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시장의 재구축 (하) /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이투뉴스/박진표] 우리 전력시장은 도대체 어쩌다가 ‘시장을 가장한 규제기구’라는 오명을 쓰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우리 전력시장에서 전기사업자들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의사결정이 저지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 전력시장의 의사결정에 있어 관료적 메커니즘이 어떤 과정으로 보이지 않는 손을 대체하게 되었을까? 21세기 자본주의 국가의 전력시장에서 어떻게 해서 20세기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모순들을 목도하게 되었을까?

이들 문제점은 우리나라 전력시장이 비용기반시장(CBP; cost-based pool) 형태로 운영됨에 따라 전력거래가격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가 의사결정의 영역에 맡겨져 있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급전순위 결정을 위한 변동비 항목을 결정하고 산정하는 작업과 용량가격의 반영요소를 결정하고 산정하는 작업 등을 사람이 직접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발전자회사 또는 민간석탄발전기 정산조정계수 제도는 인위적인 전력거래가격 조작이 얼마나 당연시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주요 사례다.

다만, 단지 전력시장의 수많은 요소들이 사람의 판단에 좌우된다는 것은 우리 전력시장을 비난해야 할 이유로는 결정적이지 않다. 계약시장을 구성하는 전력구매계약(power purchase agreement) 또는 차액계약(contract for difference)을 체결하는 데에도 의사결정이 필요하고, 또한 정상적인 전력시장의 경우에도 전력시장 메커니즘을 결정하기 위한 의사결정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물론, CBP 체제가 전력거래가격 결정방식으로서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CBP 체제는 이를 운영하는 데에 너무 많은 요소들에 대한 의사결정을 필요로 함에 따라 구조적으로 인간의 오류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CBP 체제의 한계를 참작하더라도, 우리 전력시장은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계통제약운전 시 발전기를 돌릴수록 손실을 입도록 하거나 용량계수를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용량요금 규모를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이는 등 전혀 합리적이지 않고 일관적이 않은 행태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다양한 전력생태계 참여자들이 신뢰하고 참여하기에는 안정적 요소가 너무나 부족하다. 전기판매사업자인 한전의 수익이 눈에 띄게 악화되면, 발전사업자들은 눈 뜨고 코 베이듯 수익 악화를 각오해야 한다. 전력당국의 굳건한 결심 앞에서는 어떠한 저항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 만약 전력시장 제도변경 풍문을 둘러싼 첩보전에 실패하면, 사업자들은 심지어 전력시장 위원회 앞에서 말 한마디 할 기회도 얻지 못한다.

이렇듯 우리 전력시장을 특징짓는 비합리성, 비일관성, 그리고 절차적 불투명성은 본질적으로 우리 전력시장 의사결정구조에 내재된 착취적 요소에 기인한다. 이는 전기요금 인상요인 억제, 한전의 재무구조 악화 방지 등과 같은 정치적 또는 정책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목적 달성을 위한 착취적 수단이 별다른 저지를 받지 않고 전력시장에 도입되어 왔다는 사실은, 우리 전력시장의 거버넌스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력시장 거버넌스의 비정상성은 무엇보다도 전력당국이 전력시장 의사결정기관에 가격규제기구의 역할을 부여하려는 데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CBP 체제에 따른 불가피성을 고려하더라도,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는 법치주의 국가의 헌법 하에서 전기사업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가격규제는 마땅히 전력당국이 전기사업법에 근거한 공권력의 행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전기사업법은 정부승인차액계약(vesting contract) 제도와 전력거래가격 상한제도를 규정하여 전력당국이 전력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엄연히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전력당국은 대개 적법절차에 의거한 공권력 행사를 회피한 채 전력시장 의사결정기관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방식으로 우리 전력시장의 거버넌스를 왜곡하고 전력거래가격 결정방식을 교란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전력당국과 전력거래소는 다음과 같이 반론을 제기할지 모른다: 우리 전력시장의 메커니즘을 결정하는 핵심 코드(code)는 전력시장운영규칙과 그 하위 규정인 비용평가세부운영규정이다. 이들 핵심 코드를 설계하는 의사결정기관은 규칙개정위원회와 비용평가위원회다. 이들 의사결정기관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대표들과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으므로, 우리 전력시장 메커니즘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보장된다. 

미안하지만, 법률가인 필자에게 위 반론은 전력시장 거버넌스의 핵심을 놓친 공허한 메아리로 다가올 뿐이다. 시장규칙은 규칙개정위원회와 비용평가위원회의 위원들을 전력거래소 임직원, 공무원, 전기사업자 대표 소속 임직원, 전문가 중 전력거래소 이사장이 위촉하는 자로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얼핏 공익과 사익, 나아가 전문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멋진 조합으로 보이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요소가 다수 드러난다. 

전기사업법 상 회원제 법인인 전력거래소의 의사결정에 그저 스태프(staff)에 불과한 전력거래소 임직원을 참여시키는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전력거래소가 상정한 안건에 대해 그 스태프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이해관계 상충(conflict of interest) 아닌가? 공무원, 전문가, 그리고 전기사업자 대표 소속 임직원 선출에 대해 회원사들의 승인이 있었는가? 더욱이, 전기사업법에 따라 부여 받은 시장규칙 승인권을 통해 공익을 관철시킬 능력을 보유한 전력당국이 굳이 회원제 조직의 의사결정과정에 일일이 개입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있는가? 그것은 공권력의 공권력의 남용으로 평가될 소지는 전혀 없을까? 보다 근본적으로, 시장규칙과 비용규정 개정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회원사 일반의 참여를 배제함으로써 회원사들을 소외시키는 것은 거버넌스의 주종관계가 바뀐 것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사실 현행 전력시장 위원회의 구성은 자문역할을 하는 데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민법의 사단법인 규정이 준용되는 회원제 조직의 의사결정기능을 맡기기에는 문제가 크다. 이는 다양한 법적 문제를 포함한 것이다. 이제 전력시장 위원들은 점점 후진적 거버넌스에 인내심을 잃어가는 여러 회원사들에 대한 법적 리스크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참고로, 미국의 대표적 전력시장인 PJM 시장은 회원사들이 체결한 운영계약(Operating Agreement)에 의거한 ‘합의 기반 문제해결(Consensus Based Issue Resolution)’ 프로세스를 통해 모든 회원사들이 PJM 시장 운영에 관한 중요의사결정을 자치적으로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반면에,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등 연방 또는 주 정부기구 또한 대표자를 지명할 수 있지만 그들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렇듯 실타래처럼 얽힌 우리 전력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력거래소가 전력시장의 공정하고 효율적인 운영이라는 본연의 업무에만 충실하도록 가격규제 기능을 전력거래소에서 떼내어 전기위원회, 궁극적으로는 에너지 독립규제기구에게 이관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전력시장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전력시장 거버넌스를 재구축해야 하며, 그 출발점은 회원사들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투명하게 운영함으로써 전력시장 거버넌스의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다.

박진표 chinpyo.park@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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