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형 생태환경작가

▲최원형 생태환경작가
최원형
생태환경작가

[이투뉴스 칼럼 / 최원형] 회색빛 콘크리트 빌딩이 빼곡한 도시도 일 년에 몇 벌 갈아입을 옷이 있다. 화사한 벚꽃이 필 때가 그렇고 은행나무에 노란 물이 들 때가 그렇다. 한 번씩 도시 분위기를 바꿔주는 가로수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종일 시커먼 매연을 뒤집어쓰고 소음에 시달리는 나무의 존재를 우리는 평소 알지 못한다.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관심이 없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어느 날 그 존재가 빛나는 때는 과감한 변신을 할 때다. 생각해보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공급한다는 기본적인 상식 말고도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건 많다. 뜨거운 여름날 나무 그늘은 폭염 피난처가 될 수 있다. 내리쬐는 빛에 달궈진 건물과 아스팔트에 에어컨 실외기에서 내뿜는 열기까지 합세해 뜨거워진 대기는 밤이 되어도 식질 못한 채 도시를 열섬으로 만든다. 다행스럽게도 나무의 증산 작용은 주변 온도를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도시에 나무가 없다면 매미 소리를 우리는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나무가 있으니 새들이 내려앉을 수도, 새끼를 기르기 위해 둥지를 틀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무는 베푼 만큼 대접받고 있을까? 가게 간판을 가린다며 건물에 그늘이 생긴다며 표지판이 안 보인다며 새가 나무에 너무 많이 날아와 똥을 눠서 아래 세워둔 자동차가 피해를 본다며 가지치기 민원을 넣는다. 심지어 나무를 아예 잘라버리라고도 한다. 가장 시끄럽고 오염 심한 길가에 세워놓고도 걸리적거리고 귀찮은 그래서 뽑아버리고 싶은 장애물로 홀대받는다.

해마다 늦겨울부터 봄까지 대대적인 가지치기가 이뤄진다. 이 무렵 가로수는 또 한 번 눈길을 끈다. 흉측한 모습으로.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보니 누구 할 것 없이 가지치기는 당연한 걸로 알고 지냈다. 2020년 서울시가 덕수궁 돌담 앞에 있던 양버즘나무 20여 그루를 베어버리겠다고 발표했다. 53년이나 된 나무뿌리가 덕수궁 담장에 균열을 일으킨다는 게 벌목의 이유였다. 시민들은 나무로 인해 담장에 균열이 생긴다면 담장을 보수할 일이지 53년이나 된 나무를 베어버리면 그 역사는 영영 사라지는 것이니 큰 나무의 문화 경관적 가치를 간과하는 행정이라며 반발했다. 나무를 벌목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절충점을 찾지 못하자 결국 서울시는 나무를 그대로 두기로 최종결정을 내렸다. 그렇지만 여전히 가로수를 가지치기하거나 베어야 할 이유는 많다. 키 큰 나무는 뿌리가 얕아서 태풍 등에 쓰러질 수 있으니 위험해서, 한국전력은 가로수가 전선 관리에 방해되기 때문에 강하게 가지를 치거나 벌목을 계속해오고 있다. 

가지치기는 무조건 안 되고 나무가 뻗고 싶은 데로 무한정 두자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뼈대만 남기는 식의 강한 가지치기는 나무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국제수목학회(ISA)도 과도한 가지치기를 잘못된 방식이라 규정한다. 나뭇가지의 25% 이상을 가지치기해서 없애버린다면 나무는 광합성을 제대로 할 수 없어 굶주릴 수 있다고 한다. 가지치기가 아니어도 나무는 괴롭다. 나무의 원뿌리는 나무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고 굵은 뿌리에서 뻗어 나온 연한 잔뿌리가 물과 양분을 흡수한다. 이 잔뿌리가 뻗어가는 범위는 위로 나뭇가지가 뻗은 범위보다도 1.5~3배가량 넓다. 20~30cm 정도 깊이의 땅속에서 잔뿌리는 양분과 수분을 가장 왕성하게 흡수한다. 그러나 도시의 가로수는 뿌리를 넓고 깊게 뻗기가 어렵다. 땅속 영역이 이미 여러 용도로 사용 중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겨울과 봄 가뭄에 가로수 뿌리는 물을 찾을 곳이 없으니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뿌리를 뻗으려 안간힘을 쓰다 보니 때론 보도블럭이 물결치듯 울퉁불퉁 변형이 생기고 가로수를 보호한다며 설치한 보호 틀이 나무 밑동을 파고 들어간다. 보호란 설치로 끝나는 게 아니라 꾸준한 관심이다.

집중호우가 내리게 되면 순식간에 물이 빠져나갈 수 없어 역류할 때도 있는데 이때 트리거가 되곤 하는 게 하수구를 막는 낙엽이다. 낙엽이 쌓인 거리에 비가 내리면 낙엽은 도로나 인도를 코팅한 것과 같은 역할을 해서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쌓이는 족족 쓸어 담아야 하고 때론 나무를 흔들어대며 강제로 잎을 떨구기도 한다. 이래저래 가로수는 괴롭다. 왜 나를 이 도시로 데려왔느냐 항변이라도 하고 싶을 것만 같다. 가을이면 고약한 냄새가 나는 열매 때문에 은행나무는 괜한 미움도 받는다. 보기 싫으니 없애버려야 한다는 발상은 나무를 향한 폭력이다. 최근에 은행나무 중간에 그물망을 설치해서 열매가 땅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조치하는 지자체가 생기고 있다. 폭력 대신 공생을 선택한 그런 모습이 도시를 품격있게 만든다. 

도시에서 가로수와 함께 살 방법을 생각해본다. 우리 동네 나무를 우리가 보살피면 어떨까? 나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가로수 지도를 만들고 가로수를 한 그루씩 입양해보는 거다. 나무에 애칭을 붙여주면 식구 같아서 나무의 안부가 궁금해질 테다. 가을이 아닌데도 잎이 시드는지, 나무줄기를 조르는 현수막 줄은 없는지 가지치기가 지나치지 않는지 살피는 거다. 반복되는 관행을 바꿀 수 있는 건 시민들의 관심이다. 

벚꽃잎 분분히 날리는 봄날 일본의 선승 잇큐의 글귀가 떠오른다. 
“벚나무 가지를 부러뜨려 봐도 그 속엔 벚꽃이 없네. 그러나 보라, 봄이 되면 얼마나 많은 꽃이 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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