC, 그린카(Green Car) 등을 중점 육성한다는 전략이 담겼다. 에너지안보 확립을 위해 임기 중 자주개발률을 18%까지 끌어올리고 2050년에는 50% 이상으로 높인다는 포부도 눈에 띈다.

 

이 같은 계획에 대해 산업계와 시민단체는 새삼스런 내용도 아닌 데다 일부 전략은 방향설정이 잘못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대기업 전략실 관계자는 "LED조명과 그린카 육성은 이미 산업계 전반의 다양한 기술개발 시도를 통해 가시화되고 있는 내용으로, 정부지원 없이도 충분한 모멘텀(momentum)이 확보된 분야"라면서 "(정부가) 단순히 최근 추세나 전망을 엮어 내놓은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만 든다"고 평가절하했다.

 

김태호 에나평 사무처장은 "원자력을 늘리는 정부 기본계획에 비춰 '100만호 그린홈' 구상을 뜯어보면 원전 인프라를 근간으로 한 연료전지 기반의 '반(半)신재생에너지' 전략으로 읽힌다"면서 "자꾸 탁상공론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시장에 뿌리를 둔 정책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그는 "녹색성장론의 핵심에 태양광이 포함돼 있음에도 당장 실무부처는 10월부터 태양광 발전차액을 30%이상 낮추는 등 이에 부합되지 않는 정책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면서 "현 수준으로 발전차액을 유지하고 고시 시행을 잠정 연기하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녹색성장론을 이행의지를 증명해 보이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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