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파(AGFA)는 140년 전통의 필름업체였다. 1889년 흑백 필름을 개발한 뒤 1936년 최초의 컬러필름을 판매하며 아날로그 산업을 이끌었다. 1959년에는 세계 최초의 자동노출 카메라를 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크파는 2000년대 '디지털 혁명'이 몰고올 변화를 제때 읽어내지 못했다. 후지가 발빠르게 필름을 접고 디지털 사업으로 전환할 때도 팔짱만 끼고 있었다.

 

당시 아날로그 필름사업은 여전히 높은 수익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그파는 2005년 파산했다.

 

개발된 지 10년도 되지 않은 디지털 카메라가 그렇게 빠른 속도로 '필카' 시장을 집어 삼킬 것이라 예견하지 못한 것이다. 충성스런 기존 고객은 파나소닉이나 소니와 같은 신흥기업에 고스란히 내줘야 했다.

 

2000여명에 달하는 전 세계 아그파 직원들은 공식 발표가 나오기 사흘전 한 통의 이메일로 파산 소식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변화를 거부한 대가였다.

 

최근 에너지 업계를 둘러보면 과거 아그파의 전철을 밟게 될 것으로 우려되는 기업이 많아 보인다. 향후 5년은커녕 당장 1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기업이 수두룩하다. 

 

기후변화와 온실가스 협약, 그리드 패리티 변화, 재생에너지 급성장 등 예의주시해야 할 환경변화가 한 두가지 아닌데 말이다.

 

향후 20년후 지금의 몸집을 유지하며 생존해 있을 에너지 기업은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암담하다. 10년 후를 내다보고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은감이 있다.

 

머뭇거리는 순간만큼 환경은 변화무쌍하고 앞서 나간 기업에 그만큼 뒤처진다. 아그파의 비운이 남의 얘기가 아닌 순간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선택과 결과는 온전히 해당 기업의 몫이다.

 

변화는 안주하려는 속성을 지닌 조직원의 필연적인 고통을 수반한다. 때로는 기득권의 거센 저항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조직 영속을 위해 이보다 확실한 안전장치는 없다는 것이다.

 

100년 가까이 지속돼 온 에너지 공급체계의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가 일고 있다.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문명이 저소비형 재생에너지 문명으로 옷을 갈아 입고 있다. 변화의 속도도 예측을 허용하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는 '디지털 혁명'을 틈새시장 정도로 판단한 파산 직전의 아그파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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