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경 경북대학교 전기공학과 부교수 (공학박사)

▲한세경 경북대학교 전기공학과 부교수 (공학박사)
한세경
경북대학교
전기공학과 부교수
(공학박사)

- 배터리 산업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

[이투뉴스 칼럼 / 한세경] 바야흐로 전기차의 시대이다. 이미 국내만 등록대수가 40만대에 육박하고 있으며 판매 대수는 매년 지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비단 전기차 뿐 아니라 개인용 이동장치나 드론, 그리고 UAM같은 모든 종류의 이동 수단이 전동화되고 있으며 심지어 굴삭기나 잠수함, 선박에도 추진동력원으로서 배터리 적용이 급속하게 현실화되고 있다.
그런데, 불과 얼마 전에도 건조 중의 선박에서 배터리 화재사고가 일어났고, 아직 대중적으로 회자되지는 않고 있지만, 킥보드 같은 전동장치는 아직도 매년 100여 건이 넘는 화재사고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리튬 배터리를 사용하기 시작한 지가 수십 년이 훌쩍 지났는데 왜 유달리 최근에야 이러한 사고를 많이 접하는 것일까. 필자가 바라보는 가장 주된 원인은 배터리를 주요 동력원으로 사용하면서 시작된 시스템의 대형화이다. 즉, 종래의 소형 전자제품과 달리 수백~수천에 이르는 대규모 셀이 단일 시스템을 구성하는 형태로 바뀌면서 개별 셀 단위 관리가 어려워진 탓에 발생하는 문제인 것이다. 결국 사고가 발생하는 건 단 하나의 셀인데 시중의 진단 솔루션들이 시스템 전체 단위의 성능이나 수명을 진단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고 개별 셀 단위의 진단기술은 아직 보편화되어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보니, 대형화된 시스템의 화재위험에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여러 지자체에 구축된 폐배터리 평가센터에서조차도 중고 배터리의 성능진단을 위해 직접 배터리 팩을 완전 충전, 방전하며 평균 용량을 계측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수백 명이 한 그룹을 이룬 줄다리기팀의 평균 힘을 측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문제는 이 중 한명이 부상을 당하거나, 건강의 위험에 노출되더라도, 평균적인 팀 힘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아 인지가 어렵고, 이를 무시한채 경기를 이어갈 경우 취약한 한명에게 치명적인 스트레스를 가하게 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팀의 힘에 대한 평가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인지의 문제를 배터리시스템의 관점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배터리 셀의 비균질성(Heterogeneity)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 시스템을 구성하는 모든 배터리 셀은 원칙적으로 동일한 상태에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만일 비균질 셀이 발생하면 시스템 성능을 저하시키고 종국에는 발화사고까지 불러올 수 있으므로 통상적으로 배터리관리 시스템, 즉 BMS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셀 밸런싱 회로를 내장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하지만 셀 밸런싱은 셀 간 단순 충전량 편차와 같은 가역적 비균질성(Reversible Heterogeneity, RH)은 해결할 수 있지만 특정 셀의 물리적 손상이나 노화 편차 등으로 발생한 비가역적 비균질성(Irreversible Heterogeneity, IH)에는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가령 특정 셀의 용량이 다른 셀보다 줄어든 경우 셀밸런싱이 특정 충전량 지점에서의 전압편차를 완화시킬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줄다리기 팀의 감독이 팀구성원들을 덩치별로 줄을 세우고, 힘의 크기에 따라 그 순서를 조정할 수 있지만, 질병이 있는 팀원을 경기중에 치료할 수 없는 것과 같다.
 
IH 셀은 종양과 비슷하게 발생 초기에는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줄다리기 예시처럼 건전한 다른 셀과 동일한 운용환경에 놓이다 보니 상대적 가혹조건이 반복되어 IH 증상은 심화되고, 이 정도가 임계점을 넘어설 때 발화사고 같은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단순 충전량 차이만 있는 RH셀과 비슷한 전압 편차 형태로 증상이 나타나다보니 물리적 변형이 생긴 IH 셀을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SOC가 1% 틀어진 셀과 용량이 1% 다른 셀은 충방전 과정에서 아주 유사한 패턴을 보이게 되어 시중의 통상적인 BMS로는 이러한 차이를 인지하지 어려워 문제 상황인 경우에도 이를 진단하지 못하고, 정상적 운용과정에서의 단순 셀밸런싱 대상으로만 바라보게 된다.
IH 셀은 셀 제조단계의 불순물 유입부터 모듈제조단계의 용접, 기구적 압착 등으로 인한 미세한 물성변화 등 제조 과정에서도 발생할 수 있고 배터리 운용과정에서의 셀 별 냉각조건 차이같은 운용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배터리 업계 내에서 IH 셀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는 부분이 셀 제조사의 셀 제조 공정이며, 그 결과 이미 국내 업체는 글로벌 top-tier 수준의 품질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셀 제조공정 이후의 셀에 대한 IH진단에는 시중기술들이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개별 셀 레벨에서는 ACIR이라 불리는 교류 임피던스 측정 방식의 품질 검사를 수행하고 있는데 이 방식은 개별 셀단위에서는 유의미하나, 모듈 제조과정에서 발생하는 용접이나 기구물 압착 등 IH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셀 내부의 미세한 물성 변화는 인지하기가 어렵다. 최근에는 이를 고도화하기 위해 복수의 교류펄스를 이용하는 EIS라는 진단법 도입이 검토되고 있기도 하나, 이 방식 역시 미소한 교류펄스의 특성상 기구물 형상 차이 등에 따른 영향이 커, 모듈 제작 이후의 공정에서 개별 셀 단위 검사에 도입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최근 팩 제조업계에서는 모듈 단위 사이클을 수행하며 개별 셀 데이터를 취득하여 분석하는 data-driven 방식의 진단솔루션을 도입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실제 배터리를 운용하는 단계나 폐배터리 진단 시점에 있어서도 data-driven 방식만이 셀 단위 IH 진단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보니 최근 배터리 업계 전반에 걸쳐 이러한 기술도입이 적극 검토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data-driven 방식 역시 원론적으로 진단이 가능한 방식이라는 것이지 실제로는 낮은 데이터 품질이나 데이터 취득과정에서 촉발될 수 있는 소유권의 이슈 등 여러 기술적, 제도적 난제들이 이의 전향적인 도입과 발전을 막아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CHAT 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인해 세상이 시끌벅적하다. 하지만 CHAT GPT가 기술적 관점에서 새로운 혁신을 만들었다기보다는 데이터 주도권 싸움에서 퍼스트무버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인식이다. 배터리 안전과 관련해서도 이러한 기술적 흐름을 잘 이해하고 역량을 집중하여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할 수 있는 환경적 뒷받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은 제조기술에서만 나온다는 관점에서 한발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배터리 산업에서의 CHAT GPT와 같은 혁신을 우리의 손으로 이루어 보기 위해서라도, 입체적인 관점에서 배터리 산업을 바라보고 이를 다른 방식의 기술과 산업에 과감하게 채택하고 도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잔칫상은 우리가 차려야 배가 덜 아픈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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