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강 대한석탄공사 노조위원장을 만나다
"폐광, 정치‧자본적 논리에 휘말려선 안돼"

[이투뉴스] 석탄산업이 막다른 길을 향해가고 있다. 대한석탄공사 노동조합은 지난해 3월 노사정협의체 회의에서 남은 3개 탄광의 단계적 조기폐광에 잠정합의했다. 올해말 전남 화순광업소를 시작으로 내년 태백 장성광업소, 2025년 삼척 도계광업소가 차례로 문을 닫는다. 

2021년 국정감사가 도화선이 됐다. 당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퇴직한 광원들에게 지급되는 감산지원금을 문제로 삼았다. 이에 정부가 감산지원금 삭감안을 제시했고, 광원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가뜩이나 인력 충원이 없어 극심한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는데 남은 희망마저 앗아가려 한다는 목소리다. 그들은 이럴 바엔 문을 닫자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난이도가 높다는 입갱투쟁(갱도 안에서 쟁위)도 예고했다.

그러다 정부가 광원과 광업소 직원들에게 기존 폐광대책비 외에 일종의 명예퇴직금인 조기폐광위로금(특별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노조가 최종안을 수용했고, 그 결과 석탄공사 산하 3개 광산이 차례로 폐광하게 됐다. 하지만 세부방안은 아직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폐광 방법, 위로금 규모, 부지 처리방안 등 논의해야 할 사안이 산더미다. 지난달 23일 태백시에서 최인강 석탄공사 노조위원장을 만났다. 장성 노조지부 건물 옆에 우뚝 솟은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만이 쓸쓸하게 기자를 반겼다.

▲최인강 석탄공사 노조위원장은 태백시가 폐광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인강 석탄공사 노조위원장은 태백시가 폐광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0명에서 하던 일을 3명에서 하고 있다. 이젠 진짜 한계다." 최인강 노조위원장의 첫마디다. '막장'으로 몰린 광원들의 현 상황을 표현한 말이다. 폐광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2020년 초 광원들 사이에서 처음 나왔다. 육체적으로 버티기 힘드니 이제는 그만하자는 씁쓸한 하소연이다. 당시 장성광업소에서 내부투표를 진행한 결과 문을 닫자는 의견이 94%에 달했다. 그렇게 3년여를 더 끌고 왔다. 

가장 본질적 문제는 인력 충원이 없다는 것이다. 석탄산업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노동강도가 점차 강해지는 구조다. 탄을 캐기 위해는 어제보다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심부화가 진행되면서 일은 더욱 힘들어지는데 인력은 줄었다. 이는 안전문제와도 직결된다.

최 위원장은 "박근혜정부가 석탄공사를 기능조정 관리대상 공기업으로 지정하면서 새로운 광원을 들이는 것이 힘이 든다"면서 "거기에 정부의 감산정책으로 인력 구조조정까지 이어지니 남은 광원들이 너무 힘들다"고 설명했다. 

광원들의 고령화 문제도 떠올랐다. 탄광은 젊은 사람이 와도 견기기 힘든 곳이다. 위원장 나이가 52세인데 여기서는 젊은 축이다. "물도 흘러야 썩지 않는 법인데 여긴 어쩌겠나. 다 같이 늙어만 가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 폐광을 광원 입장에서 바라봐 줄 것을 당부했다. 막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정작 현장근로자들인데 애먼 곳곳에서 잡음이 나와 자신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실제 태백시는 석탄공사 3개 탄광 중 폐광 반대 목소리가 제일 거센 곳이다. 시에서 석탄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5%나 된다. 반대로 제일 먼저 폐광되는 화순탄광은 지역 생태계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기 때문에 반대 여론이 비교적 적다. 

그는 "나도 태백에서 태어났고, 심지어 아버지도 나와 같은 광부였다. 시가 석탄산업으로 번창해 왔고,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폐광여부는 우리 광원에게 생존이 달린 문제다.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그렇게 폐광이 싫다면 당신 아버지나 형제를 이곳으로 보내라.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가 그동안 폐광 관련 합당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는 것에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시에서 석탄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5% 라면 반대로 말하면 25%가 지금 힘들어하고 있는 뜻"이라면서 "폐광이 싫다면 대책을 가지고 와서 논의를 한다든지 해야 했었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 출구전략을 내놨어도 진즉에 내놨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폐광의 경제적 영향을 자본주의 논리로만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했다. 

"지난해 장성광업소에서 발생한 매몰사고로 내 후배를 보냈다. 이곳은 내 선배와 동료들의 삶의 기로가 결정되는 곳이다. 폐광 얘기를 하는데 지역 이기주의가 나오는 것을 볼 때면 정말 화가 난다."

실제 석탄산업은 단일산업 중에서 가장 많은 산업재해가 발생한 직종이다. 그간 석탄공사에서만 사고로 1600여명이 사망했다. 전체 광산으로 범위를 넓히면 더 많다. 그는 이제는 석탄공사와 태백시, 국회가 서로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태백시가 살아남을 수 있다 했다.

그는 "우리 노조가 정부와 직접 교섭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태백시가 시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힘을 한데 모아야지 가시적인 성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우선 노조는 올해 가장 먼저 문을 닫는 화순광업소에 총력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화순이 뒤따라오는 광업소들의 선례가 될 만큼 시작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한 폐광 관련 태스크포스도 곧 출범한다. 그는 "석탄공사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정년이 다 된 광원들은 건강이라는 중요한 문제가 있고, 젊은 사람들은 생계유지라는 고충이 있다. 본사 직원도 나름대로의 걱정이 있다.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어 놓고 선택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폐광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도 했다. 노조위원장이 아닌 태백에서 자란 지역주민으로의 간곡한 호소다. 최 위원장은 "과거 태백시에 강원랜드가 들어서려 할 때 몇몇의 잘못된 선택으로 성장동력을 놓쳤다. 이번 폐광도 마찬가지다. 정정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이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향후 몇년이 태백시 생존을 위한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병들었다고, 늙었다고 부모를 내팽겨칠 순 없진 않나. 우리 석탄산업은 지난 50년간 국가경제를 위해 피땀 흘렸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달라." 두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를 그는 이렇게 마무리했다.   

▲장성광업소 광원 사택. 40년이 넘은 건물이지만 아직 많은 근로자가 이곳에서 살고 있다.
▲만들어진지 40년이 넘은 장성광업소 사택. 아직도 많은 근로자가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태백=김동훈 기자 hooni@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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