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휴지 한 칸만 쓰라던 시절이 있었다. 치약도 넉넉히 묻히지 못했다. 빈방에 전등이라도 켜져 있으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변기마다 벽돌 한 장이 꼭 들어갔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는 말이 일상일 정도였다. 모든 것이 부족한 시대, 절약은 곧 생활이었다.

“지금이 어느 땐 데 그런 꼰대 같은 말을 하느냐”고 비야냥 듣기 딱 좋은 말이다. 머리카락이 희끗해 진 사람만 알지 젊은 세대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다지 오래전 일이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눈물 나는 절약정신이 지금의 풍요를 만들었다.

최근 난방비 폭탄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추운 날씨와 급등한 에너지 요금이 맞물리면서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여론이 묘하게 돌아가자 정부 역시 하루가 다르게 취약계층에 대한 난방비 지원대책을 내놓았다. 에너지바우처 한도를 올리고 차상위계층까지 59만원 상당을 지원키로 했다.

꼴사나운 네 탓 공방도 이어지고 있다. 에너지가격 인상을 놓고 전·현 정권 간의 책임론도 어김없이 등장한 것이다. 탈원전 얘기도 빠지면 섭섭하다. 내 잘못이 아니라 이전 정권이 잘못해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높으신 분들이 난방시설 현장점검을 나가 찍은 사진도 곳곳에서 보인다.

사실 올겨울 난방비가 급등하리란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글로벌 에너지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또 이전 정부부터 누적돼 온 인상요인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모두 알고 있었다. 정부 역시 올해 전기와 가스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문제는 후속대책이 없었다는 것이다. 외부요인(러-우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가스가격 급등)에 따른 에너지가격 인상만 외쳤을 뿐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책은 나몰라라 했다. 사전에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지만 다들 내 책임이 아니라는 식으로 피해 나갔다. 일이 터지자 그때서야 부랴부랴 여러 대책을 쏟아냈다.

어려운 이웃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국가와 사회의 책무다. 하지만 잊은 것이 하나 있다. “더이상 한겨울에 보일러 펑펑 때면서 반소매 입고 살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메시지가 빠졌다. 중산층 난방비까지 지원하는 방안을 찾으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발언이다.

소득 상승으로 더욱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는 과정에서 에너지 사용량이 많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이런 때 무조건 절약만 강조해선 안되고, 별로 효과도 없다. 하지만 단순한 씀씀이의 문제가 아닌 기후변화와 환경까지 생각하면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는 여전히 꼭 필요한 정책수단이다. 난방비 폭탄을 부르짖으려거든 가격정책을 포함해 에너지를 더 적게, 또 효율적으로 쓰는 방안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장작과 짚을 때던 100년 전에도, 수도꼭지만 틀면 뜨거운 물이 나오는 현재도 여전히 기름 한 방울 안나는 나라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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