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효재 COR Energy Insight 페이스북 지식그룹 대표

▲권효재 COR Energy Insight 페이스북 지식그룹 대표
권효재
COR Energy Insight
페이스북 지식그룹 대표

[이투뉴스 칼럼 / 권효재] 작년 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를 강타한 에너지 위기는 올 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새해 들어 국제유가와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하향 안정세를 보여 당장 고비는 넘겼지만,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작년 말 북극 한파가 북미 대륙에 쏟아지면서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에 겨울 폭풍이 몰아치고, 5대호 내륙 지역은 영하 40도까지 떨어져 에너지 수요가 급증했었다. 북미는 에너지 자급자족이 가능한 곳이라 세계 시장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북극 한파가 에너지 공급량이 부족한 서유럽이나 인구 밀집지역인 동북아로 온다면 언제라도 에너지 위기는 다시 올 수 있다. 이런 위태로운 현실에서 통념과 한계를 넘어 근본적으로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석유가 나지 않고, 인구 대비 국토면적이 좁아 재생에너지에도 크게 기대할 것이 없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신뢰할 만한 에너지 공급원으로 원전을 빼 놓을 수 없다. 하지만 천지, 대진 원전 등 과거 추진된 원전들이 설령 내일 당장 가동된다고 해도 에너지 수요가 집중된 수도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발전소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야 하는데, 동해안-수도권 송전망은 기존 원전들과 민간 석탄발전소들도 감당할 수 없는 실정이다. 동해안 신규 원전과 수도권을 연결하려면 백두대간 위로 개별 크기가 대형 풍력발전기만한 송전탑 수백개를 건설해야 하는데 10년 이상 소요되고, 건설 중인 기존 송전망들도 민원으로 건설이 지지부진하므로 신규 송전망 건설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설령 대규모 신규 송전망이 있다고 해도, 원전에서 바다로 버리는 막대한 폐열은 탄소중립 시대에 너무 아까운 열 자원이다. 원전 폐열을 활용하면 청정수소를 싸게 대량 생산할 수 있지만, 그렇게 만든 청정수소 역시 별도의 수소 인프라를 필요로 한다. 동해안 원전단지가 최선일까?

총 18개의 원전단지에 소재한 56기의 원자로로 소비 전력량의 70%를 감당하는 프랑스의 경우, 해안가 원전단지는 4곳에 불과하며 원전은 전국에 고루 위치해 있다. 수도 파리의 식수원인 센강 상류에 소재한 원전에 대해서도 파리 시민들은 별 불만이 없다. 프랑스 노후 원전보다 국내 신규 원전에 더 앞선 기술과 안전 규정을 적용할 것이므로 우리나라도 원전을 동해안에 건설해야 한다는 통념을 넘어 수도권에 속히 건설할 필요가 있다. 만약 수도권에 1.4GW 한국형 원전 6기로 구성된 8.4GW 규모의 원전단지 두 곳을 10년내 완성하여 16.8 GW의 청정 발전원을 확보한다면 에너지 안보 강화, 전기요금 인상 억제, 송전망 건설 갈등, 청정수소 공급 등 많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원전의 폐열을 활용하여 2500만 수도권 가정과 상업 시설에 무탄소 열을 공급할 수 있고, 폐열을 활용하여 청정수소를 대량으로 화공단지와 제철소에 공급한다면 2050 넷제로 달성에도 기여할 것이다. 또한 국내 반도체 클러스터들에 차세대 핵심장비인 EUV를 대거 설치되면, 전력 소비량이 증가하여 약 8GW 규모의 추가 전력이 필요한데, 이를 가장 저렴하고 탄소배출이 적은 방식으로 해결하는 솔루션이 될 것이다. 신규 원전의 발전원가는 2022년말 기준 SMP의 3분의 1 이하라고 하니 미래 전기요금 인상 억제에도 좋고, 원전의 수명 또한 60~100년이라고 하니 향후 두 세대에 걸쳐 수도권 에너지 문제 해결에 이만한 대안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후보지로는 어디가 좋으며, 안전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혹자는 인구밀집 지역인 수도권에 대규모 원전단지를 건설하자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10기의 원전이 모여 있는 고리 원전단지가 부산과 울산 중심지에서 각각 20km 떨어져 있고, 국가산단과 신도시 대규모 아파트 단지까지는 각각 10km 떨어져 있음을 감안하면, 수도권 대규모 원전단지가 안전상 위험하다고 불안할 필요가 있을까? 기존 화력발전소와 송전망이 위치한 서해안 지역에 건설해도 될 것이며, 반도체 클러스터 인근 남한강 변에 원전단지를 건설해도 될 것이다. 한 단지에 6기의 원전을 집중 건설한다면 공기 단축, 원가 절감, 주민 설득 등도 집중해서 진행할 수 있으니 대규모 단지 건설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 방안일 수 있다. 수심이 얕은 서해안과 한강에 대규모 온배수가 유입될 경우 생태계를 교란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열공급 수단으로 폐열을 활용하거나 수소 생산으로 전용하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열병합 원전단지라면 서울의 한강 하류 지역도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전쟁이나 테러 위험 역시 최근 원전의 안전기준은 대형 항공기의 직접 충돌이나 외부 미사일, 포격 공격에도 원자로의 안전은 절대적으로 보장된다 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며, 장거리 미사일 기술이 발달한 21세기에 수도권과 동해안이 피격 위험에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세계 최고의 K-원전 기술력이라면 10억년에 한 번 정도 사고 발생을 예측할 수 있는, 극히 안전한 원전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속히 기존 원전 관련 법령을 검토하고 개정해야 할 것이다. 토지수용, 주민보상, 송전망 접속 비용은 정부가 부담하고, 복잡한 인허가 과정을 합리적으로 개정해야 한다. 사용후 연료에 대해서는 심층 영구 폐기장이 필요하나, 해외사례의 경우 입지 선정에서 준공까지 30년 이상이 소요된 점을 고려하여 수도권 원전단지 소내 저장과 부지 인근 맥스터 활용을 전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보관방식으로도 지난 40년간 사용후 연료의 영구 처리 없이도 해안가 원전을 잘 이용해 왔으므로, 원전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주민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가 전세계 원전시장 석권을 천명하고, 많은 언론에서도 K-원전에 대해 기대를 크게 하고 있으므로 행정력, 정치력, 언론의 힘을 모아 집중한다면 충분히 연내 부지 확정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없다. 언제 이상기후가 한반도와 전 세계에 충격을 주고, 에너지 위기로 인해 가스와 전기요금이 몇 배로 오를지 모른다. 하루 속히 정부와 언론은 국민 대토론회 등으로 공론화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값싸고 안정적인 전기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는, 한국의 에너지 전환과 넷제로 달성의 키를 쥐고 있는 서울과 수도권 2500만 시민들의 용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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