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 민간LNG산업협회 산업진흥실장

천연가스 시장 내 경쟁체계 도입 위한 제도적 지원 필요

배관망 중립성 기반으로 한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돼야
망·판매 부문 분리 필수…시장 관리·감독기구 설립 시급 

▲에너지안보 차원에서 천연가스 시장에 경쟁체계가 도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사진은 포스코에너지 광양 LNG터미널 전경.
▲에너지안보 차원에서 천연가스 시장에 경쟁체계가 도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사진은 포스코에너지 광양 LNG터미널 전경.

[이투뉴스] 우리나라 가스산업은 지난 40여년 동안 정부와 공기업의 주도로 안정적 공급능력 확충과 배관망, 터미널 등 인프라 구축에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엔트로피의 법칙’‘노동의 종말’,‘수소경제’ 등의 저자인 제레미 리프킨이 국회토론회 기조연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는 여전히 전통적인 에너지 체제에 묶여 있다. 

현행 제도나 법안의 내용은 과거 공기업 중심의 산업발전과 함께 시작된 것이기에 많은 부분이 개정됐다 하더라도 최근에 변화하는 국내외 여건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한 시기다. 국제 천연가스 시장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공급 불안정성이 더욱 심화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천연가스 산업의 에너지안보 강화 방안과 개선과제를 알아본다. 

□ 수급채널 다변화 및 공급망 확보를 통한 에너지안보 강화
러-우 전쟁으로 글로벌 천연가스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가하며, 국내 천연가스 소비량의 99%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안정적인 공급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국내 천연가스 수입은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와 더불어 자가소비용직수입자가 판매는 불가하지만 자기소비용도로만 사용가능한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다. 자가소비용직수입자는 2005년 포스코, SK E&S 2개사를 시작으로 2022년 현재 GS파워, GS EPS, SK하이닉스 등과 발전자회사인 중부발전까지 17개 회사가 자가소비용 LNG를 직수입하고 있다. 직수입자의 국내 천연가스 수입량과 비중은 2006년 109만톤 4.3%에서 2021년 약 900만여톤 약 20%까지 증가했다. <그래프1 참조>

자가소비용직수입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시장에 진출한 플레이어들이 다양한 수입채널을 통해 국내에 천연가스를 들여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국가적인 위기 시에도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이 다양해지는 셈이다. 공기업 입장에서도 국내외 시황 변동에 홀로 대처하는 것보다는 국내의 기업들과 협력체계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실제로 자가소비용직수입자들은 공기업이 우리나라 천연가스 공급을 위한 의무비축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선제적으로 확보한 물량을 공기업에 대여하며, 국가의 의무비축량 유지에 기여했다. 
                        

에너지안보를 근본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로 들여올 수 있는 천연가스 물량의 확보가 중요한데 민간에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천연가스 업스트림(탐사·개발)분야의 과감한 투자로 물량을 확보해가고 있다.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천연가스 공급물량 중 장기계약으로 묶여있지 않고, 유연하게 공급이 가능한 물량의 확보가 특히 중요하다. 2021년 러-우 전쟁 이전에 러시아가 유럽으로의 PNG를 차단한 적이 있었는데 소위 포트폴리오 플레이어(portfolio player)로 분류되는 사업자들이 가지고 있는 유연하게 공급 가능한 물량을 통해 유럽에 긴급하게 LNG를 공급하는 핵심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포트폴리오 플레이어는 여러 산지의 LNG를 확보하고, 자신들의 운송, 저장 및 기화 수단을 보유해 이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비즈니스 전략과 모델을 가진 회사를 말한다. <그림1 참조>

기존 천연가스 계약은 공급자-구매자가 명확해 수출-수입물량이 일치했으나 이제는 포트폴리오 플레이어의 증가로 offtake 계약, 즉 구매자가 확정되지 않은 수출계약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offtake 계약이 증가한다는 것은 곧 천연가스 시장에서 유연한 공급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추세임을 의미한다. 국내 기업들도 이런 시장의 트렌드에 발맞춰 다양한 LNG 공급 원천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포트폴리오 플레이어로서 트레이딩 사업 내에서 메이저 에너지기업들과 경쟁하며 산업 역량을 키워가고 있다. <그래프2 참조>

