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형 생태환경작가

▲최원형 생태환경작가
최원형
생태환경작가

[이투뉴스 칼럼 / 최원형] 영국에서 가장 큰 공항 가운데 하나인 루턴 공항 활주로가 손상되면서 비행기 운항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도 하늘을 날던 새가 탈수 증세를 보이며 떨어지고 스페인에서는 새끼 칼새가 오븐처럼 달궈진 둥지를 벗어나려다 떨어져 죽는 일이 벌어졌어요. 모두 올여름 폭염으로 벌어진 기후 재난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2022년 여름, 대한민국은 80년 만의 폭우로 재난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상상 그 이상의 재난이 도심을 덮친 가운데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졌고요. 그렇지만 우려와 비판하는 목소리는 여름이 끝날 무렵 함께 사그라들고 기후 재난에 기울이는 관심도 대부분 옅어질 겁니다. 당장 제도를 정비하고 변화를 만들어낼 것처럼 위정자들이 쏟아내던 대안들 역시 다음 재난이 닥치고 또 다시 시민들이 분노할 때까지 종적을 감출 가능성이 높습니다. 재난이 반복되는 이유입니다. 예측할 수 없이 벌어지는 기후 변동성보다 더한 위기는 이렇듯 무감각해지는 우리의 인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후 위기의 원인이 온실가스 과다 배출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온실가스 과다 배출의 99%가 인간 활동에서 비롯됐다는 걸 굳이 IPCC의 권위를 빌리지 않아도 우리의 풍요로운 소비가 말해줍니다. 결국 먹고 입고 사용하고 타고 다니며 누리는 우리의 풍요로운 삶이 속속들이 폭염, 폭우와 맞닿아있습니다.

아프리카 동쪽의 큰 섬인 마다가스카르의 남부는 2년 연속 가물면서 3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었습니다. 농사를 망쳤고 130만 명이 기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먹을 게 없어 야생의 열매를 따 먹고 그도 부족해지자 진흙을 퍼먹으며 연명하고 있다 합니다. 작년 시월 브라질 상파울루 일대에서 하부브라 불리는 모래 폭풍이 발생했어요. 국토의 59%가 열대우림으로 덮여있는 브라질에서 좀체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배경엔 가뭄이 있습니다. 90년 만에 벌어진 대 가뭄의 원인으로 아마존 열대우림 개발을 지목합니다. 열대우림을 훼손한 자리에 대두를 비롯한 곡물을 기르고 그 곡물은 가축 사료로 쓰입니다. 비단 고기만이 아니라 마트를 가득 채운 우유, 치즈, 요구르트, 버터 그리고 아이스크림에 이르기까지 곡물을 필요로 하는 식품들은 차고 넘칩니다. 사료를 생산하느라 숲이 사라진만큼 가뭄은 광포하게 닥쳤고 농산물 생산량을 줄여놨습니다. 가뭄으로 브라질 농업생산량이 20%가량 줄자 국제 식량 가격이 출렁였습니다. 브라질의 대 가뭄과 우리의 마트가 이렇듯 가깝게 연결돼 있고 대륙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후 재난의 시작과 끝에 먹을거리가 있습니다. 

육식과 기후가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채식 인구가 늘고 있습니다. 고기를 덜 먹자는 취지는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지만 채식은 마냥 떳떳할까요? 가령 기후 문제뿐만 아니라 동물권까지 고려하는 이들이 채식으로 전환하면서 우유의 대안으로 아몬드 우유를 마시곤 하는데요. 아몬드 생산 과정을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전 세계 아몬드의 80%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산합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가장 가문 지역 가운데 하납니다. 올해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는 물 부족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카운티 일부 지역에선 6월부터 실외 잔디나 나무에 물 주기를 주1 회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아몬드와 연결된 문제는 더 있어요. 연보랏빛 아몬드 꽃이 피는 봄이면 농장은 붕붕 대는 벌 소리 대신 트레일러의 소음이 줄을 잇습니다. 꽃이 피어도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벌 대신 벌통을 가득 실은 트레일러가 미국 전역에서 모여들거든요. 농장에서 임대한 벌통이 아몬드 농장 곳곳에 놓이면 벌들이 꽃가루받이를 하고 비로소 아몬드가 열립니다. 문제는 이렇게 트레일러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하느라 벌이 스트레스로 많이 죽는다는데 있어요. 슈퍼 푸드로 알려진 아보카도는 녹색 버터로 채식인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런데 아보카도 가뭄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아보카도 역시 많은 물을 필요로 합니다. 칠레 페트로카 지역은 아보카도 대 농장이 생기면서 지역 주민들이 물 부족에 시달립니다. 아쉬운 대로 주 정부가 일주일에 한 번 급수차로 실어나르는 물을 배급받아 근근이 살아가고 있어요.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재배한 아몬드나 아보카도를 먹는 것은 그 지역의 물을 소비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가상수를 마시는 셈이니까요.

사철 내내 푸릇한 채소를 먹을 수 있었던 건 백색혁명이라 불리는 비닐하우스 덕분입니다. 하우스 안에서 계절을 거스르며 전천후 농사가 가능해지자 여름 과일이던 딸기는 겨울 과일이 되었어요. 화석연료 덕에 지은 농사니까 우리가 먹는 채소와 과일이 실상은 에너지인 셈입니다. 기온이 상승하면서 점점 노지 재배가 어려워지니 하우스에서 농사를 짓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하우스에서 농사에 필요한 물은 지하수로 충당하고 있는데요. 겨울부터 봄이 되도록 가물어 모내기를 미룰 정도로 물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을 고려하면 하우스에서 생산한 채소와 과일을 먹는 채식이 과연 채식 본래의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요? 

채식에도 다양한 결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육식이냐 채식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를 넘어서 어디서 어떻게 생산한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숨 쉬는 대지와 강물의 핏줄, 태양의 자비와 바람의 손길이 조화로울 때 비로소 내 입으로 밥 한술이 들어올 수 있다는 이치를 알고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생각보다 우리 식탁이 기후와 무척 가깝게 연결돼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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