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8개월여 만에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신재생에너지 산업화 촉진방안' 연구용역안은 기대 이하의 결과물로 혹평을 받았다. 모처럼 정부가 큰 돈을 얹어 민간에 맡겼을 때 기대했던 그림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정책과 산업현장의 간극을 좁혀보겠다는 발주자의 속뜻을 연구소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지나치게 정부틀에 내용을 담으려다보니 두부모 같은 결론이 나왔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발표 전날까지 밤새워 그것 때문에 시달렸다"는 정부 관리의 말로 미뤄 짐작해 봤을 때 이번 용역안 결과에 대해 실망감을 느낀 이는 산업계만이 아닌 듯싶다.

 

비유하자면, 운동에 문외한인 아버지가 아들을 세계적 스포츠 선수를 키우겠다며 비싼 돈을 주고 유명 코치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달랑 "자질이 보이니 열심히 운동시켜 보라"는 내용의 보고서 한장 받은 식이다.

 

조언을 구한 아버지나, 꿈을 품고 잔뜩 기대한 아들이나, 지켜보는 이웃까지도 적잖이 민망케 하는 상황이다. 이를 간파한 코치가 보고서를 보완해 오겠다니 당장은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다.   
     
이제 갓 걸음마을 뗀 우리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누가 만든 청사진을 지도삼아 무한 경쟁의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까.

 

장딴지 지탱력을 갖추지 않은 어린 아이의 홀로서기를 어떻게 도울 지, 이 아이가 성장해 나가는 데 장애는 무엇이고 어떤 점을 뒷바라지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런 부정(父情) 같은 정책이 그립다.

 

아무리 윗분들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외친들 기본적인 생존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선 풀 한포기 자랄 수 없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지금의 환경이 얼마나 척박한 지 직접 암행순찰이라도 돌아볼 것을 권한다.

  

지난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그린에너지산업 발전전략 보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태양광, 풍력, 전력IT 등 9대 그린산업 기술 개발에 5년 동안 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니 이미 발표됐거나 기존 계획에서 나타난 수치를 조정한 정도이지 새롭거나 구체적인 알맹이가 없다. 모양새는 그럴싸하지만 뜯어보면 정부가 어떻게 현장을 돕겠다는 것인지 의문투성이다. 

  

이날 보고회에 이어진 토론회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국내 신재생에너지 기업 대표들이 대통령과 한 테이블에 앉아 현안을 논의하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사전에 예고한 내용을 주제로 한참 환담을 주고받던 가운데 갑지기 모 기업 대표가 발전차액 인하 문제를 꺼내들었다고 한다.

 

"이제 막 국내시장이 움트고 있는데 정부가 오히려 시장의 의지를 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정책의 최상위 콘트롤 타워까지 전달되지 못한 현장의 목소리는 때론 그렇게 처절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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