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가에너지효율 25% 개선 등 '수요효율화 종합대책' 발표
전문가들 “유가 오를 때만 반짝, 정책 나열이 아닌 실천이 중요”

[이투뉴스] “에너지효율은 골동품이다. 평소에는 지하실 깊숙한 곳에 보관하다 때가 되면 잠깐 꺼내서 감상한 후 다시 지하실에 처박아 둔다. 여기서 말하는 때가 언제인지는 누구나 다 안다. 고유가로 인한 에너지가격 상승 시기나 공급망이 불안할 때 잠깐뿐이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국내 에너지수요관리 정책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에너지수요관리는 효율화와 비슷하게 쓰이지만 절약과 부하관리까지 포함하는 의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제유가를 비롯한 에너지가격 폭등으로 국내 전기·가스요금 인상 요구가 빗발치자 조만간 에너지효율을 강화하겠다는 새로운 정책이 나올 것이란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이창양)는 23일 더플라자호텔에서 제25차 에너지위원회를 열어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에 대한 보고를 듣고, ‘시장원리 기반 에너지 수요효율화 종합대책’에 대해 논의했다. 새정부 들어 첫 번째로 열린 이날 위원회에선 에너지 정책방향에 대한 논의와 함께 관계부처가 함께 만든 수요효율화 종합대책을 심의, 의결했다.

위원회를 주재한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모두 발언을 통해 “작년부터 급속도로 악화된 에너지 공급망이 불안해지면서 전세계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새정부의 에너지정책은 공급측면에서는 원전 활용도를 제고하는 정책전환과 함께 수요측면에선 그간의 공급위주에서 수요효율화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양대 축”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공개한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에 대해선 국정과제를 통해 발표한 원전 적극 활용 및 에너지안보 확립, 적극적 탄소중립 정책 추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아울러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신산업 창출을 통한 ‘튼튼한 에너지 시스템 구현’을 위한 세부정책을 오는 7월에 확정하여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이 새정부 첫 에너지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이 새정부 첫 에너지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EERS 의무화, 자동차 연비개선, 요금체계 유연화
관계부처 합동으로 내놓은 에너지 수요효율화 종합대책을 통해 정부는 우리나라 에너지정책 방향을 “공급중심에서 탈피해 수요효율화 정책 중심으로 과감하게 전환하겠다”고 천명했다. 정책전환 사유에 대해선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에너지 다소비국이자 저효율 소비국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국가 전체적으로 OECD 평균보다 1.7배 이상 많은 에너지를 사용 중이며, 에너지원단위 역시 OECD 최하위 수준(36개 중 33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수요효율화의 핵심은 오는 2026년까지 국가에너지원단위를 25% 개선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어 ‘에너지효율 선진강국 도약’이라는 비전과 함께 2027년까지 향후 5년간 서울시 6년치 전력량에 해당하는 2200만TOE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이를 위해 산업, 가정·건물, 수송 등 3대부문의 수요효율화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세부전략도 공개했다.

먼저 산업부문의 경우 인센티브 등을 통해 산업현장 효율혁신을 본격화해 연간 에너지를 20만TOE 이상 소비하는 다소비기업 30곳을 대상으로 효율혁신 자발적 협약을 추진한다. 산업체와 효율혁신 목표 등을 설정하고 ESG인증, 결과공표, 포상, 보증·보조 등 다양한 지원으로 효율혁신을 이끌어 내겠다는 목표다.

한전과 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가 시범사업 중인 에너지공급자 효율향상제도(EERS)를 의무화하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또 에너지사용기기 효율관리제도(대기전력저감, 고효율기자재인증, 효율등급제)의 효과 제고를 위한 제도 통합과 함께 과감한 규제혁신을 추진키로 했다.

▲에너지사용기기 효율개선제도 개편 로드맵.
▲에너지사용기기 효율개선제도 개편 로드맵.

가정·건물부문은 관련 제도 개선과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시범사업 중인 에너지캐쉬백(전기절감 우수 공동주택 지원)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신축건축물의 제로에너지건축물 확산도 가속화한다. 또 사각지대인 대형 기축건물에 대한 효율목표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에너지진단 권한 이양과 지방세 감면도 추진한다.

수송부문은 친환경 미래차 추세에 맞춰 효율제도 정비, 전기차 전비 개선을 위해 현행 단순 표시제를 넘어 선제적 등급제(1∼5등급) 도입 등 개편에 착수한다. 여기에 수송에너지의 21%를 사용하는 중대형 승합·화물차(3.5톤 이상) 연비제도 도입도 검토키로 했다.

디지털 수요관리 및 정책기반 추진체계 정비에도 나서 ▶데이터기반 산업·건물·수송부문 효율혁신 R&D 추진 ▶디지털 수요관리 기술혁신 및 新산업기반 조성 ▶수요효율화 조세지원 등 인센티브 강화 ▶수요관리가 작동할 수 있는 요금체계 유연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과거 정책·계획 복사한 내용이 대부분
새정부가 수요효율화를 에너지정책의 전면에 내세운 것은 글로벌 석유·가스 가격이 치솟으면서 국내 요금인상 요구가 쏟아지는 등 에너지가격에 물가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결국 에너지가격이 치솟고 공급망이 불안해지자 ‘전가의 보도’인 수요관리·효율 강화 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도 거의 동일한 정책을 내놓은 바 있다. 바로 2019년 발표한 ‘에너지효율 혁신전략’이다. 이번에는 ‘효율혁신’에서 ‘수요효율화’로 이름만 바꾸고 시장원리에 기반한 이라는 단어를 앞에 추가했을 뿐이다.

에너지 수요효율화에 대해선 고유가 등 에너지 위기와 탄소중립 대응에 있어 입지, 계통, 수용성 등 공급부문의 3대 허들을 원천적으로 회피하면서도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독일 등 선진국들이 수요효율화를 제1의 에너지원으로 인식하고 최우선 에너지정책으로 추진하는 이유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역시 이전 정부에서 수요혁신을 주창하면서 내세웠던 이유도 똑같다.

세부추진정책에 있어서도 이전부터 나왔던 방안들을 다시 꺼냈다. 적자에 허덕이는 에너지공기업을 대상으로 EERS 의무화를 추진하겠다는 방안을 비롯해 자동차 연비개선, 제로에너지건축물 확대, 기존 건축물 에너지진단, 효율관리제도 강화 등 다 한 번씩은 나왔거나 이미 추진 중인 정책이다. 에너지다소비기업이 자율협약을 통해 효율개선을 유도한다는 내용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온실가스 저감 자율적 협약을 떠오르게 한다. 디지털 수요관리 역시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 보급 확산을 빼면 내용이 없다.

전문가들은 에너지수요관리 정책은 사실 가격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원가를 반영해 요금현실화를 꾀하지 않으면 수요관리 및 효율개선을 추진해야 하는 유인책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대책에 원가변동을 적시 반영할 요금체계 유연화를 마지막 대책에 끼워 넣었다. 하지만 새정부 역시 이전 정부와 별 차이 없이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최소화하겠다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위원회 위원은 “사실 수요효율화 종합대책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뤄지지는 못했다. 좋은 정책을 나열해 추진하겠다고 하니 이번에는 꼭 했으면하는 마음으로 의결에 나선 것"이라고 현장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에너지효율은 가격정책이 핵심이라는 것은 다 안다. 또 예산 등의 뒷받침이 없으면 에너지 위기가 수그러들면 효율정책이 다시 유야무야되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의 제대로 된 정책실현 의지가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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