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독성 화학가스‧폭발 동반한 특수재난
안전규제 손보고 국민에게 위험 알려야

▲김흥환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소방위
▲김흥환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소방위

[이투뉴스/김흥환] 지난달 5일 경북 영주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차량이 전소되고 운전자가 사망했다. 같은 달 8일에는 전남 담양 한 태양광발전소 ESS에서 국내 누적 38번째 관련 화재가 발생했다. 공통점이 있다. 소방관들이 출동했지만 화재를 멈출 수 없었고, 모두 리튬이온배터리(이차전지)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기차나 ESS 운용에 있어 정부 차원의 대국민 안전 캠페인이나 화재 시 행동요령에 대한 어떠한 홍보나 안내도 없다. 누구도 대책을 말하지 않고, 누구도 제대로 문제점을 파고들지 않고 있다.

많은 이들이 화재에 대한 대응법부터 떠올리겠지만, 이차전지와 관련된 진실은 간단치 않다.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진화가 매우 어렵다. 안전은 본래 사고로 발생 가능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기업과 기관들은 이를 망각한 것으로 보인다. 특수재난(HazMat)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현 상황에 대한 실태와 해법을 풀어보고자 한다.

리튬이온배터리는 ‘본질적으로(inherently)’ 위험
ESS나 전기차, 스마트폰, 드론 등은 주로 리튬배터리, 즉 이차전지를 사용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차전지는 안전하지 않다. 태생적으로 화재 시 인화나 폭발 가능성이 높다. 배터리 제조사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위험하니 사용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소방관으로 예방 점검을 나가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우리 사업장은 화재 안나요’이다. 하지만 소방관의 관점은 화재가 발생한 다음의 상황과 가장 효과적인 대응이다. 리튬이온배터리의 효용과 장점은 누구나 잘 안다. 적절히 운용하고 관리하면 화재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일상에서 의도치 않게 종종 이들장치가 가혹한 온도, 충·방전 형태, 배터리 노화, 외부충격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열폭주(Thermal Runaway)가 일어나면 통제영역을 벗어난다. 

이차전지 제조사인 대기업 A사의 사례를 보자. 이들 기업은 여러 이유로 수만 개에 달하는 배터리를 한 물류창고에 보관하곤 한다. 한번은 이곳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물류창고 직원들이 초기 진화에 나서도록 돼 있는 지침이 적절한지 문의를 받은 적이 있다. 답은 ‘아니요’다. 일단 열폭주가 발생하면 멈추는 방법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배터리를 제조하는 기업 내에서도 서로 다른 사업장에 정보전달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정부 주무부처도 마찬가지다. 어디에도 리튬이온배터리에서 열폭주가 발생한 경우, 정확히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세부 규정이나 지침이 없다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대형복합재난에 취약한 우리 재난체계의 단면
이와 관련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참조사례가 있다. 2019년 APS사가 운영하는 미국 애리조나주 한 ESS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초기 감지 및 신고로 1분 만에 소화약제가 정상 작동하고,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른 특수재난 전문자격을 갖춘 소방관들이 출동해 2시간 넘도록 진입 없이 면밀하게 상황을 살폈다. 하지만 문을 개방한 지 2분 뒤 폭발이 발생해 소방관 8명과 경찰관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특히 한 소방관은 폭발 충격으로 문짝과 함께 약 23m를 날아갔다. 해당 사업장은 국내기업이 만든 배터리를 채택했다. 리튬이온배터리의 위험성에 관해 어떤 자료나 대응지침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서구권의 비판이 나왔다. 그즈음 국내에서도 잇따른 ESS·전기차 화재가 발생해 배터리 리콜과 교체조치가 이뤄졌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나 제조사들은 애리조나주 사례를 정말 몰랐을까? 유사 사고 시 소방관이 크게 다칠 수 있으므로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면 너무 큰 기대일까. 그저 사고현장에 투입되는 소방관과 소방청의 일로 치부한다. 소관 국회 상임위와 주무부처가 다르다는 이유로 예산지원도 없이 그 위험을 오롯이 현장 대원들이 짊어지고 있다. 소방관들이 견뎌내지 못한 무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국민들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

반면 서구권은 사고를 계기로 ESS 화재를 단순 화재가 아닌 화학·생물·방사능·폭발물·대량살상무기와 같은 ‘특수재난사고(HazMat Incident)’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 등 아시아권(싱가포르 제외)은 화학, 생물학, 원자력·방사능 사고 등만 분류하고 ESS·전기차 화재는 단순 화재로 본다. 화재 시 다량의 독성물질이 생성되고 폭발 위험이 큰데다 기존방식으로 진화가 어렵다는 점은 무시된다. 대형복합재난에 취약한 우리 재난체계의 취약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2019년 4월 19일 미국 애리조나주 APS사 변전소 ESS에서 발생한 화재 폭발사고로 강철 문짝이 뜯겨져 나갔다.
▲2019년 4월 19일 미국 애리조나주 APS사 변전소 ESS에서 발생한 화재 폭발사고로 소방관 8명과 경찰관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미국 뉴욕소방본부는 현재 본부 내 전동킥보드 운용을 금지하고 있다. 특히 전동킥보드를 다수 보관하거나 주차해놓는 장소에 대해 화재·폭발 대응규제를 강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를 기점으로 전동킥보드나 전기자전거 보급량은 4000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이 다량의 리튬이온배터리를 사용하는 전기차나 ESS화재 관련 규제가 없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ESS나 전기차 수준의 대용량 배터리에서는 기존 화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유독성 및 폭발성 화학가스가 발생한다. 네이처 연구논문에 따르면, 리튬이온배터리 전해액의 상당량은 육불화인산리튬(LiPF6)이다. 공기 중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약 80℃가량의 열만 주어지면 한 모금만 마셔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불화수소(HF, Hydrofluoric Acid)를 다량 발생시킨다. 불산은 반응성이 가장 높은 물질이다. 배터리 화재 시 물로 소화되지 않는 엄청난 발열연소반응이 일어나게 하는 주요인 중 하나다. 불산 발생 때 물을 가하면, 처음 몇 분은 반응이 지연되지만 결과적으로 더 강한 반응과 열을 초래한다.

