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배터리 이상 진단을 위한 본질적 접근
[칼럼] 배터리 이상 진단을 위한 본질적 접근
  • 한세경
  • 승인 2022.08.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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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경 경북대학교 전기공학과 부교수 (공학박사)
▲한세경 경북대학교 전기공학과 부교수 (공학박사)
한세경
경북대학교
전기공학과 부교수
(공학박사)

[이투뉴스 칼럼 / 한세경] - 심슨 패러독스의 교훈
부지불식간, 혹은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일상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 가며 살아가고 있다. 기상 알람소리에 졸린 눈을 뜨지도 못한 채, 무의식화된 습관에 의존해 휴대폰을 찾고 알람을 멈춘다. 인식이 개입되지 않은 문제해결이다. 이러한 행위를 몇 번을 반복하다 겨우 눈을 뜨니 이미 출근시간을 넘긴 상황. 상사의 잔소리가 머릿속에서 알람보다 더 크게 울린다. 이내 목청을 가다듬고 전화를 해서는 거치게 연출된 목소리로 밤새 얼마나 고열에 시달렸는지를 토로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인식이 개입되지 않은 습관적 문제해결로 인한 부작용을 또 다시 근본적 해결이 아닌 임시방편으로 조처하는 악순환이다.  

사실 위 사례처럼 우리가 살면서 접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근원적 인식을 통한 대처보다는 무의식적 혹은 습관적 방식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 인식이라는 것이 의식적이고 수고스러운 과정이기 때문에, 직관이나 단순한 신체적 반응에 근거하여 상황을 모면해왔던 경험이 자연스레 체화되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필자와 같은 학자들조차도 (어쩌면 일반인보다 더) 문제의 본질에 천착하기보다 수단적 기술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이 유행하면서 이러한 경우를 더 자주 목도하곤 한다. 가령 단순히 일반적 회귀모델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굳이 방대한 데이터와 컴퓨팅 리소스를 요하는 딥러닝 모델을 적용하고 이를 거창하게 포장하여 문제의 본질적 해결보다는 그 방식을 포장하는데 치중하는 경우다. 즉,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익숙하거나 널리 퍼진 기술을 문제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적용한다.

배터리 분야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최근 들어 뚜렷해졌다. 특히 화재 사고가 반복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식상해질 정도로 배터리 이상진단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그 주변을 항상 빅데이터나 인공지능같은 소위 화려한 단어들로 수식하곤 한다. 하지만 한 꺼풀만 깊게 들어가면 정작 배터리의 이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도 명확한 답변을 내놓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문제를 정의하지 못하니 근본적으로 그 해결책을 내놓기가 어렵고, 대신 화려한 방법론적 수식어에 기댄 홍보를 하는 셈이다.

필자의 소략한 식견으로 볼 때, 기업들이 진단의 주변부만을 겉도는 이유는 결국 이상은 본질적으로 ‘진단’의 대상이 아니라 ‘인식’의 대상이라는 것을 놓친 탓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소위 디스크라는 추간판탈출증이 있는 사람들이 병원에 가면 대부분의 의사들이 튀어나온 추간판을 절제하는 수술보다는 고통 자체를 경감시키는 치료를 우선시한다. 고통만 없다면 추간판 탈출은 생명유지나 생활에 지장이 없기에 이 병의 본질은 고통 그 자체지 추간판 탈출여부가 아니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니 진단이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배터리의 이상이라는 것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결국 배터리라는 장치에 우리가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통상 배터리에 기대하는 것은 외관이나 형태가 아니라 공칭 수준의 에너지와 출력 같은 물리적 성능과 또 이를 안전하게 약속된 기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 즉 수명에 있다. 결국 배터리 이상이라는 것은 성능, 수명, 안전 측면에서 대상 제품의 현 상태가 기대치 대비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 그 본질이다. 
가령, 사용한 지 5년쯤 된 휴대폰이 하루를 지속하지 못해도 이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지만 새로 구매한 휴대폰이 그렇다면 서비스 센터에서도 무상 수리를 해주게 된다. 성능측면에서의 이상이라는 ‘인식’에 합의하기 때문이다. 안전측면에서도 배터리의 암이라 불리는 덴트라이트(리튬돌기)가 셀 내부에 형성되면 그 자체는 배터리 성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종국에는 높은 확률로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에 모든 이들이 덴드라이트의 발생을 배터리 이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덴드라이트 자체는 직접적 관측을 할 수 없기에 결국은 용량감소나 저항증가 등과 같은 미묘한 변화를 통해 인지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은 성능이든 안전이든 배터리의 이상이라는 것은 이러한 물리적 수치를 인식하고 관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일단 배터리 이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졌다면 이제 이러한 물리적 항목들을 추정하고 수치화하는 방법론의 개발로 자연스레 이어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론 측면에 있어서 현재까지는 배터리 진단이라는 것을 여러 셀의 집합체인 팩이나 모듈 같은 시스템 단위에서 계측된 평균적 수치에만 기반하여 수행하는 방식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물론 전기차 등 일부 고급 사양 BMS 에서도 셀 단위 관리를 하지만 통상 사전 시험 데이터에 기초하여 동적인 셀 상태 변화 대응이 어려운 경우가 많음).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폐배터리 재사용 분야에서도 중고 배터리에 대한 진단 수요가 늘고 있는데 이를 위한 진단기들도 개별 셀 성능에 대한 인식보다는 시스템 단위에서의 평가만 수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배터리가 아닌 통상의 시스템이라면 개별 컴포넌트보다는 집합적 성능을 평가하는 게 일반적이기에 이러한 방식이 무심코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사실 진단문제의 본질을 조금만 깊게 고민해보면 해당 방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가령 수백여 개의 셀로 이루어진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팩에서 한 개의 셀이 수 퍼센트 수준의 용량 저하나 저항 증가가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시스템 단위 진단에서는 높은 용량이나 낮은 수준의 저항으로 평가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우수한 등급의 재사용 배터리로 분류될 수 있다. 만일 이렇게 시스템 단위 평가결과에 기반하여 배터리를 사용하게 되면 실질적으로는 용량저하가 있는 셀은 지속적인 과충전/과방전에 노출되며 수명감소나 화재사고로까지 이어질 개연성이 커진다. 반대로 취약한 셀에 맞추어 사용제한을 하게 되면 결국 시스템 단위에서 평가받은 높은 성능 등급은 무의미한 결과가 된다. 따라서 배터리 진단의 본질이 안전하게 사용가능한 성능과 수명에 맞춰져 있다면 반드시 셀 단위의 진단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 중 가장 보수적인 결과를 바탕으로 전체 시스템 성능이 제시돼야 한다.

현재까지는 이러한 본질적 문제 인식이 선행되지 않다보니 진단기법 역시 걸맞은 형태로 개발되지 않았었고 제작사 역시 배터리 운용 폭을 줄이거나 물리적 마진을 늘이는 임시방편 형태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는 결국 문제발생까지의 시간을 늘리거나 확률을 떨어트릴 뿐 여전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꼴일 뿐이다. 배터리 시스템은 대규모 셀의 집합체로 동작하면서도 안전문제에 있어서는 개개의 셀이 트리거 역할을 할 수 있는 특수한 장치라는 점을 인식하고 셀 단위의 면밀한 진단이 보편화될 때에야 비로소 근본적으로 안전한 배터리를 사용할 수 있다. 따로 따로 보지 않으면 아무리 정교한 측정과 시스템도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는 심슨의 패러독스가 배터리 진단 측면에서도 훌륭한 교훈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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