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 연재를 마무리하며…

[이투뉴스/박진표]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글로벌 에너지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탄소중립 실행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탄소중립 실행이 글로벌 에너지 위기와 관련된다면, 어떻게 해야 그 관련성을 완화할 수 있을까?

글로벌 에너지 위기의 1차적 원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경제제재로 대응한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에 있다.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함에 따라 그간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한 유럽 국가들이 고난을 겪고, 부족해진 천연가스를 두고 그들과 경합을 벌여야 하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 역시 어려움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에너지 위기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며, 러시아산 에너지를 대체하기 위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이 재편되고 글로벌 에너지 수요가 재편된 공급망에 어느 정도 적응한 후에만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물론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현재로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번 위기와 관련하여 우리 대부분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이번 위기가 에너지 위기에 그치지 않고 식량난, 물자난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더 극심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치솟는 인플레이션의 형태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시장경제 체제는 수요 대비 공급 부족의 정도를 물가상승률이라는 수치로 계량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글로벌 에너지 위기의 또 다른 요인과 관련된다. 그것은 유럽의 탄소중립 실행, 보다 정확하게는 탄소중립 낙관론이다. 유럽이 그간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탄소자산을 급격하게 폐지하거나 투자를 중단한 것이 에너지안보를 취약하게 하고 식량난, 물자난을 야기하고 있다.

탄소중립 낙관론은 재생에너지를 필두로 한 탄소중립 기술과 경제성의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적 낙관에 근거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낙관론은 현대 물질문명이 여전히 탄소라는 혈액을 공급받아야만 작동 가능하다는 점, 무엇보다도 우리 현대 인류가 이 물질문명에 완전히 도취돼 있다는 점을 무시했다. 탄소가 필요한 재화는 전기, 자동차와 비행기 연료, 철강, 시멘트, 플라스틱 등에 그치지 않으며, 인류 생존과 직결된 비료와 사료까지 포괄한다. 금융위기가 탐욕에 눈멀어 금융시장의 ‘꼬리 위험(tail risk)’을 무시한 데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탄소중립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은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나아가 모든 것의 위기(the crisis of everything)를 초래할 수 있는 리스크를 키우는 것이다.

이렇듯 탄소중립 실행에 내재된 리스크들이 폭발하여 거대한 위기로 발전하더라도, 위기 이후 글로벌 탄소중립 아젠다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좌초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성급하다. 탄소중립을 향한 미국과 유럽의 움직임은 여전히 공고하다. 특히, 셰일혁명을 통해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미국이 이번 기회에 재생에너지, 자동차배터리, 수소 등 탄소중립 기술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모습이 인플레이션 감축법(the Inflation Reduction Act of 2022)을 통해 가시화되고 있다.

인류에게 불현듯 문명적 위기가 닥치는 것은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인류는 지혜를 발휘하여 이를 극복해 왔다. 탄소중립 실행 과정에서 앞으로 발생하게 될 수많은 위기들 역시 그러할 것이다. 다만, 이상주의적 낙관론은 위기 극복의 방법이 될 수 없다. 역사를 반추해 보면, 현실과 괴리된 방법론은 엘리트 계급의 이상 실현 혹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나머지 인류에게 불행을 가져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히틀러의 민족주의 광기가 전세계를 전쟁의 화마에 휩싸이게 하고 종국에는 독일 민족 전체를 절멸의 위기로 빠뜨렸고, 중국의 대약진 운동이 수천만 명을 아사에 빠뜨린 비극으로 마무리됐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탄소중립 실행은 과도한 낙관론이 아니라 현실적 접근법에 기반해야 한다. 더욱이, 탄소중립 실행은 인류가 변덕스러운 자연에너지 의존에서 벗어나 밀도 높은 에너지원 발견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번영을 추구했던 근대와 현대의 역사와 정확히 반대 방향의 길을 가려 하는 점에서,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 나아가 경제 시스템의 붕괴라는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음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러시아의 공급중단 후 유럽에서 나타나는 대혼란, 특히 유럽 시민들의 궁핍화 현상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우리는 이전과 같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탄소중립 실행은 자칫 기업들과 국민들을 경영난과 생활고에 빠뜨려 그들의 분노와 저항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탄소중립 실행을 위한 현실적 방법론은 무엇인가? 우선, 탄소중립 실행이 질서 있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탄소중립 실행이 가져올 불확실성 못지 않게 탄소중립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탄소중립이 언제 어떤 기술적 경로를 통해 이행될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탄소중립 이행에 어느 정도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소요될지도 알 수 없다.

질서 있는 탄소중립 실행은 이러한 탄소중립 실행의 불확실성이 에너지·경제 시스템의 붕괴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탄소자산의 질서 있는 퇴출이 요구된다. 전력 분야에서는, 탄소발전기에 대한 ‘조기퇴출시 보상 옵션부 장기계약’ 체결이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탄소자산을 지금 당장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기후엘리트들에게는 탄소중립에 대한 신조(credo)의 낭송이겠지만, 현실주의자들의 눈에는 그것이 에너지·경제 시스템의 붕괴와 국민경제의 파탄이라는 결과를 낳을지라도 감수하겠다는 무모한 ‘에너지 외줄타기’로 비친다.

다음으로, 탄소중립 실행 과정에서 에너지·경제 시스템을 유연성과 회복력을 가지도록 강건하게 바꿔야 한다. 에너지전환에 따라 자연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시스템의 불안정성은 증폭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연료-발전-판매 수직통합을 비롯한 전력 및 가스 산업구조의 혁신, 그리고 공급과 수요를 탄력적으로 조절하는 디지털 플랫폼 구축이 유력한 대안이 될 것이다. 에너지 위기의 신호를 공급과 수요에 전달할 수 있도록 전기요금을 정상화하는 것은 필수적 전제다.

무엇보다도, 탄소중립 실행을 위한 적정한 거버넌스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탄소중립의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는 과제는 인류가 당면한 가장 어려운 과제이며, 이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정치적 역량을 필요로 한다. 정부와 입법자가 주권의 원천인 국민들에게 부담하는 충실의무(fiduciary duty)에 따라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거버넌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실적인 탄소중립 실행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우리가 탄소중립을 실행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기후변화가 아닌 다른 데에 있을지도 모른다. 탄소자원은 한번 소비되면 사라지는 재생 불가능한 것이기에 인류에게 한시적으로 허용된 자원일 뿐이다. 한여름 북극의 땅에 만개한 꽃들이 태양이 저물면서 사라지고 마는 것과 같이 현대 물질문명의 찬란함은 급작스러운 탄소자원의 고갈과 더불어 홀연히 사라질 운명일지 모른다. 모든 인류의 번영을 약속한 글로벌 자본주의조차도 물질적 한계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으며, 인류의 번영이 찬란할수록 그 한계가 도래하는 시점이 더 빨리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물질문명의 혜택을 오랜 기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하는 숙제다. 기후엘리트들이 기후변화의 관점에서 탄소중립에 대한 하나의 해법을 제시했다. 이제 현실주의자들이 보다 정교하고 현실적인 해법을 내놓을 차례다.

박진표 chinpyo.park@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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