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시장의 재구축 (중) /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이투뉴스/박진표 변호사] 전력시장의 본질적 기능은 전력거래를 통해 전력수급에 관한 정보를 가격 시그널로 전환한다는 점이다. 이 가격 시그널이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전력의 공급과 수요를 조절하고 궁극적으로 전력생태계의 효율성을 높일 것이라는 믿음이 전력시장을 창설하고 운영하는 요체이다.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전력생태계가 디지털 데이터 기반의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로 재편되어 가격 이외의 데이터들이 전력거래에 충분히 활용되기 전까지, 전력시장은 전력수급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대단히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전력시장의 지위는 전혀 공고하지 않다. 전력시장의 많은 요소들이 관료적 해결책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계통제약 발전에 대한 보상(S-CON; system constrained-on)의 적정성을 둘러싼 지속적인 논란, 그리고 용량요금(capacity payment) 계수의 도입과 변경 과정에서 드러난 무원칙성은, 우리 전력시장이 본연의 시장 기능이 아니라 시장을 가장한 규제에 의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변동비반영시장(CBP; cost-based pool)이라는 명목 하에 전력거래소 비용평가위원회가 한 달 전에 각 발전기의 변동비를 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루 전 전력거래 입찰을 진행하는 프로세스를 보면, 우리 전력시장은 엄밀한 의미에서 시장보다는 수직통합체계의 유틸리티 모델에 더 흡사해 보인다. 전력거래소가 법적 근거 없이 발전자회사와 민간석탄발전사의 수익을 결정하는 정산조정계수 제도에 이르면, 우리나라가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는 자본주의 국가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럽게 된다.

물론, 전력산업이 공익사업이라는 명분 하에 정부당국이 전기소비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기판매사업자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횡재이익, 구조적 초과이익을 규제하는 등 전력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내러티브가 다수 국민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정부관료들에게 거부하기 어려운 호소력을 지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공익사업 내러티브가 주효했던 것은 정부가 전기의 보편적 공급을 달성하고자 규제협정(regulatory compact)을 통해 전기사업자에게 독점권을 부여하고 안정적 수익을 보장한 전력산업 팽창기였다.

전력산업의 팽창이 멈춘 이후에도 전력산업이 정부규제에 의해 리스크 없는 상태로 유지되자, 과잉투자 등 독점기업의 극심한 비효율이 발생했다. 결국, 전기의 보편적 공급이 달성된 현시점에 있어 공익사업 내러티브는 기존 전기사업자 혹은 전력당국의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한 고루한 주술일 뿐이다.

더욱이 이러한 내러티브는 정부의 지속적인 개입이 궁극적으로 전력생태계를 무너뜨릴 것이기에 지속불가능하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전기소비자 보호, 전기판매사업자 재무개선 등 정책적 이유로 전력시장의 가격결정원리가 훼손되는 일이 만연할 경우, 발전사들과 그 투자자들은 전력시장의 공정성, 중립성, 그리고 법적 안정성에 대한 신뢰를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다. 이는 장기적으로 발전사업에 대한 만성적 투자 부족을 초래하여 우리 전력시장의 불안정성을 더욱 증폭시키는 연쇄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곧 도입될 예정인 긴급정산상한가격 제도(SMP 상한제)는 가격 시그널을 사라지게 함으로써 전력시장의 존립 그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 최근 동부 지역의 전력거래가격이 급등하자 MWh당 300 호주달러를 상한으로 하는 전력거래가격 상한제(administered pricing)가 발동되었고, 그러자 발전기들의 잇따른 용량철회(capacity withdrawal) 현상이 발생하면서 전력시장이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결국, 에너지시장운영국(AEMO)은 한동안 NEM 관할구역에 대해 전력시장 운영을 중단시킬 수밖에 없었다.

만약 긴급정산상한가격 제도가 시행되는 경우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발전사들의 경영진은 가격상한에 따른 손실 또는 이익 급감을 감수하면서 발전을 지속하는 것이 자신에 대한 배임 문제를 초래하지 않을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이번 겨울 안정적 에너지 수급을 위해 우리나라가 유럽, 일본, 중국 등과 LNG 확보를 위한 총력전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가격상한제는 LNG 직수입 발전사들이 공격적으로 물량을 유인을 제거하고 오히려 그들이 장기계약물량을 해외 재판매(diversion)하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런 점에서, 정부당국은 올여름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정치적 위기를 넘겨보려고 이번 겨울에 감당 불가능한 초대형 위기를 불러들이는 것 아닌지 진지하게 자문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관료기구에 의해 전력시장의 가격 시그널이 전기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경로가 왜곡되거나 차단될 경우, 우리 전력생태계는 과거 공산주의 국가 또는 오늘날 포퓰리스트 국가의 전철을 따라 극심한 사회경제적 비효율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전력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 나가야 하는가? 전력거래가격 리스크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지금 당장 전력시장을 계약시장 중심으로 변모시켜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설명한 바 있다. 계약시장은 발전사에게 장기 연료도입계약을 체결할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에너지 안보 증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런데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나라 전력생태계가 직면할 리스크는 탄소중립 실행에 기인한 것이든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기인한 것이든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전력시장의 전력거래가격의 변동성은 더욱 증폭될 것이며, 그에 따라 계약시장 밖에서 막대한 횡재이익을 얻는 발전사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사실 발전사의 횡재이익은 발전과 판매의 겸업을 불허하는 현행 전력산업의 구조적 측면에 기인한다. 그리하여 현행 전력시장은 발전, 특히 연료 부문의 경쟁에게 승리한 자를 축복한다. 하지만, 도매시장에서의 횡재이익이 반드시 전기소비자의 후생으로 이어지는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횡재이익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경우 머지않아 전기소비자들이 전력산업의 구조에 불만을 표출할지도 모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력생태계는 본질적으로 전기소비자의 효용을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전력산업의 경쟁구조는 전기소비자의 후생을 늘리는 방향으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한 전력산업 경쟁구조 하에서 전기사업자들은 단지 발전이익을 극대화하기보다는 전기소비자를 기쁘게 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것이다. 그들은 도매시장에서 막대한 횡재이익을 얻기보다는 전기소비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고자 전기요금 인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력거래가격 리스크를 헤지하려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연료가격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찾을 것이다. 탄소중립에 따라 확산될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그리드와 에너지저장장치에 막대한 투자를 하기보다는 전력소비자의 전기수요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방안을 모색하려 할 것이다. 그러한 전력산업 경쟁구조는 발전과 판매 겸업을 허용하는 것이다. 물론 판매부문 경쟁이 도입되고 적절한 감독이 이루어진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박진표 chinpyo.park@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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