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림 변호사(법무법인 태림)

▲하정림 변호사(법무법인 태림)
하정림
변호사
(법무법인 태림)

[이투뉴스 칼럼 / 하정림] 전력시장은 법조인 입장에서 이상한 분야다. 규제가 매우 심하지만, 많은 분야가 사법통제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관련 법은 사실상 죽어 있고, 실제로는 하위 행정규칙들(전력시장운영규칙 등)이나 ‘계획’으로 명명한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대외적으로 국민들을 구속하는 규범력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사실상 행정처분의 성격을 지닌 결정들이 형식으로는 행정규칙에 불과한 전력시장운영규칙에 의거해 이뤄진다. 이를 통해 국회가 명시적으로 위임하지 않는 범위에 대해서도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원래 부령이나 행정규칙으로 국민의 권리의무를 제한하려면 국회가 입법한 ‘법률’에 구체적인 범위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위임입법의 한계 준수). 즉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려면 법률에 명시적 근거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임 받아 하위 규정에서 구체화할 수 있을 뿐, 하위 규정에서 갑작스레 나오면 안 된다는 뜻이다. 국민의 권리 제한은, 국민이 뽑은 사람(국회)을 통해 통제하겠다는 우리나라 헌법과 국민들의 결단이다. 

이러한 원칙이 전력시장에서 유독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표적 문제가 몇 년 전부터 거듭 지적되는 출력제한이었고, 최근에는 SMP 상한제였다. 출력제한의 경우, 개별 국민의 재산권과 영업을 직접적으로 제한하여 위법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갑작스레 전력시장운영규칙 등 하위규정과 고시 개정으로 관련 규정이 생겼다. 아직도 상위법엔 명시적 위임근거가 없다. 최근 일부 법안들의 입법을 통하여 출력제한의 명시적인 근거를 넣자는 주장이 있는데, 보상이나 경과규정 없는 입법은 문제의 소지가 크다. 효율적인 계통운영과 자원 배분을 위하여 출력제어 자체의 제도적 필요성은 있을 수 있고, 공감한다. 그러나 행정주체가 이러한 제한을 하려면 예측가능성을 주었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분산에너지 사업자들은 본인이 얼마나, 어떤 범위에서 권리제한을 받을지 여부를 전혀 알 수 없다. 발전사업자의 경우 최소 수 년에 걸쳐 사업비를 투자하게 되는데, 적어도 돈을 쓰기 전에는 내 재산이 어떤 침해를 받을지 알려 주었어야 한다. 이 부분을 입법 미비(?)로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심지어 지금도 정확한 기준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이제 와서 개인의 재산 침해를 공익을 위해 용인하라는 주장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기본인 우리나라에선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본다. 독일은 유사한 출력제한 사례에서, ① 일반인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을 수준으로 기준과 방법을 고지하고, ② (제한이 있는 경우) 정당한 보상을 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이 보장하는 시장경제의 기본원리에 따를 때에도, 이러한 제한을 하려면 정당한 보상을 하거나, 또는 특정시점을 기준으로 신규사업자에게만 적용하는 등 비소급적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계류 중인 일부 법안들의 출력제한 규정은 이러한 단서가 없어 권리침해 여지가 매우 큰 점 역시 우려스럽다.

SMP 상한제도 마찬가지다. 최근 전기가격이 오르며 ‘100원에 콩(연료비)을 사서, 50원에 두부(전기)를 판다’는 말이 있었다. 어폐가 있다고 본다. 실제로는 콩을 4원에 파는 곳과, 200원에 파는 곳을 모두 섞어서 일괄하여 200원을 지급하는 것이 현재 계통한계가격 결정구조(SMP)이다. 4원에 파는 곳에 "200원"을 주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필자의 문제의식이 보편적 문제제기인지 여부가 궁금하여 주변의 여러 동료 법조인들에게 이 구조를 설명해 보았는데, 다들 왜 이런 구조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반면 SMP 상한제는 ‘콩을 200원에 파는 판매자에도 100원을, 콩을 50원에 파는 판매자에게도 100원을 주겠다’는 제도다. 이는 발전시장과 판매시장을 교묘하게 섞어서 보고 있는 것인데, 발전시장은 누구나 인정하듯 경쟁시장이고, 판매시장은 독점시장이므로, 하나로 섞어서 볼 수는 없다. 국민의 전기료 부담을 낮추려면 싸게 파는 물건을 싸게 사오면 되는데, 싼 콩을 비싼 콩과 같은 가격에 사오면서 국민에게 전기료 인상을 전가한다는 것이 쉬이 납득하긴 어렵다. 이러한 가격결정구조 자체의 개편이 없는 한 일률적인 가격상한이 정당화된다고 어렵다. 국민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싼 전기를 싼 가격에 사고 싶은데, 싸게 사온 전기에도 높은 가격을 지급하겠다고 전기료를 올리겠다는 논리가 이해되지 않는다. 

SMP 상한제와 같이 전력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권리제한적인 조치 자체는 공익을 위해 정당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수단이 목적을 이루는데 적절해야 하고, 그 방법이 아니면 해당 목적을 이룰 수 없고, 공익과 사익을 비교했을 때 공익이 압도적이어야 한다. 현재 전력시장의 여러 제도들이 이러한 요건을 전혀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제한적 조치를 할 때 충분한 경과규정이나 비소급적 조치를 해야 하는데, 시혜적 제도가 아님에도 막연히 소급적으로 적용해 버리는 것 역시 문제라고 보인다. 전기사업법은 2001년 구조개편 중단 이후 여러 외부상황으로 인해 시장 현실과 법령이 다소 일치하지 않는 독특한 법인데, 실질적으로 규제가 필요한 것은 전력시장운영규칙으로 전부 규율되고 있고, 전기사업법은 그 규정들의 포괄적 근원으로만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전기사업법의 낮은 규범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불리한 부분만 선별적으로 활용되는 듯 하여 우려스럽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하여도 사법통제의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과거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해 행정소송이 제기된 바 있으나, 사법통제 대상이 되는 ‘처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된 바 있다(서울행정법원 2020. 1. 10. 선고 2018구합53344 판결). 당시 법원은 전력수급기본계획이 구속력 없는 ‘계획’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전력시장 실무를 조금이라도 아는 업계 관련자들이 듣기에는 당황스러운 이유다. 전기사업법 및 전력시장의 특수 구조 때문에,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실제로는 발전사업기 운용 등에 대한 실질적인 규범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전력시장 당사자라면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논의되는 중 그 내용을 조금이라도 미리 알 수 없을지 발을 동동 굴러본 경험이 상당할 것이다). 

전력시장이 지금까지는 사법심사의 통제 대상에서 벗어나 왔던 것은 분야 자체의 기술적인 어려움과 복잡성에도 기인한다. 판결문을 쓰기에는 쉽지 않은 분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분야의 ‘어려움’에 가려져 실질적인 당사자들의 권리구제를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아무도 살펴보지 않는 곳은 쉽게 망가지기 마련이다. 사법부가 이러한 문제점에 대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통하여 여러 방식의 사법통제 가능성으로 인지하기를, 그리고 이를 통해 전력시장 당사자들에게도 법과 원칙에 맞는 공정한 관행이 자리잡을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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