국내 천연가스 시장의 독점구조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공기업만이 유일하게 판매권을 가지는 국내 시장에서 해외 트레이딩 사업을 도구삼아 국내 기업들이 우회적으로 국내 판매를 진행해 독점구조를 교란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그런 의견만으로 트레이딩 사업 자체를 부정하기에는 트레이딩 사업이 가지는 부가가치 창출 효과, 세계 천연가스 산업 내 비중, 자원안보 강화에 활용할 수 있는 가치의 중요도가 워낙 커 정부 차원에서도 재정적·제도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 해외 주요국은 수송·판매부문 분리, 중립기구가 시장 감독
민간의 천연가스 사업자들이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국내 천연가스 인프라와 관련 제도는 아직 개선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현재 민간의 천연가스 수입자인 자가소비용직수입자들은 기존에 정부와 공기업의 주도로 구축한 천연가스 배관망을 사용하고, 배관망 이용료를 공기업에 지불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직수입자들도 차별 없이 배관망에 접속하고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나 국내에서 유일하게 천연가스 도매·판매를 할 수 있는 공기업이 주배관망을 관리·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가소비용직수입자 증가는 공기업의 도매·판매를 감소시키게 된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상충되다보니 사실상 공정한 배관망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은 이런 상황을 예방하고자 가스의 수송부문과 판매부문의 사업자를 분리해 배관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이해관계와 연관성이 없는 중립적인 기구에서 시장을 감독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배관망의 중립적인 운영 토대 위에서 천연가스 판매부문도 경쟁을 도입해 국가적으로 값싼 천연가스 확보를 위한 경쟁 환경을 성공적으로 조성해놓고 있다. <표1 참조>

국내의 여타 공공망(Network) 분야와 비교해도 유일하게 가스분야에서만 판매사업자와 망사업자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동일한 공기업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관리·감독 기구 또한 부재하다. 철도의 경우 국가철도공단에서 철도망을 관리하고, 한국철도공사(KTX), SRT 등에서 판매를 하고 있으며, 전력의 경우 한국전력공사에서 전력망을 관리하고, 발전자회사와 민간자회사에서 전력을 판매한다. 통신의 경우는 SK브로드밴드, KT, LG데이콤 등 다수의 망 사업자가 있고, 무수히 많은 콘텐츠 제공 판매 사업자들이 존재한다. 시장의 관리·감독기구로는 철도, 전력, 통신 분야에서 각각 철도산업위원회, 전기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가 시장을 관리·감독하는 기구로서 활동하고 있다. 국내 가스분야에서도 해외 주요국이나 국내 다른 공공망 분야와 같이 망 사용에 있어서 공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망 부문과 판매 부문의 분리가 필수적이고, 천연가스 시장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기구(위원회) 설립이 시급하다.  

□ 국내 천연가스 산업 발전을 위한 제언
국내 천연가스 산업이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배관망에 대한 중립성이 확보돼야 한다. 앞서 제시한 사례와 같이 중립적인 망 사업자를 지정해 배관망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권 보장을 기반으로 천연가스 시장의 공정한 경쟁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중립감독기구가 설치돼야 한다. 가스산업의 경쟁 왜곡과 불공정 경쟁을 방지하고, 배관망을 이용하는 여러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조정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심의·의결기구 설립이 시급하다. 

마지막으로 공정경쟁 환경을 토대로 천연가스 시장에 경쟁을 도입해 국민 편익 증진과 LNG신산업 투자 활성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천연가스 시장 선진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가스도매사업 부문에 경쟁도입이 이뤄졌을 때 현재의 산업구조를 유지할 경우와 비교해 GDP는 2025년 7조4000억원, 2030년 17조1000억원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산업구조를 유지할 경우와 비교해 가스의 소비자 가격은 2025년 6.52%, 2030년에 9.36% 인하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가스산업은 정부 주도의 인프라 구축에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으며, 그 성과 위에서 울산, 광양, 보령 등 터미널 건설을 위해 수조원대의 천문학적인 투자를 진행하는 등 민간의 투자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인프라 구축에 있어서 공공의 부담이 완화될 수 있도록 민간에서의 투자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만큼 민간의 경영활동을 촉진시키고, 민간시설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망 중립성을 기반으로 한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천연가스 시장 내 경쟁이 도입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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