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손모빌 저탄소기술 대대적 투자계획에 의구심 증가

[이투뉴스] 석유수요가 10년 내에 정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엑손모빌 등 석유메이저들은 '마지막 주자'가 되는 길을 자처하고 있다. 하지만 파이가 줄어드는 석유시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저가 전략을 내세우는 기업과 고군분투해야하며, 풍력과 태양광 등 청정에너지 분야에서 입지를 다지지 못할 경우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EU의 그린딜 계획은 저탄소 에너지 투자에 대한 새로운 활력이 되고 있다. EU의 탄소국경세는 에너지전환을 강화하는 자극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BP와 셸 등 유럽 석유대기업들이 에너지전환을 내세우며 투자 방향을 바꾸는 가운데 '하던대로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엑손모빌도 저탄소기술에 전폭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엑손모빌은 ‘친환경 투자’에 대한 주주들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기업가치를 높이겠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의 세금 우대 혜택을 받기 위한 결정일 뿐이라며 근본적인 기후변화 대응조치인지 의심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엑손모빌이 연례 주주 회의에서 지속가능한 가치창출을 위한 전략적 계획을 실행하라는 주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엔진 넘버원’이라는 엑손모빌 주주사는 오랫동안 기후변화를 부정한 엑손모빌을 파고들었다. 엔진 넘버원이 내세운 캠페인은 회사가 과거에 갇혀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시도하지 못하고 석유가스사업에 중독돼 있다고 지적했다.

크리스 제임스 엔진 넘버원 대표는 “사업을 운영하는데 완전한 실패”라고 질타했고, 이후 회사는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이사진 선출이 필요하다며 2명을 이사로 추대했다. 제임스 대표는 엑손모빌이 새로운 궤도에 올랐으며, 많은 변화가 추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엑손모빌은 탄소포획과 수소 등 저탄소기술을 중심으로 한 신규사업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에너지전환을 이끈 외부 인사들을 주요 고위직에 앉혔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회사가 큰 문화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엑손모빌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현금을 쏟아붓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일각에선 5년간 전체 지출액의 10%에 불과하며 여전히 화석연료 투자라고 비판한다.

회사의 변화가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한 믿음에 기반하기보다 녹색기술에 대한 정부 보조금(IRA)의 혜택을 받기 위해 결정됐다고 지적한다. 앤드류 로건 이사는 “5년 전 엑손이 아니다.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면서 “홍보 활동인지 아니면 새로운 사업 전략을 위한 진실된 약속인지 아직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엑손의 대런 우즈 최고경영자(CEO)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수조 달러 가치의 시장을 만들고 있다며 "세계 기후위협은 엄청나며,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기회도 엄청나다”고 강조했다. 제너럴모터스의 자율주행차 사업부에서 엑손 저탄소 사업부로 자리를 옮긴 댐 암만 대표는 “세계가 순제로에 가까워짐에 따라 오늘날 엑손모빌의 원래 사업보다 더 커질 수 있다"고 자신했다. 

엑손의 이같은 행보가 뜻밖이라는 반응들도 나온다. 지난 수십년간 청정에너지가 그들의 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했으며 배출량을 줄이려는 정부의 노력에 반대하는 로비를 벌여왔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과학에 대해 의심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우즈 CEO는 엑손이 기후변화에 대한 허위 정보를 퍼뜨린 사실을 부인하고 2021년 회사가 기후변화의 현실과 위험을 오랫동안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엑손모빌은 BP와 셸, 토탈에너지 등 유럽의 석유메이저 경쟁사들과 달리 대형 풍력발전과 태양광, 배터리사업에 뛰어들지 않았다. 우즈 CEO는 2020년 경쟁사들의 기후 목표를 놓고 ‘미인 대회’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이제 엑손모빌은 바이오연료와 탄소포집저장, 수소 등의 기술에 투자하기로 했으며, 이 분야는 석유가스 사업 전문성 및 경험에 밀접하게 관련있다고 밝히고 있다.

