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무소 열어 장벽 없는 민자사업 노크
시장성숙 기다린 선행투자 국내기업 씁쓸

▲LS전선이 확보한 8000톤급 해저케이블 포설선 ‘GL2030’ 전경. ⓒE2 DB
▲LS전선이 확보한 8000톤급 해저케이블 포설선 ‘GL2030’ 전경. ⓒE2 DB

[이투뉴스] 중국 전선업체들이 한국 해저케이블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진입장벽이 없는 민자재생에너지 발전사업 프로젝트로 안방시장의 빗장해제를 엿보고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시장성숙을 기다리며 설비투자에 나선 국내기업들만 속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다.

13일 재생에너지 개발사들에 따르면, 중국 전선회사인 형통광전(亨通光電)은 작년말부터 한국에 사무소를 내고 물밑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대규모 해상풍력‧태양광 사업에 필수적인 직류‧교류 해저케이블을 수주하기 위해서다. 형통광전은 중국 1위 광통신‧전력케이블 제조사다.

또다른 중국전선기업 ZTT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형통광전과 함께 신안군 비금주민태양광, 신안태양광, 전남해상풍력사업 등에 견적서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ZTT는 서남해해상풍력사업 때도 국내 EPC사들과 컨소시엄을 꾸려 수주전에 가세했었다.

해저케이블 제조‧공급이 가능한 중국 전선업체는 이들을 포함 모두 4개사로 알려져 있다.

전선업계 관계자는 “그동안은 중국 내 수요가 워낙많아 관심을 두지 않다가 여유가 생기자 가장 가깝고 만만해 보이는 한국시장을 넘보고 있는 것”이라며 “중국 내수시장 실적 자체는 신뢰하기는 어렵고, 한국진출을 위해 전략적으로 저가공세를 펴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내 전선업체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 재생에너지 산업의 더딘 성장세를 감안해 어려움을 감수하며 선행투자로 해외시장부터 공략했는데, 정작 안방시장은 중국업체들이 손 안대고 코풀기식으로 잠식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앞서 LS전선은 1900억원을 추가 투자해 동해 해저케이블 공장을 확장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 국내 최고(最高) 케이블 생산타워를 건립하는 등 생산능력을 1.5배 가량 키울 계획이다. 후발주자인 대한전선도 해저케이블 생산인력 확보와 설비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해저케이블은 제조기술과 수율, 품질확보 등이 까다로워 프랑스 넥상스,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일본 스미토모 등 전 세계 선두 메이저 전선회사가 과점하는 시장이다. 국내기업 중에는 LS전선만이 대만과 미국, 유럽시장 등에 진출해 매출을 키우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정책과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 속에 국내기업이 유일하게 산업화에 성공해 외화벌이에 일조하는 분야가 바로 해저케이블”이라며 “세계 톱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기업은 고전하는데 해외업체들은 우리시장에 쉽게 손을 뻗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최소한의 국내산업 보호정책이 아쉽다고 지적한다. 실제 일본은 자국 전력망 구축사업 시 아직 국제입찰을 허용하지 않고 있고, 대만은 2018년부터 161kV·345kV급 초고압케이블을 수입제한품목으로 지정해 해외기업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일부 국가들은 국제경쟁입찰을 하더라도 자국어로만 입찰을 진행하거나 단시간내 긴급복구 조건을 내세우는 방식 등으로 사실상 자국산업 보호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해저케이블 국산화 여부는 전력망 안보와도 직결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1997년 프랑스 넥상스가 수주한 육상~제주 1연계선 해저케이블은 고장 발생 후 장기간 복구가 지연돼 제주 계통운영에 차질을 초래했다. 

케이블기업 전문가는 "민간사업자나 EPC사는 당장의 건설비만 생각하지만, 해상풍력 케이블은 외부환경에 의한 고장이 의외로 잦아 신속한 복구가 안될 경우 막대한 발전손실을 볼 수 있다"면서 "산업육성과 고용창출, 안보까지 고려한 정부의 정책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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