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노하우 日-저금리 中-노동력 러-자원으로 공세

대규모 터키 원전 수주를 놓고 한국전력이 해외 유수 원자력사와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오는 9월 24일로 마감시한이 정해진 이번 입찰에 대한 결과는 마감 이후 3개월여의 심사를 거쳐 연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풍부한 원전 운영경험과 높은 국내 기술수준을 앞세운 한전은 "좋은 소식을 기대해도 좋다"며 한국형 원전 첫 수출을 자신하고 있다. 

 

24일 한전과 한수원 등에 따르면 지난 3월 24일 공고가 나붙은 터키 원전 건설공사 입찰은 재원조달비를 제외한 순수 공사비만으로도 국내 원전건설 수주 사상 최대 규모인 '빅매치'로 각국 원자력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터키 정부가 부지를 제공하고 사업자가 원전을 직접 지어 투자비를 회수하는 BOO(건설-소유-운영)방식으로 진행되며, 한전과 같은 IPP(민간전기사업자)만 응찰이 가능하다.

 

터기는 올해 초 공고를 내면서 "4000MW에서 ±25% 이내인 3000~5000MW(원전 3~4기)의 설비용량으로 원전을 건설하되, 최신 기술로 설계돼야 한다"는 단서조항을 단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11개 업체가 입찰의향서를 낸 것으로 알려진 이번 응찰은 이 같은 단서 탓에 일본, 러시아, 중국 등 3개국 기업만이 한전의 경쟁사로 압축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원자력계 한 관계자는 "실질 경쟁상대는 일본 GE와 히타치그룹, 중국 CNP, 러시아 A사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각 기업의 구체적인 동태와 우리 측 전략은 '포커 페이스' 차원에서라도 알려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 어떻게 심사하나 = 터기 정부는 모두 3개의 '봉투'를 응찰기업으로부터 접수한다. 첫번째 관문인 입찰서는 터키 정부가 지난해 12월 공표한 원전운영법령을 기준으로 응찰기업이 입찰공고에 제시된 기본 요건을 충족한 업체인가를 판단하는 내용이 담긴다.

 

입찰에 참여한 기업이라면 이 단계를 통과할 정도의 기본 역량을 갖추고 덤빈 기업이 자명하므로 판세를 가르는 큰 의미는 없다.

 

낙찰을 가르는 중대 관건은 두 번째 봉투인 '기술성 평가'와 마지막 단계인 '입찰단가 오픈'이다. 기술성 평가는 원전 안정성과 최신기술 내용, 60년 수명보장 등의 9개 항목을 자세히 따지는 단계로 응찰기업의 역량이 뒷받침돼야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특히 마지막 단계에서 공개되는 세번째 봉투에는 각 회사가 써낸 '전력공급량과 발전단가'가 적혀 있어 이 내용에 따라 사실상 낙찰업체가 선정된다는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전 관계자는 "욕심을 내서 응찰가를 높이 써내면 떨어질 확률이 높고, 리스크를 많이 안고 이윤을 적게 낸다면 낙찰 가능성은 높아지는 식의 '가격 싸움'"이라면서 "현재 경쟁사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한전의 승률은 = 한전은 체르노빌, 쓰리마일 등 각종 원전사고 이후 원전 건설을 중단해 온 미국, 프랑스 등과 달리 20기의 원전을 건설ㆍ운영하면서 지속적으로 노하우를 쌓아왔다는 점을 강점으로 꼽고 있다.

 

원전운영 노하우와 기술은 결국 단가를 결정짓는 주 요인이므로 기술, 전문인력, 노하우 등의 삼박자를 갖춘 한전이 경쟁사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다.

 

하지만 이같은 장점만으로 수주를 낙관하고 있을 입장은 못 된다. 중국의 경우 기술은 다소 뒤처지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값싼 노동력이란 나름의 무기가 있고, 일본은 낮은 금리와 높은 기술력, 오일머니를 내세운 러시아는 SOC사업을 주겠다는 '당근'을 제시할 수도 있다.

 

특히 러시아는 터키로 공급되는 천연가스의 40%를 손아귀에 쥐고 있어 한전의 가장 강력한 맞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는 우려다.

 

유창형 한전 원자력사업처 부처장은 "이번 터키 수주전은 한전의 경쟁력을 넘어 정부를 비롯한 모든 유관기관의 전략이 총동원돼야 성사가 가능한 프로젝트"라면서 "우리 기술로 우리 노형(APR 1400)을 수출하는 첫 사업이 될 수 있도록 각계의 적극적인 협조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 한수원은 핀란드 진출 검토 = 한편 한전의 자회사이자 원전 수출 러닝메이트인 한수원은 핀란드가 2010년 발주 예정인 40억유로 규모의 원전건설 입찰 참여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한수원은 핀란드의 의뢰를 받아 건설 타당성 연구를 공동 진행하고 있다.

 

한수원 해외사업 담당 관계자는 "아직 노형조차 결정되지 않은 사업화 이전의 단계라 지금으로선 밝힐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의미도 없다"면서 "잠재적 경합사로는 프랑스 아레바, 일본 미쓰비시와 히다치, 미국 GE를 들 수 있을 것"이라고만 밝혔다.

 

이 관계자는 '최근 핀란드가 아레바를 배제시킬 요량으로 한수원의 입찰을 권유했다'는 설과 관련 "자칫 아레바의 '들러리'만 서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니다"면서 신중한 접근이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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