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박종배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이투뉴스 칼럼 / 박종배] 작년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1982년 한국전력공사 창설 이래, 2001년 도매전력시장 개설 이래 가장 혹독한 한 해였다. 한국전력 주식회사가 발족한 1961년 이래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역경이었다. 많은 이들이 현재의 에너지 위기는 1970년대의 오일쇼크보다도 그 충격이 더 크다고 한다.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본격화된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도화점이 되어, 2022년 발전용 유연탄의 연료비는 전년 대비 190% 인상됐고, LNG 가격은 무려 220%나 올랐다. 이로 인하여 작년 12월, 육지 계통한계가격(SMP)은 사상 최고치인 kWh당 268원까지 치솟아 올라, 2년 전인 2020년 11월의 kWh당 50원 수준보다 5배 이상이나 뛰었다. 하지만 전기요금은 대선이 끝난 뒤인 작년 4월에나 오르기 시작했다. 총 3번의 인상으로 전기요금은 30% 이상 올렸지만, 한전은 32조원을 넘어서는 상상할 수 없는 영업적자를 보였다. 작년 코스피 상장사 전체의 손실보다 한전의 적자가 더욱 크다고들 한다. 가스공사도 40%에 이르는 요금을 인상했지만 8조원이 넘는 미수금이 발생했다. 작년 한 해에만 40조원이 넘는 손실이 전력과 가스 두 공기업에서 발생한 것이다. 작년말 기준으로 한전의 부채비율은 458%, 가스공사는 500%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소매요금의 인상 지연으로 인한 불똥은 민간발전사에게로 튀어 작년 12월부터 3개월 동안 SMP 상한제의 영향 아래 이들은 총 2조원에 이르는 피해를 보았다. 우리보다 심하게 에너지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유럽연합이 작년 소비자, 전력회사, 가스회사에게 직접 지원한 보조금은 수백조원에 이른다고 하며, 소비자 각 개인에게도 늦은 청구서를 날려 손실난 부분을 메웠다 한다. 유럽연합과 우리나라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한 방식이 매우 다름을 알 수 있다. 

에너지 요금의 왜곡은 해당 공기업의 적자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가격의 왜곡은 반드시 소비의 왜곡을 낳는다. 작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2.6%를 기록한 반면, 전기소비 증가율은 2.7%에 이르렀다. 낮은 에너지 가격에 익숙해진 기업과 소비자는 정부의 에너지 소비절약 캠페인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에너지 가격의 인상에는 상당히 민감하게 저항을 보였다. 지난겨울 시끄러웠던 ‘난방비 폭탄’의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전기 및 가스요금은 유럽의 반값이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에너지 소비의 증가는 우리나라 에너지 수입액의 증가를 가져오는 게 필연이다. 작년 에너지 수입액은 우리나라 전체 수입액의 26% 수준인 1908억달러에 이르러 무역적자의 주범이 되었다. 최종에너지 소비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지만, 1차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 내외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기는 사용하기는 편리하지만 전환 효율이 40%에 못 미치는 매우 비효율적 에너지원이다. 그 만큼 가격 신호가 중요하다. 또한 적자에 허덕이는 한전과 가스공사는 우리나라 채권 시장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지난해 한전은 총 37조원에 이르는 채권을 발행했고 이는 회사채 발행액의 45%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올해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금이 급하게 필요한 다른 민간기업에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원가 회수율이 70% 수준에 불과한 한전은 매달 채권을 발행하여 전력구입 대금을 지급하는 실정이다. 체질이 허약해진 전력산업의 재무 구조는 전력망의 투자에 소홀할 수밖에 없고, 이는 안정적 전력공급에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심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요금 인상이 필요한 지금, 공기업인 한전과 가스공사는 혹독한 구조 조정과 자구책을 마련함과 동시에 이를 소비자에게 세세하게 알려 소비자들의 동의와 협조를 얻어야 한다. 이는 단지 경상비용을 줄이는 것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요금 인상에 상응하는 에너지를 줄이기 힘든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국가와 공기업이 책임지고 도와야 한다. 심지어 이들이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도록 효율화를 대행할 필요까지 있다. 즉 에너지 요금의 정상화는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에너지 공기업이 효율화를 의무화하는 정책과 병행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위기가 종식되고 에너지 요금이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되는 2026년까지 에너지 정책은 ‘비용 최소화’에 집중돼야 한다. 비용 최소화의 관점에서 현재의 전력산업과 가스산업, 도매시장 구조가 적절한지도 차제에 솔직하고 깊이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쟁을 촉진하여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은 과감한 시장 정책으로 전환하고, 규제와 공익의 확장이 필요한 영역에 대해서는 더욱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원자력발전의 정산단가보다 서너 배는 비싼 신재생과 수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을까라는 정책적 대안도 제로베이스에서 마련돼야 한다. 전 국민에게 사용량에 비례해 할당되는 현재의 신재생 제도와 관련 기후‧환경비용은 상당 부분 이를 당장 필요로 하는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돌려줘야 한다. 재생에너지를 원하는 소비자와 RE100을 선언한 기업들에게는 별도의 재생에너지 요금제를 만들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RE100을 선언한 기업들이 경제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거나 구입할 수 있도록 과감한 규제 개혁도 서둘러야 한다. 현 전력산업 위기의 극복은 요금 정상화와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만으로만 가능하다. 우회도로나 지름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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