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이투뉴스] 전세계 각국이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크게 신음하고 있다. 엄격한 전기요금 규제를 적용 받고 있는 각국의 전력회사들은 천문학적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올해 상반기 매출 31.9조원, 영업손실 14.3조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의 여파로 LNG 가격이 지난해 상반기 톤당 57.7만원에서 올해 상반기 134.4만원으로 132% 급등하고 유연탄 가격도 올 상반기 톤당 318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21% 급등함에 따라, 한전의 전력구매비용이 급등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프랑스 정부는 국내 전력의 70%를 공급하는 EDF(Electricite de France SA)가 재무적 곤경에 처하자 올해 7월 97억유로 규모의 상장주식 공개매수(tender offer)를 통한 EDF의 국유화 계획을 발표했다. EDF 경영진은 그에 대한 응수로 이달초 정부의 전기요금 상한제로 인해 발생한 손실 83.4억 유로의 보상을 요구하는 소를 법원에 제기했다. EDF는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가 고물가에 따른 서민 부담을 고려해 전기요금을 억제한 것이 대규모 손실의 원인이라고 밝히면서, 프랑스 최고행정재판소에 전기요금 상한제 폐지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에너지요금 상한을 느슨하게 적용하고 있는 영국에서는 에너지요금 급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현재 에너지요금 상한은 연간 1971파운드(약 311만원)로, 지난해 10월 연간 1277파운드에 비해 50% 이상 올랐다. 더욱 비관적인 점은 앞으로의 전망이 더욱 어둡다는 것이다. 영국의 한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가구당 에너지요금 상한이 내년 1월 연 4266파운드(한화 약 672만원)에 달할 수 있고, 이 경우 영국인 3명 중 1명이 빈곤에 빠질 수 있다고 한다.

현재 미-중러 간 지정학적 갈등이 계속 확대됨에 따라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돌연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나라 정치권력과 정부당국은 전기요금을 둘러싸고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선택지 중 하나는 전기소비자들의 불만을 감수하고 전기요금 인상을 수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기소비자들의 불만에 굴복하여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것이다.

전자는 전력공급 시스템을 안정시킬 수 있겠지만,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산업계와 서민층 모두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정치인들은 전기요금 인상을 국민 생존권을 위협하는 악덕으로 간주하여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도록 강하게 압박할 것이다. 그 이면에는 전기요금 인상이 자신들의 정치적 무능으로 평가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할 것이다. 정부가 공기업 인사권과 예산권을 가지고 있는 이상, 아마도 한전 경영진의 반발 가능성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후자는 전기소비자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유효기간이 아주 길지 않다는 데에 있다. 전력회사들이 금융채무를 상환하고 연료구입비 등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기요금이 동결된 상황에서 보유 자금은 머지않아 고갈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상당 기간 수십 조 원, 어쩌면 100조원을 넘을지도 모르는 신규 자금을 차입하기 위해서는 ‘고금리’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만약 어떠한 이유에서 국가의 신용등급이 낮아진다면, 차입금리가 더욱 급등하거나 아예 차입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다. 그간 공기업인 한전은 국가의 암묵적 보증을 통해 신용을 보강 받아왔기 때문이다. 한전의 부채가 계속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면, 어느 순간 한전의 재무적 작동이 멈출 수밖에 없고, 이는 우리나라 전력공급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한전을 구제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긴급 자금이 투입될 것이고, 프랑스 EDF의 사례처럼 국유화가 추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우리나라 국가 재정에 상당한 여유가 남아 있을 때의 이야기다.

이와 같이 우리의 선택은 ‘정치적 실행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의 제약을 받고 있다. 그 중 합리적인 선택은 전력공급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전기요금 정상화 방안일 것이다. 일단 무너진 전력공급 시스템을 되살리는 데에는 너무 큰 사회경제적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전이 부도를 막기 위해 남발하게 될 회사채는 금융시장을 크게 교란하여 민간 기업들의 자금 차입을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나아가, 정부의 한전 구제자금이 납세자의 호주머니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기요금 정상화를 거부하는 것은 ‘한전 빚 돌려막기’를 글로벌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으로 내세우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당위는 당위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그간 목도되어온 우리나라 정치권력과 전기요금 당국의 역학관계, 전력당국 리더십의 우유부단함, 그리고 정부관료에 만연한 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몰이해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 전기요금 정상화가 추진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그 종국적 귀결은 앞서 제시된 시나리오와 다르기를 희망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러한 희망은 비현실적이다.

그와 같은 경우, 만약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한층 더 고조된다면, 어쩌면 우리가 올해 겨울 이후 보게 될 전력생태계는 만성적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한전, 전력거래대금을 제때 지급받지 못해 연료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 발전사들, 충분한 전기를 공급되지 못하는 소비자들로 가득 찬 묵시론적 세계가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력과 전력당국은 마음을 바꿔 새로이 리더십을 발휘하여 전력생태계를 재구축해 낼 수 있을까? 아니면, 대파국에 망연자실하여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미봉책 마련에 급급할까?

비록 이번 글로벌 에너지 위기를 다행히 별탈 없이 넘어가더라도, 지금과 같은 전력생태계 거버넌스가 지속된다면 우리 전력생태계에 밝은 미래는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시시각각 숙명처럼 다가오고 있는 탄소중립 사회의 냉혹한 실체는 값싸고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한 화석연료가 부족한 경제체제인 점에서, 이번 위기는 탄소중립 사회의 전조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마제국이 완전히 붕괴한 이유는 제국의 상징인 로마시가 이민족의 침략을 받아 무너졌기 때문이 아니다. 제국의 권력층이 극심한 권력 다툼에 몰두하면서 여러 이민족들이 제국 내로 침투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이집트 등 주요 곡창지대가 이민족의 지배 하에 놓이면서 그곳에서 생산된 식량을 제국 곳곳으로 수송하는 지중해 공급망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한번 무너진 지중해 공급망은 다시 회복되지 못했고, 이후 유럽은 지역적으로 분열되어 각자 도생의 길을 가게 되면서 중세 봉건체제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국가의 1차적 책임은 국민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건은 국가의 기간공급망을 안정적으로 보존하는 것임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로마황제가 배고픈 로마시민들에게 빵을 무상 공급하여 그들의 불만을 달랠 수 있었던 비결이 로마군인들이 지중해를 장악하여 그 건너편에서 값싸고 풍부한 밀을 조달했던 데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정치권력과 정부당국은 당장의 저렴한 전기 공급에 집착하기에 앞서 어떤 선택지가 진정으로 국민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지 면밀히 재고해야 한다.  

박진표 chinpyo.park@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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