우즈 CEO는 “세계는 새로운 산업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밸류 체인과 제품을 가질 탄소저감 산업에서 우리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엑손의 발표 이후 많은 비판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탄소포집저장기술은 상업적 규모로 성공적으로 구축된 적이 없으며, 발표된 것보다 훨씬 적은 배출량만을 포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소는 그린수소 생산분이 거의 없고, 바이오연료는 대부분 틈새시장 제품으로 생산되고 있다. 기후활동가들과 애널리스트들은 엑손이 수소와 탄소포획저장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기술들이 화석연료시대를 연장하고, 전기화 흐름을 막을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비영리단체 세레스의 로건 전문가는 엑손을 저탄소 리더로 묘사하려는 광고를 포함해 수년간 공개적으로 기후 이니셔티브로 홍보했던 조류와 바이오연료 사업을 거론했다. 이 사업들이 실제로 이행되지 않았고 엑손은 올해 조류사업을 조용히 중단했다. 로건 전문가는 “엑손이 새로운 사업들을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엑손 저탄소사업부의 암만 대표는 탄소포획과 수소 사업에 대한 논의가 현실을 앞질렀다고 인정했다. 그는 “많은 보도자료와 이야기가 나왔지만 실제로 확정된 프로젝트 계약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사업들이 파워포인트 발표에서 실제 세계로 이동 중“이라며 최근 수개월간 신규 수소와 탄소포획사업을 설명했다. 

텍사스 휴스턴 외곽 주요 정유 및 석유화학 단지에 신규 수소생산 시설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천연가스를 이용한 블루수소 시설로 이 곳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획하고 저장할 예정이다. 지난달 엑손은 영국화학회사 린데와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걸프만의 린데 수소 시설에서 연간 22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포획해 지하에 영구적으로 저장할 계획이다. 2025년부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엑손모빌은 IRA가 제공하는 탄소포획저장과 수소에 대한 보조금의 최대 수혜자로도 지목되고 있다. 이 법안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포획하고 저장하는 사업에 대해 1톤당 85달러의 보조금과 청정수소 1kg당 최대 3달러를 지원한다. 이 법으로 많은 관련 사업들이 갑자기 수익성을 갖게 됐다. 제프 우벤 엑손모빌 이사는 "IRA가 회사의 저탄소 투자를 크게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엑손은 석유가스 사업에서도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2027년까지 석유가스 생산을 매년 3%씩 확대, 생산량을 유지하거나 점차 줄인다는 유럽 경쟁사들과 대조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엑손은 서부 텍사스와 뉴멕시코 셰일 유전 생산량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아울러 남미 가이아나 해안 대규모 심해 석유사업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수십년만에 발견한 가장 큰 매장지로 확인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석유가스 가격이 급등하자 엑손모빌의 수익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지난해 약 560억 달러의 수익을 올려 주가는 에너지전환을 강조한 셸과 BP를 훨씬 앞섰다. 엑손은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 동조하면서 석유가스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체 배출량을 상쇄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기후 싱크탱크인 ‘카본트랙커’의 닐 콰치 애널리스트는 그 전략이 기후 목표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회사가 생산하는 석유가스와 소비자들의 배출량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엑손과 관련된 전체 배출량의 80%이상을 차지하며, 연간 약 5억4000만톤의 이산화탄소로 캐나다 배출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배출량 감축 외에도 에너지안보와 공급의 경제성에도 집중하고 있다. 이는 엑손모빌 등 석유기업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새로운 화석연료 개발을 위한 정치적 여유 공간이 생긴 셈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주요 알래스카 석유 사업을 승인하고 미국 멕시코 만에서 바로 시추 경매를 재개했다. 

그럼에도 많은 투자자들은 기후 전략이 주목받기를 바라고 있다. 영국 최대 자산 운용사이자 엑손의 상위 20개 주주사인 리걸&제너럴 인베스트먼트 메니지먼트사(LGIM)는 오는 31일 열리는 연례 주주총회를 위해 새로운 기후 결의안을 제시했다.  LGIM의 엘카얌 애널리스트는 “엑손의 녹색에너지 지출은 유럽 경쟁사들에 비해 상당히 적다”며 “기후대응에 대해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jo@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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