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이투뉴스 칼럼 / 이필렬] 2000년경 한국원자력연구원은 0.2g밖에 안 되는 소량이지만 핵무기 제조에 투입될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앞선 1982년에는 재처리 기술을 이용하여 사용후 핵연료로부터 미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원자력연구원이 이 사실을 2004년까지 국제원자력기구나 정부에 보고하지 않고 숨겨왔다는 것이다. 고농축 우라늄 추출에 관한 연구는 1991년 노태우 정권하에서 시작되었는데, 10년 이상 감독부처인 과학기술부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비밀리에 플루토늄과 농축우라늄 연구가 진행된 것이다.

이는 원자력연구원의 연구자들이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핵무기 개발 비밀 프로젝트가 미국에 의해 발각되고 철저히 파괴된 이후에도 여전히 핵무기와 연결될 수 있는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두환 정권에서 핵무기 개발 포기를 미국에 약속하고 노태우 정권이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통해 우라늄 농축도 플루토늄 추출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음에도 연구자들에게는 여전히 당시에 습득했던 ‘흥미로운’ 기술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도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우라늄 농축이나 플루토늄 추출에 대한 관심과 기술이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서 한국의 연구자들이 핵무기의 원료인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을 잠재적으로 보유하고 있고, 한국정부에서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 원료를 언제든지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시사한다. 소형 원자탄 한개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우라늄 10kg, 플루토늄 4kg을 만들어내려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특별한 어려움 없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는 일부 북한문제 전문가와 원자력 연구자, 그리고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북한이 핵실험으로 도발할 때마다 남한의 핵무장을 주장해왔다. 지금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북한의 7차 핵실험을 앞에 두고 또다시 핵무기 보유 주장이 튀어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번의 주장은 그 전의 것과 성격이 크게 다르다. 전에는 핵무장 요구가 보수 진영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은 자들의 입에서 나왔지만, 이번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당의 핵심 지도급 인사들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지금 대통령은 남한에 미국의 핵무기를 배치하고 유사시에 사용가능한 ‘핵공유’를 이야기하고 있고, 여당 대표를 비롯한 중진들은 직접 핵무기 개발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이 그것만으로도 어떤 파장을 몰고올 것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 실제 핵무장을 감행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깊게 고심한 결과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현재 한국이 처한 여건을 놓고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핵무장은 여러 개의 어려운 장애물을 넘어야만 가능하고, 그후 닥칠 후폭풍에 대한 각오도 수반되어야 한다. 핵무장으로 가려면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파기해야 하고, 고농축 우라늄 생산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금하는 한미원자력협정을 수정하거나 파기해야 하며, 핵비확산조약(NPT)에서 탈퇴해야 한다. 그리고 이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핵무장의 길로 들어섰을 때 나타날 결과는 북한의 핵보유 인정, 미국과의 동맹 손상, 일본의 핵무장, 중국과의 관계 악화, 국제적인 비난과 제재가 될 것이다. 2004년 원자력연구원의 우라늄농축과 플루토늄 추출 사실이 밝혀졌을 때, 그것이 미량이었음에도 미국에서 안보리 회부를 고집했고, 우리 정부에서는 미국의 몇가지 무리한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그것을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핵무장이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오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국민 여론은 핵무장에 대해 부정적이 아니다. 60% 이상이 핵보유를 찬성하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는 이러한 여론에 고무되어 핵무장을 주장하고, 그것을 어떤 정치적 돌파의 수단으로 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이 단순히 여론을 참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핵무기 개발을 선언했을 때 국제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떤 결과가 기다리는지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그래도 동의할 것인지 묻는 절차도 거치는 가운데 핵무장을 주장한다면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는 국가 지도자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나아가서 정치적 목적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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