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호 광운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

▲송승호 광운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
송승호
광운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

[이투뉴스 칼럼 / 송승호] 전력계통 내에서 재생발전기는 이제까지 별로 존재감이 없었다. 용량이 작고,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보니 그저 발전이 조금 되면 부하가 마이너스로 약간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라고 여겨지는 하찮은 존재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가장 대표적이고 효과적인 탄소배출 감축 수단으로 떠오른 재생에너지 발전을 대폭 확대하여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이 세계적으로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재생에너지 발전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불과 5년 만에 태양광 발전 설비의 누적 설치 용량이 약 350% 증가하여 총 21GW에 이른다. 태양광 발전의 연평균 전력공급 비율은 약 6% 수준이지만 경부하 상황에서 순간적으로는 우리나라 전체 부하의 20%를 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가 급격히 증가하다 보니 전력계통의 안정성에 관한 염려가 늘어났다. 송전급 주요 전력 설비에 갑자기 사고가 발생했을 때에 큰 전압 강하가 발생하고 그 영향으로 주변의 태양광·풍력이 일시에 멈추게 되면 한꺼번에 수백MW 혹은 수GW의 대규모 발전기가 탈락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즉 1차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영향으로 주변의 태양광 또는 풍력발전기까지 탈락하는 2차 이벤트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대규모로 다수의 분산전원이 보급되면서 일찍부터 이러한 인버터 기반 발전기의 동시 탈락시 문제점이 지적되었고 그 결과 그리드코드(Grid Code)의 개정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재생에너지 발전기에 FRT(Fault Ride-through) 기능을 갖추도록 요구하게 되었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기들도 사고 시에 계통 연계를 유지하고 있다가 사고가 회복되면 빠른 시간(통상 5초 이내)에 사고 발생 이전 수준의 출력을 내도록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가 수정되었다.

선진국에서도 초창기에는 주로 대용량 발전소(송전 계통망 연계 발전소)에만 이러한 기술적 요구사항을 강제하다가 최근에는 중소규모 용량의 발전소(배전망 연계 발전소)에도 이러한 요구조건을 확대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0년 송전용(통상 154kV 이상급) 그리드 코드 개정에 이어 배전용 코드도 개정이 완료되어 시행되고 있고 태양광 인버터의 기술 표준 규격에도 FRT 기능이 포함되어 2023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 2022년 현재까지 이미 설치된 20GW가 넘는 태양광 발전기에 FRT 기능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그 성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설치된 태양광 설비에 대해서도 인버터 프로그램 개조를 통해 FRT 기능을 새롭게 추가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미 설치되어 운영 중인 설비는 개조가 어렵고 발전 손실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점이 있지만 그래도 전력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향후 늘어날 재생발전기의 수용을 위해서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주요 인버터 제조사들을 상대로 개조 방안과 시험 검증 방법 및 비용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기 설치된 모델은 아주 다양하지만 제조사 숫자로 보면 주요 제조사들이 상당히 많은 비중의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조사 중심으로 기 설치된 인버터를 경제적으로 개조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게 하고 현장 시험을 통해 검증한 후에 확산시키는 전략이 유효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태양광 인버터의 FRT 기능을 시험할 시험기관과 인프라도 부족하다. 주요 공인 시험 기관들이 설비 용량이나 기술인력 부족 그리고 수요 급증에 따른 대기 시간 증가의 문제를 겪고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시험 인프라 투자를 지원하고 빠른 시험과 인증을 통해 최대한 발전 손실을 줄이면서 개조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기 설치된 모든 태양광 인버터를 전부 개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고 발생 시 사고의 경중에 따라, 그리고 사고 발생 지점으로부터 떨어진 거리에 따라 전압 강하 발생량이 달라진다. 따라서 주변 지역에 FRT 기능이 없는 태양광발전소가 많은 곳은 집중적으로 개선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FRT 기능은 재생에너지 발전기의 책임이 늘어나고 있다는 단지 하나의 사례일 뿐이고 이제 시작이다. 더 많은 다양한 기술적 요구사항과 책임이 재생에너지 발전기에 부과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기가 전력계통에서 더이상 마이너리티가 아니고 주요 플레이어로 떠오르게 된 이상 전력계통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책임의 일부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 발전기도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전체 계통이 건전하게 유지되기 위해 재생발전기도 기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전력 계통이 무너지면 재생발전 사업자의 피해도 막심하다. 또한 앞으로 계통에 도움이 되는 발전기는 계통연계를 보장받을 뿐만 아니라 계통 안정화에 기여한 만큼 보상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한편 계통 안정화 기능을 갖추지 못한 재생발전기는 설 땅이 없어질 것이다.

희망은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기는 인버터 기반이며 인버터는 우수한 프로그래머블 성능을 갖추고 있다. 기술 개발에 의해 기능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고 지금보다 더 훌륭한 계통 안정화 지원 기능이 나올 수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의 비율을 높이고 싶은가? 그렇다면 시스템 안정 운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재생에너지 발전기를 만들어야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시스템에서 수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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