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이투뉴스/박진표] 최근 급등하는 전력거래가격(SMP; system marginal price)과 급증하는 한전 적자 규모는 우리 전력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매우 위태롭게 하고 있다. 급기야 전력당국은 전기요금 인상요인을 완화하기 위해 일부 발전사의 횡재이익을 회수하겠다면서 긴급정산상한가격제(SMP상한제)를 내놓았다. 긴급정산상한가격제는 전력당국이 전력거래가격을 직접 통제해 전력시장을 안정시키려는 시도이다.

하지만, 긴급정산상한가격제는 민생안정을 위해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면서 부동산 시장원리를 거스른 결과 되려 부동산 수급을 크게 교란시킨 지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연상시킨다. 새로운 제도가 전력시장의 가격결정 메커니즘을 왜곡함으로써 필시 국가 전력 수급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임을 모를 리 없는 전력당국이 이를 강행하려는 것은 전력당국이 그 만큼 사면초가의 궁지에 몰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스스로 기존의 전력산업 규제 프레임에 갇혀 있는 전력당국에게는 이제 전력시장의 작동을 중단시키는 것 외에는 난국을 타개할 선택지가 남아있지 않은 듯하다.

그럼, 2000년대 초반 전력산업구조개편이 중단된 이후 전력당국은 자신을 어떤 프레임에 가두어 버렸는가? 그것은 첫째 전기요금은 국가 산업의 경쟁력 유지와 민생 안정을 위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는 프레임, 둘째 전기사업자들이 국가적 대의를 위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프레임, 셋째 전력시장의 설계자는 전력당국이기에 전력당국이 전기사업자들의 동의 없이 전력시장에 대한 설계 변경을 해도 된다는 프레임이다.

이러한 프레임에 따라 전력당국은 발전사업자들에 대한 보상액을 삭감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마다 전력시장운영규칙, 비용평가세부운영규정 등 전력시장의 규칙을 바꾸어 시장원리를 왜곡하는 임기응변의 미봉책을 지속적으로 구사해 왔다. 거의 언제나 거수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온 전력시장 위원회에게 전력당국의 전횡을 견제해 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전력시장 위원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거래소 회원사들 다수의 지지보다는 전력당국의 동의가 무엇보다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재 우리 전력시장은 거버넌스 측면에서 봉건적 속성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전력당국이 전기사업자들을 상대로 전력시장 가격결정방식을 임의로 바꿀 수 있는 권력관계는 중세시대 봉건 영주가 농노들을 상대로 갖은 새로운 명목을 대면서 수탈을 일삼았던 권력관계와 구조적으로 다를 바 없다. 전력당국이 긴급정산상한가격제를 전격적으로 발표하고 이후 의견수렴에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는 이런 권력관계가 투사되어 있다.

나아가, 우리 전력시장이 (긴급정산상한가격제의 원인인) 시장 리스크 관리 실패라는 매우 큰 취약점을 가지게 된 것도 거버넌스의 실패에 연유한 전력시장 설계의 오류에 기인한다. 공익사업(public utilities)인 전력산업에서 전기소비자들을 위해 횡재이익을 회수해야 한다는 극히 단기적 시각의 대책을 제시하기에 앞서 왜 이런 결과가 초래되었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전력시장을 어떻게 설계해야 이런 위기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력당국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미국, 영국, 독일과 일본 등 전력시장을 운영하는 주요 선진국에서 전력거래가격 상한제를 도입한 사례가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력당국이 상한제 도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의 사례를 어설프게 인용하는 것을 본 전력산업계 종사자들은, 최첨단 IT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미국에 크게 뒤지지 않는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우리나라의 국격에 한참 미달하는 우리 전력시장의 수준을 떠올리면서 쓴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사실 전력시장의 횡재이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2010년대 초에도 전력거래가격이 급등했다. 하지만, 당시의 대응방법은 지금과 달랐다. 이후 전력산업계는 전력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전력시장 리스크를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데에 대승적으로 동의했고, 이에 전력시장을 현물시장 중심에서 계약시장 중심으로 변모시키고자 했다. 그 무렵 신설된 전기사업법 제34조 제2항에 정부승인차액계약(VC; vesting contract) 제도에 근거하여 한전과 기전발전 사업자들 사이에서 계약조건을 둘러싼 진지한 협상이 전개되었다. 이어서, LNG 발전 사업자들과 장기계약을 체결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었다.

이 모든 전력산업계의 노력을 무위로 돌린 것은 전력당국이다.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서 SMP 역시 안정화되자, 전력당국은 돌연 민간석탄발전기에 대해 정부승인차액계약이 아니라 정산조정계수를 적용하기로 결정해 버렸다. 그와 함께 발전사들과 한전이 장기계약을 체결하여 상호 전력시장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는 수단이 도입될 가능성도 사라졌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발생할 경우 전력거래가격의 급격한 변동으로 이어져 전력시장의 총체적 위기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는 완충장치를 전력당국 스스로 걷어차버린 것이다. 이는, 밀턴 프리드먼의 ‘샤워실의 바보’ 이론이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전력시장 정책에서도 나타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결국,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서 일부 발전사들이 횡재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전력당국이 전력시장을 제대로 설계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이런 점에서, 긴급정산상한가격제는 전력시장의 극단적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취할 수밖에 없는 전력당국의 전기소비자를 향한 충심 어린 조치가 아니라, 전력시장을 잘못 설계한 결과를 회피하고 그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조치를 되풀이해온 전력당국의 정책적 관성에 따른 결과물일 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미래 전력시장을 재구축하기 위한 설계 방향을 모색함에 있어서 긴급정산상한가격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이다.

박진표 chinpyo.park@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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