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희 연세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조형희 연세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조형희
연세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이투뉴스 칼럼 / 조형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로 전 세계가 에너지 대란을 겪고 있다. 최근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중단 위협에 탄소중립을 주도하던 독일조차 ‘석탄화력발전 재가동’, ‘원전 중단 재검토’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지난 2~3년 동안 많은 국가들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Net zero CO2)을 선언했지만, 에너지 대란은 이런 환경적인 이슈보다 안보 차원에서 에너지원 확보를 위한 방안 수립에 더  치중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의 역사는 대형 재난사고에 의해 주기적으로 중흥과 감축을 반복했다. 미국은 1979년 스리마일 섬 원자력발전 사고로 카터 대통령이 더 이상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미국은 현재 전 세계 원자력발전소 총 440기중 가장 많은 92기를 운전하고 있다. 원자력 사고 중에서 피해가 가장 컸던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후에 한동안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중단됐지만, 2000년대 들어서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면서 새로이 중흥기를 맞는다. 하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많은 국가에서 원자력발전 규모가 축소되거나 중단됐다. 이와 같이 원자력발전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낮은 발전 단가와 회복하기 어려운 재난사고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걸어온 역사를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과 재난사고의 위험성에 사이에서 원자력발전 공급 확대와 축소 정책을 반복했다. 다만 우리나라만 원자력발전을 축소하고, 안전하게 운전한다고 방사능 재난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할 받을 수는 없다. 현재 중국은 원자력발전소 55기를 운행 중이고 17기를 건설 중이다. 이들 발전소의 대부분은 중국 동해안(우리나라의 서해안)을 따라서 위치한다. 만약 그 발전소중에서 사고가 난다면 편서풍의 영향으로 동쪽에 위치한 우리나라가 큰 피해를 보게 된다. 

우리나라는 최상위 에너지 계획인 ‘에너지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한다. 가장 최근에 수립된 계획은 2019년에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2019~2040)이다. 에너지기본계획을 바탕으로 10여 개의 하위 계획이 있고, 그중에서 2년마다 수립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서 에너지원별로 발전 비중을 결정한다. 최근에는 2020년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0~2034)이 확정됐다. 이 계획은 현재보다 석탄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 비중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의 비율을 대폭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LNG복합화력발전은 3~4년, 석탄화력발전은 6~8년, 원자력발전은 10여년의 긴 발전소 건설 시간을 요구한다. 따라서 현재 상황만을 고려해서 수립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건설 완료 시점에서 차이가 당연히 존재한다. 일례로써, 2010년도 석탄화력발전의 경우 연료인 고급 유연탄의 수입 가격 상승, 저급탄(저발열량탄) 사용에 따른 보일러 파손 등으로 많은 문제가 있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2010년도에 수립된 제5차전력수급기본계획(2010~2024)에는 저급탄 사용이 용이한 대용량 순환유동층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이 반영됐으며, 2017년도에 순환유동층 석탄화력발전소가 삼척에 준공됐다. 하지만 2017년에 석탄세가 도입되면서 저급탄 사용은 더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게 됐다. 이와 같이 오랜 건설 기간이 요구되는 발전소 건립에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 중요하다.

앞으로의 장기 전력발전 계획은 모든 국가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작년에 탄소중립 기본법이 통과되면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이 법제화됐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2021년에 수립된 정부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2021년 10월 발표한 A안 기준: 2050년까지 원자력 6.1%, 석탄 화력 0%, 천연가스 0%로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70.8%, 무탄소 가스터빈 21.5%로 확대)이 문제점이 많고,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하더라도 장기 전력발전 계획은 탄소중립을 기반으로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은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 등의 재생에너지 발전에 매우 불리하다. 국내 연간 일사량은 985kWh/m2로 호주 1833 kWh/m2의 54%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풍력발전 건설 여건도 어렵다. 따라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을 어느 정도 수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계속 쌓여가는 방사선 폐기물 처리문제 등을 고려한다면 원자력발전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우리 지구는 모든 에너지를 태양으로부터 받는다. 따라서 궁극적인 에너지 문제의 해결은 인공태양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인공태양(핵융합 발전)은 수소를 연료로 하여 고온에서 원자가 융합하면서 배출하는 에너지를 활용한다. 중수소와 삼중수소 1g으로 석탄 약 8톤에 해당하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 핵융합 발전에 관한 연구를 1970년대부터 시작했고, 우리나라도 1995년에 ‘국가 핵융합연구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해 이를 바탕으로 한국형 핵융합연구로 KSTAR를 2007년에 건설하여 2021년에 플라즈마 온도 1억도 이상에서 30초 운전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핵융합(인공태양) 발전은 높은 기술력과 막대한 비용을 요구했기 때문에 세계 주요 선진국은 공동으로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ITER 사업에 참여하는 7개 국가는 한국, EU, 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로 1억도 이상 고온에서 연속 운전이 가능한 핵융합 실험로를 2025년까지 건설하고자 한다. 이 프로젝트에서 우리나라는 핵융합실험로의 핵심인 진공용기, 초전도 도체, 열차폐재, 블랭킷 차폐블록 등 여러 부품을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연구진과 기업이 ITER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최근에 KSTAR를 설계하고, 건설하고 운전해본 경험 덕분이다. ITER 이후의 과제는 전력 생산이 가능한 진정한 인공태양인 핵융합발전실증로(DEMO)와 상용로에 대한 연구개발이다. 이미 EU, 일본, 미국, 중국은 도전적으로 DEMO에 관한 연구 개발에 착수해 2050년대에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상용로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약 93%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재생에너지 발전을 위한 자연환경도 매우 열악하다. 따라서 에너지 자립과 2050년까지 달성해야 하는 탄소중립이라는 2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서 핵융합발전 실증로(DEMO)와 상용로 개발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 ‘핵융합에너지개발진흥법’에 기반한 구체적인 로드맵 수립과 관련 기관들의 적극적 참여와 정부의 노력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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