미국 APS ESS 화재에 대한 또 다른 연구결과를 보면, 리튬이온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불화수소에 더해 배터리 전해액으로부터의 증기(Vapor)와 분해반응에 의한 생성물 등 다수의 독성의 기체가 발생한다. 그래서 서구권은 배터리가 열폭주 이전에 오프가스(Off-Gas)로 불리는 입자 크기가 작은 화학물질을 먼저 배출한다는 것을 밝혀내 감지센서로 해당 셀이나 모듈을 다른 배터리들과 조기에 분리시키는 쪽으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리튬이온배터리는 열폭주 시 가스만 발생한 경우 폭발 위험이 매우 크고 화재일 경우 내부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진화가 어렵다. 그래서 전기차는 수조 등에 담그는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일단 열폭주 전에 피해경감 조치를 해야 하고, 이후는 소방관들이 현장에 있다해도 추가 화재확산 방지와 신속한 배기와 추가 폭발 방지에 집중해야 한다. 대응에 있어 제한사항이 너무 많고, 열폭주가 점차 인접 배터리 셀로 퍼져나가면 결국 모든 배터리 전소까지 대응이 어려워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고다. 특히 폭발은 어떠한 보호장비를 착용해도 사망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소방관 안전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따라서 배터리가 대량 설치된 시설의 경우 화재로 인한 연기를 배기하는 수준을 넘어 별도의 폭발 배연(Deflagration Ventilation) 설비가 필요하다. 이는 NFPA 855, 리튬이온배터리 안전표준코드에서도 명시해 NFPA 68 및 69를 따르도록 한 사항으로 우리나라도 관련 규정 도입이 시급해 보인다.

▲리튬이온배터리 열폭주 전부터 이후까지 발생하는 여러 유독성·폭발성 기체들. (출처_Early detection of failing automotive batteries using gas sensors”, Christiane Essl, https://doi.org/10.3390/batteries7020025)
▲리튬이온배터리 열폭주 전부터 이후까지 발생하는 여러 유독성·폭발성 기체들. (출처_Early detection of failing automotive batteries using gas sensors”, Christiane Essl, https://doi.org/10.3390/batteries7020025)

안전부터 챙기는 것이 진정한 배터리 강국
국민 대응요령 안내도 절실하다. 리튬이온배터리 관련 화재는 직접 불을 끄거나 접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전동킥보드나 전기자 화재 시 여전히 인접 시민들이 불을 끄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칫 독성물질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고 현장에서 크고 작은 폭발이 계속 발생하므로 매우 위험하다. 지하주차장 등 밀폐된 공간에서의 화재는 연기를 흡입하는 것만으로 치명상을 입어 사망할 수 있고, 수백가지 유독성 화학물질 발생으로 필터(정화통) 방식의 개인보호장비로는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무자들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약 5분 이내 골든타임이 아니라면 어떤 조치도 하지 않도록 정부차원의 명확한 내부지침 설정이 필요하다.

뉴욕소방은 이미 2019년 전후로 대용량 리튬이온배터리를 탑재한 ESS 등에 대한 대응규제로 청정소화약제와 더불어 수계소화설비를 동시에 설치하도록 했다. 또 폭발 배연(근거 NFPA 68) 설비를 의무화 했고, 특히 소방관들에 대한 관련 교육을 대폭 강화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안전 예방법규 개정이 없어 갑갑한 상황이다. 관련부처는 물론 국회차원의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업들 역시 각국 법 상황에 맞춰 안전 기준을 따로 떼 생각하기보다 전 세계적인 합당한 표준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미비한 국내법 기준에 맞추기보다 리튬이온배터리에 내재된 위험성과 사고 시 상황에 합당한 안전예방설비를 갖추도록 먼저 세부 개정안을 제안하는 등 국민 안전을 먼저 챙겨야 한다.

리튬이온배터리 화재는 1000℃가 넘는 초고온 화재와 유독성 기체 화학물질을 동반한다. 그런데 우리 국민과 세계인들은 배터리 강국이라는 한국이 만든 배터리를 아주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용도로 쓰고 있다. 안전하게 사용하면 된다는 말보다 확실하게 비상상황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진정한 산업발전을 위한 길이다. 더 늦기 전에 국민들에게 위험요소와 확실한 대응지침을 알려야 한다.

김흥환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소방위 (특수재난전문가) squallkim@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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