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내년 1분기 전기료만 kWh당 13.1원 인상
인상필요분 4분의 1…2년來 7배 오른 가스료 동결
전문가 "정부가 요금조작, 전력산업 붕괴 가속화"

▲이창양 산업부 장관(왼쪽에서 세번째)이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내년 1분기 전기·가스 요금 조정안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부는 1분기 적용 전기료를 kWh당 13.1원 인상하고 가스요금은 동결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왼쪽에서 세번째)이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내년 1분기 전기·가스 요금 조정안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부는 1분기 적용 전기료를 kWh당 13.1원 인상하고 가스요금은 동결했다.

[이투뉴스] 전 세계적 에너지위기로 한전·가스공사 등 에너지공기업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새해 1분기 전기요금을 인상필요분의 4분의 1만 반영해 올린다. 아울러 2년 새 7배 이상 가격이 뛴 가스요금은 동결하고, 2분기 이후 전기·가스료 조정에 대해서도 “인상 여부 등을 검토할 계획”이란 원론적 입장만 내놨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30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방기선 기획재정부 차관이 배석한 가운데 내년 1분기 전기·가스료 조정안을 발표했다. 단계적 요금 현실화로 2026년까지 한전의 누적적자와 가스공사 미수금을 해소하되 일단 내년 1분기는 전기료만 kWh당 13.1원 인상키로 했다. 이는 산업부가 최근 국회에 보고한 전기료 인상 필요분 51.6원의 25.4%에 해당한다.

전기료 조정은 모든 요금에 대해 기본료 성격인 전력량요금(kWh당)을 11.4원, 기후환경요금을 1.7원 각각 올리는 방식이다. 3분기부터 적용해 온 연료비조정단가도 상한 5원을 그대로 유지한다. 다만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은 전력량요금과 기후환경료를 올해 사용량분만큼까지 동결해 부담을 줄여주고, 농사용도 2025년까지 3년에 걸쳐 매 1분기마다 인상분을 3회에 걸쳐 분할 인상하기로 했다.

전체 전기료 인상률은 9.5%이며, 월평균 307kWh를 사용하는 4인가구 주택의 경우 월 4022원(부가세 및 전력기반기금 제외) 요금이 오른다. 이로 인한 한전의 적자감소 기대액은 약 7조원이다. 올해 4분기 추정 한전 누적적자는 약 30조원이며, 가스공사 미수금도 9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두 공기업은 이미 각각 70조원, 27조원 수준의 회사채를 발행해 적자와 이자를 돌려막고 있는 상태다.

이창양 장관은 브리핑에서 “한전과 가스공사 경영을 정상화하고 에너지공급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등 근본적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전기·가스료 조정이 불가피하다”면서도 “가스료는 동절기 난방비 부담과 전기료 인상 등을 감안해 동결하고, 2분기 이후 전기·가스요금 인상 여부는 국제 에너지가격과 물가 등 국내 경제·공기업 재무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이달말 정부는 국회에 제출한 공기업 경영정상화 방안 보고서에서 2023년 전기료 인상요인을 기준연료비 45.3원, 기후환경요금 1.3원, 연료비 조정단가 5.0원 등 모두 51.6원으로 보고했다. 요금을 전고후저(前高後低) 방식으로 분산 반영하면 사채한도 4배 이내로, 향후 3년간 분기별로 균등 반영하면 연간 14조원 이상의 연간적자와 사채한도 13배 확대가 필요하다고 했었다.

가스공사도 경영정상화를 위해 2023년에만 요금은 MJ(메가줄)당 10.4원, 미수금은 12조3000억원을 회수해야 한다고 보고했으나 이번 1분기 조정안에는 인상분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기재부는 이번 전기료 조정으로 인한 물가상승 요인을 0.15%포인트로 보고 있다. 재정당국의 내년 물가 상승률 전망값은 3.5%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폭탄돌리기’를 다시 시작했다고 성토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내년부터는 정부와 여·야가 2024년 총선 준비체제로 들어가므로 실질적인 에너지요금 정상화 기회는 1분기이며, 이후로 가면 갈수록 현실화가 어려워질 것”이라며 “특히 원가이하 주택용 도시가스료 부담이 한전 도매시장으로 전가돼 쌓이고 있음에도 이번에 동결했다. 흡사 베네수엘라다. 전기·가스료 할인해서 생색내고, 그 폐해에 대해선 책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석 전문위원은 “내년 에너지공급상황은 올해보다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정부와 정치권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틀어쥐고 있다. 정부가 할 일은 그런 요금조작이 아니라 심각한 에너지위기가 왔을 때 재정을 통해 확보한 에너지재난지원금 등으로 소비자들의 충격을 완화해 주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전력시장 건전성만 훼손하고 수습 불가능한 국면을 맞게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출혈상태인데 지혈을 충분히 하지 않고 두겠다는 것”이라고 빗대 비판했다. 김 교수는 "올해만큼은 아니지만 내년말까지 계속 더 적자를 쌓겠다는 뜻"이라며 "이후 적자는 어떻게 메울 것인지는 거론하지 않고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제 전기·가스도 석유처럼 가격은 움직이고 사용자부담을 다른형태로 낮추는 방식이 돼야한다"고 말했다.

요금정상화 지연이 전력산업의 붕괴를 가속화 할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박진표 법무법인태평양 변호사는 "에너지위기는 가격정상화를 통한 소비절약이 정공법인데, 그런 시그널은 주지 않으면서 근본적 대책없이 정상화만 미루면 자본시장까지 교란해 결국 국가신용도 위태해 질 수 있다"면서 "이런 상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전력산업 생태계 재구축 방안에 대해 당장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박 변호사는 "올해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기시다 일본 총리는 국민들에게 에너지위기를 알리고 에너지소비절약을 강조했는데, 우리 정부 고위 관료들은 글로벌 에너지위기 발발 이후 지금까지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책임감이 부족하고 대응은 안일하다"고 꼬집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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