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림 변호사(법무법인 태림)

▲하정림 변호사(법무법인 태림)
하정림
변호사
(법무법인 태림)

[이투뉴스 칼럼 / 하정림] “변호사님, 이게 의무가 아니라고요?”

에너지 쪽 법률자문을 하면 자주 듣는 반응이다. 실제 법령과 현업 사이의 인식 간극이 명확하다. 우리나라의 특이한 법제 때문이다. 

현행 전기사업법은 2000년대 초반, 전력시장 구조개편을 위해 전면 개정되었다. 전력시장 내에서의 자유로운 전력거래가 주 목적이었다. 제도 적용의 유연성을 위하여 전기사업법에서는 주요 규제 외에는 많은 부분을 하위 시행령이나 전력거래소의 재량범위로 남겨 두었다. 

현장이 위 입법목적과 다르게 흘러가면서 법 적용이 기이하게 변형된다. 규제와 관련된 많은 부분이 고시, 전력시장 운영규칙 등 의회입법(법률)이 아닌 하위 규정이나 전력거래소 지침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혹자는 의회입법인 전기사업법에서 이를 ‘위임’했다고 주장하나, 적어도 국민의 권리 제한 측면에 있어서는 헌법 및 판례상 확고한 포괄위임금지 원칙을 간과한 주장이다. 2000년 초반 당시 개정 법이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위하여 준비해 놓은 규정을, (실제 그러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못했음에도) 견강부회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전력시장 운영규칙을 전력거래소 지침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거나, 전력거래소에게 계통운영에 대한 일정 재량을 준 것은 전력시장 자유화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특정 국민(사업자)의 발전을 구체적인 예측가능성이나 기준 제시도 없이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러한 점 때문에, 에너지 업계에서 실무상 ‘하면 안 된다’고 논의되는 것들은 실제 법정에서 다투는 걸 전제하면, 의미 없는 것들이 많다. 최근의 사례 중 하나가 직접전력거래(PPA)에 대한 용량 제한이다. 최근 시행된 개정 전기사업법 시행규칙이나, 「재생에너지전기공급사업자의 직접전력거래 등에 관한 고시」에서는 전기사업법상 새로이 도입된 재생에너지전기공급사업자의 수많은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상위법인 전기사업법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 당사자간 사적 계약(私的 契約)이어야 할 직접전력거래 계약의 방식과 형식, 최소 공급량 등을 특별한 근거 없이 제한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인다.

법률의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거나, “부령으로 정한다”는 표현이 대통령령(부령에서 이와 관련된 모든 걸 규정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소위 위임명령(대통령령, 부령 등)은 법률이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한 부분에 대하여만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의 결단이다. ‘전기공급에 필요한 사항을 부령으로 정한다’고 했을 때, 이는 기본적으로 그 절차에 대한 기술적인 위임조항이라고 보아야지, 국회 승인을 받지도 않은 사항에 대하여 근거 없이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국민에게 의무 부과 등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내용이라면 상위법에서 개략적으로라도 범위를 정하여 위임해야 하고, 하위 위임명령은 위임받은 범위에서만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원칙이다. 에너지 업계의 관련 입법에서 이러한 점이 지켜지지 않은 채 하위 규정에서 실질적인 권리 제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다소 우려스럽다. 상위입법의 위임범위를 일탈한 규정에 의거한 처분이 법정에서 다투어진다면 법원에서 해당 규정(위임명령)의 위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고려하여 위임명령 입안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인다. 

최근 제주 지역 출력제한과 LNG 발전소 신규진입 등으로 논란이 많다. 이러한 문제 또한 기본적으로 위 입법체계 및 원칙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격변하는 에너지 시장 변화에 맞추어, 상위법률에 존재하지도 않으면서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여러 ‘실무적’ 규제의 강제력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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