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류 인버터 전원 증가로 'Weak Grid' 수면 위
韓 실정 맞는 선제적 기준 마련 제도정비 시급

▲직류 재생에너지 발전기들이 점증하면서 전력망의 강건성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지만, 정부가 선제적 조치에 나서지 않고 뒷북 대응을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전남지역 대규모 태양광·풍력단지.
▲직류 재생에너지 발전기들이 점증하면서 전력망의 강건성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지만, 정부가 선제적 조치에 나서지 않고 뒷북 대응을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전남지역 대규모 태양광·풍력단지.

[이투뉴스] 직류(DC) 인버터 기반 전원인 재생에너지 점증으로 전력망의 강건성과 회복탄력성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지만, 정부가 매번 문제가 커진 뒤에야 뒷북 대응에 나서거나 되레 건전성을 떨어뜨리는 HVDC(초고압직류송전) 확충에 목을 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력당국은 봄철 경부하 때 계통안정화 성능을 갖추지 않은 태양광 설비의 대량 계통이탈 사고가 우려되자 1일부터 내달 31일까지 두 달간 1GW 안팎의 태양광 출력제어에 들어간다.

2일 발전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작년말 현재 7.8%인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30년 21.6%, 2036년 30.6% 순으로 제고하기 위해 재생에너 설비를 작년 29.2GW에서 2030년 72.7GW, 2036년 108.3GW 순으로 늘려갈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2036년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대략 LNG의 2배, 원전의 3배, 석탄의 4배가 된다. 작년 전 세계 평균 재생에너지 비중(27%)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고립된 국내 계통 여건과 매년 최소 보급량을 감안할 때 결코 쉬운 목표는 아니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재생에너지가 아니라 이를 수용할 전력망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계통 전문가들에 의하면 태양광‧풍력처럼 인버터를 거쳐 교류망(AC)에 접속하는 전원이 증가하면 계통 신뢰성과 안정성은 물론 불시사고 시 스스로 정상값을 되찾는 회복력이 필연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거대한 쇳덩어리 회전체를 돌려가며 계통 강건성 유지를 돕던 동기발전기들이 감소하면서 작은 외란(外亂)에도 쉽게 흔들리는 약체 전력계통이 된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보다 앞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인 주요국의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는 2017년 산불 때 전압 강하로 1.6GW에 달하는 태양광이 연쇄 탈락했고, 같은 해 미국 텍사스주 팬핸들에서는 11.5GW규모 대형풍력단지에서 전압이 여러차례 요동치는 진동사고가 터졌다. 2021년 스코틀랜드 풍력단지 대규모 출력제한도 동기발전기 관성 부족이 원인이다. 이렇게 재생에너지 증가로 계통의 전압과 주파수가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태를 ‘Weak Grid’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우리 계통도 재생에너지가 몰린 지역에서 이미 전력망 약체 이슈가 수면 위로 부상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직류전원의 계통 내 안정성 지표인 SCR(Short Circuit Ratio, 단락비=단량용량(SCC, Short Circuit Capacity)을 직류전원 설비량으로 나눈 값)이 태양광‧풍력과 같은 인버터 전원 증가로 기준값 아래로 떨어지는 사례가 적잖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 당국은 제주도와 전남지역을 대상으로 관련 검토‧분석에 나서 동기조상기 설치 등 보완 조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영환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직류발전기가 많아지면 직류제어기 사이에 간섭이 발생해 문제가 더 커질 수도 있다”면서 “텍사스전기신뢰도위원회(ERCOT)의 경우 SCR을 인근 접속점 전체로 넓혀 보는 WSCR(Weighted Short Circuit Ratio, 가중단락비) 개념으로 확대해 안정도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현재 건설 중인 HVDC도 직류여서 접속점의 계통 강건성을 떨어뜨리고 그 지역 재생에너지 추가접속을 더 어렵게 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원한 한 당국자는 “중요한 건 한계치를 얼마로 할지, 여유가 얼마나 있는지 파악해 대응하는 것인데, 아직 그런 논의나 기준이 정립돼 있지 않다”면서 “여건이 달라 해외사례를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만의 기준이라든지 보강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실정에 맞는 선제적 기준과 제도정비를 주문하고 있다.

이병준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가장 바람직한 대응은 인적대응이 아니라 제도와 체계를 갖추고 시스템으로 준비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계통에 필요한 관성이나 강건성이 어느 정도인지 기준을 마련하고, 그 기준들이 계통계획이나 운영에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제주도 사례를 보더라도 현장에선 일이 이미 벌어지고 있는데 제도는 항상 뒤따라간다.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면 효과가 큰데 항상 뒷북으로 대응하다보니 이번 LVRT 사태처럼 소급적용으로 혼란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전영환 홍익대 교수는 "앞으로 인버터 전원이 많아지는 시스템을 생각하면, 될 수 있는 한 직류전원 뿐 아니라 HVDC 등의 인버터가 집중적으로 접속되는 것을 피해야 하고, 부하 분산도 유도해야 한다"며 "전력망의 기본체력을 키우기 위해 인버터와 부하를 분산시키고, 필요한 경우 그리드포밍 기술이나 동기조상기를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단기적 해법이 장기적으로 걸림돌이 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에너지전환도 전원별‧기술별 옥석을 가려야 하고, 당장 가능한 단기계획과 길게 보고 추진해야 할 장기계획으로 구분해야 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면서 일단 저지르면 해결될 것이라는 접근은 곤란하다"고 꼬집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강원도 대관령 인근 풍력발전단지. 직류 인버터 기반 전원이 증가하고 동기발전기가 감소하면, 전력망의 강건성이 회복탄력성이 저하돼 작은 외란에도 전압이나 주파수가 출렁인다.
▲강원도 대관령 인근 풍력발전단지. 직류 인버터 기반 전원이 증가하고 동기발전기가 감소하면, 전력망의 강건성이 회복탄력성이 저하돼 작은 외란에도 전압이나 주파수가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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