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경 경북대학교 전기공학과 부교수 (공학박사)

▲한세경 경북대학교 전기공학과 부교수 (공학박사)
한세경
경북대학교
전기공학과 부교수
(공학박사)

[이투뉴스 칼럼 / 한세경]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필자가 외부 강연이나 기고문에서 진단 서비스로서의 배터리 관리, 즉 BMS-as-a-Service, 줄여서 BaaS를 언급하면 이에 대한 개념부터 상세히 설명해야 했었는데 최근 들어 BaaS라는 용어가 상당히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전기차의 본격적인 보급과 함께 최근 카카오 화재사건까지 여전히 끊이지 않는 배터리 관련 사고가 BaaS의 필요성에 대한 체감을 앞당기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에 본 칼럼에서는 배터리 생애주기 관리의 필요성을 되짚어 보며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선 기존의 전자제품 위주의 소형 배터리는 일단 제품에 탑재되어 사용되기 시작하면 배터리의 실 잔여 수명과는 상관없이 제품 폐기가 곧 배터리 수명 종료로 인식되어 함께 폐기물 취급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이를 여러 공정을 거쳐 블랙파우더로 만들어 원재료 차원에서 리튬과 같은 유가금속을 회수하는 Recycle, 즉 재활용만이 중고 배터리에 주어진 유일한 부활의 기회였다. 하지만 배터리 시스템이 대형화되고, 특히 전기차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제품(차량)의 수명이 더 이상 배터리의 수명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통상 차량의 폐차는 사고 등으로 인해 자동차로서의 기능이 상당부분 저하되는 경우 혹은 단순히 심미적 관점에서 새 제품에 밀려 가치를 상실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실제 배터리 자체의 잔존 수명은 여전히 상당부분 남아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에 따라 비싼 공정을 거쳐 원재료를 재활용하는 것보다 더 작은 시스템 단위, 즉 모듈이나 셀 레벨에서의 성능 평가를 거쳐 새로운 배터리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재사용(Reuse) 시장의 도래가 가시화되고 있다. 전기차 대량 보급이 현실화되고 있는 만큼 배터리 재사용 시장 역시 그 규모가 엄청날 것으로 보고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며 차근차근 대응 준비를 해가고 있다. 

사용 후 배터리 팩이 입고되면 해당 배터리 팩의 상태를 진단하여 재활용을 할지 아니면 재사용을 할지 결정하는 1차 진단이 통상 가장 먼저 이루어진다. 앞서 언급한대로 재활용은 더 이상 배터리로서의 수명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이로부터 니켈, 코발트, 리튬 등의 배터리 핵심원료를 회수하는 작업이다. 만약 1차 진단에서 배터리 시스템 전체 단위의 (고전압 상태) 성능을 평가한 결과 재사용 결정이 나면 셀 단위의 정밀 평가를 수행하여 등급화하는 2차 진단 과정이 추가적으로 요구된다. 현재는 이러한 평가를 위해 완전 충전 후 다시 완전 방전하는 과정을 통해 용량을 직접적으로 측정하는 방식이 가장 신뢰성이 높다고 인식되어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있는데, 이 작업이 대개 하루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아 과도한 시간과 비용에 따른 채산성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렇듯 수거된 중고배터리의 진단을 필자는 현장진단(On-site Diagnosis)이라 부르는데, 만일 배터리가 폐배터리화 되기 전 단계에서부터, 즉 새 제품으로서 구동될 때부터 BaaS를 통해 배터리 상태를 지속적으로 진단하고 관리하는 전기(前期)평가(Pre-evaluation)를 실시한다면, 해당 제품의 안전성 제고와 효율 향상은 물론 훨씬 더 간소하면서도 정확한 현장진단이 이루어져 채산성 높은 배터리의 재활용·재사용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재사용이 결정된 셀이나 모듈은 정밀진단 후 비슷한 등급끼리 다시 재조립되어 새로운 배터리 제품으로 탄생하게 되는데, 이때 BaaS 연계를 통한 후기(後期)관리(Post Management)는 더더욱 필수적이다. 신규 배터리 상태에서도 안전을 담보하기 힘든 만큼, 재사용 배터리의 보다 취약한 안전이나 효율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BaaS가 도입돼야 할 것이다. 

이미 국내 대표적 셀 제조사들 뿐 아니라 전기차 제조사들도 BaaS의 중요성에 대해서 일찍이 인지하고 자체 기술개발 및 플랫폼 구축을 위해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재사용 배터리를 이용한 2차 제품은 통상적으로 중소·중견 기업에서 만드는 소형 ESS나 골프카트 및 캠핑카용 배터리 팩 등과 같이 중소형 배터리 제품이 될 가능성이 커서, 이러한 배터리 팩 제조사들이 BaaS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도입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결국은 별도의 전문 BaaS 서비스 기업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이러한 기업들이 제품 개발 초기단계에서부터 BaaS와 연계하여 제품을 개발하고 시장에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ESS 지원사업이나 전기차 보조금과 같이 BaaS 플랫폼 도입을 위한 정부 지원 정책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유럽은 이미 배터리 여권 제도를 모든 전기차 배터리에 강제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는 단순히 배터리 셀의 이력을 관리하는 수준으로, 이보다는 오히려 BaaS 연동을 통해 배터리 제품이 출시된 시점부터 재사용을 거쳐 최종 수명을 다할 때까지 전기평가-현장진단-후기관리라는 전 생애주기 관리를 실시한다면 더욱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인 배터리 사용이 가능해질 것이다. 특히나 ICT 강국인 우리나라의 장점을 살려 BaaS 기술을 선도할 경우, 유럽의 단순 이력관리 제도인 배터리 여권제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재사용 시장에 다양한 플레이어들을 안착시킬 수 있다. 모든 플랫폼의 속성상 BaaS 역시 시장에 우선적으로 뿌리를 내린 기술이 표준화되어 글로벌 시장을 독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미 수많은 사례를 통해 외국 플랫폼 기업이 우리 시장을 선점하는 것을 목도하여 온 것처럼 또다시 BaaS 시장을 눈 뜨고 내어주는 일이 없도록 정부의 주도적이고 면밀한 지원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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