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림 변호사(법무법인 태림)

▲하정림 변호사(법무법인 태림)
하정림
변호사
(법무법인 태림)

[이투뉴스 칼럼 / 하정림] 최근 전세계의 에너지 문제가 화두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대란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한국전력공사의 적자 폭이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한다. 어떤 국민이건 전기료 상승이 달가울 리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른바 ‘200원에 사 와서, 100원에 파는’ 기이한 판매구조가 계속된다면 공기업의 재정파탄은 결국 공적자금으로 메워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어떤 방식이건,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조삼모사’의 상황이기에 국민 입장에선 어느 쪽이건 달갑지 않다. 개개인들은 ‘나는 전기료를 늘 아껴 쓰고 있는데, 내가 왜 판매사업자의 적자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가?’라는 삐딱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불합리한 상황은 왜 발생한 것일까.

이는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 전력시장 구조의 불완전성 및 기이함에 기반한다. 2000년대 초 입법자 결단으로 전력시장 구조개편을 위해 법이 개정되었으나, 현실적 문제로 현실에서는 후속 절차가 중단되었다. 법은 전력시장을 제한된 플랫폼 시장으로 개편하려 하였으나, 현실은 이에 맞지 않는 불완전한 구조로 멈추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법과 현실이 유리(遊離)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제한된 복수의 판매사업자를 전제하다가(통신시장으로 따지면 SK텔레콤, LG텔레콤, 알뜰폰 사업자 등의 진입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한전의 독점판매구조가 되면서(과거 KT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장회사임에도 오히려 공익적 성격이 더욱 강조되고, 전기료 조정에 대한 압박과 책임도 커지게 된 것이다. 즉 지금 한전의 상황은, 현재 구조에서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한전의 본질 상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한전의 최대주주는 정부다. 한전의 재정파탄이 심화되면 결국 세금을 재원으로 한 공적자금이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우려되는 일이다. 특정 회사에 대한 막무가내식 재정지원보다는, 국민들에게 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전력시장의 구조에 대한 개선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에너지 업계에서는 그야말로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의 권리의무와 관련된 사항들을 의회입법의 위임 없이 하위 고시에서 규정하거나, 전력수급기본계획 등에서 규정하고 있다. ‘계획’이나 ‘고시’ 등의 모호한 지위와 기술적으로 복잡한 전문성 때문에 문제가 있어도 사건 당사자들의 사법심사 청구 장벽이 높아지게 된다. 에너지 업계에서 (위와 같이 불완전한 법 규제 대신)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실질적으로 규범력을 행사하고 있으나, 법원이 처분성을 부정하고 있어 사법적으로 다툴 방법이 없는 것도 문제다(서울행정법원 2020. 1. 10. 선고 2018구합53344 판결). 궁극적으로는 어떠한 방향으로건 법과 현실이 일치되게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태도도 아쉬움이 남는다. 법원에서는 전기료 및 그 요금체계가 ‘조세적 성격’을 가진다고 보았지만(헌법재판소 2017헌가25 사건의 위헌법률 제청 당시 제청법원의 판단), 한편으로 이에 대한 적극 개입은 꺼리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전기료의 ‘조세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전기료 및 그 요금체계의 적정성에 대해 다투는 것에 대하여는, 법원의 직권탐지주의가 아닌 변론주의가 적용되는 일반 민사소송으로 다뤄야 한다고 보았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4가단5221992 판결 등 누진세 소송). 판단에 일관성이 다소 부족하다고 보이는 측면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기에 아예 판단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면이 있다. 그러나 법원이 사법통제를 망설이는 동안 사법심사의 영역에서 벗어난 에너지 시장의 왜곡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는 결국 에너지 분야에 있어 국민의 권익 보호를 사실상 포기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에너지는 국민생활, 물가안정, 국가안보 모든 사항과 중대하게 직결되어 있다. 지금 전력시장에 필요한 것은 ‘전력요금의 정상화’가 아니라, ‘전력시장 구조의 정상화’라고 보인다. 에너지 정책이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일관성을 가지고 국민 생활에 기여할 수 있게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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